메인화면으로
경총의 엄살, 이 정도면 '월드클래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총의 엄살, 이 정도면 '월드클래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사용자책임 넓어져도 질서 훼손 우려 없다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원청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이 확대된다면 노사관계 질서가 크게 훼손되고 노사분규가 확산될 것." - 장정우 경총 노사협력본부장

작년 12월 14일 경총이 내놓은 보도자료의 일부이다. 노조법 2조, 그 중에서도 2호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면 엄청난 일이 펼쳐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오늘은 경총의 주장을 놓고 팩트체크를 해보도록 하겠다.

현행 노동조합법 규정에 위배?

경총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다뤄온 익숙한 얘기이다.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근로계약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 정말 끈질기게 구닥다리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논리의 허구성은 앞에서 여러 차례 다뤘기에 오늘은 스킵(Skip) 하기로 한다. 오늘 주로 다룰 얘기는 경총의 두 번째 주장인데, 한국의 노동조합법은 교섭단위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하고 있는데, 원청이 하청노조의 사용자가 된다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를 넘어 중첩적 교섭단위를 설정하게 되므로 노동조합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아, 이거 본격적으로 따지기 전에 화부터 난다. 뭔놈의 한국 말이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쉽게 풀어쓰면 어디 덧나는 걸까. 하지만 이럴 땐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사회적 토론의 전장에서 친절한 설명이 없다는 건, 뭔가 주장이 떳떳하지 않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럼 산별교섭·집단교섭은 죄다 불법?

우선 한국의 노동조합법은 명시적으로 교섭단위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경합하고 있을 경우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현실에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넘어서는 교섭단위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기업별 교섭이 아닌 산별교섭이나 집단교섭의 경우 노동조합과 교섭하는 사용자는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기에 당연히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가.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이미 해당 산업의 사용자단체를 상대방으로 해서 산별교섭도 하고 단체협약도 체결하고 있다. 서울지역 대학 청소노동자들도 10년 넘게 다수의 대학에 포진된 여러 용역업체들과 집단교섭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교섭들의 단위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넘어서는데 그럼 이게 다 불법이란 말인가. 기업별 노사관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건 어쨌건 레토릭으로만 보자면 한국의 노·사·정 모두 의견일치를 본 문제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교섭단위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제한되니 어쩌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얘길 늘어놓는단 말인가. 여전히 구닥다리 논리인 일대일대응 관계를 붙잡고 싶은 것일까?

이미 운동이 구닥다리 개념을 뛰어넘다

아마도 경총은 노조법 2조가 개정되어 사용자 범위가 넓어질 경우, 사용자들이 상대해야 할 노동조합이 너무 많아진다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이 복잡해진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운동이 이런 구닥다리 생각을 이미 훌쩍 넘어버린 상황이다. 아래 표를 한번 살펴보자. 이 표는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한 노동조합 명단이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전국대리운전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하기로 9월에 합의를 했지만, 현행 노동조합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2021년 10월 14~21일 기간 동안 교섭을 요구할 노동조합의 교섭 신청을 받은 뒤 22일에 카카오모빌리티가 각 노동조합에 이 명단을 통보했다. 본래 통보한 문서에는 노조 대표자 명칭과 조합원 규모도 명시되어 있지만 생략하였다. (단, 표의 배열은 교섭을 요구한 순서에 따른 것임.) 일단 이 명단만 봐도 재미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섭을 요구한 5개의 노동조합 중 4개는 대리운전기사를 조직하고 있는 노조인 반면, 화섬노조 카카오지회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노조이다. 다시말해 5개의 노조 중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쪽은 1곳 뿐, 나머지 4개의 노조는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한다.

근로계약·위탁계약 체결 노조 모두 권리 보장

교섭요구노조 명단이 결정되면 우선 자율적으로 노동조합들이 교섭대표노조를 선정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된다. 보통의 경우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조합원 규모를 확인하는 다음 절차가 진행되는데, 노동위원회(이 경우는 전국 사업장이니 중앙노동위)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경총이나 보수적 노동법학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사건의 경우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탁계약을 체결한 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카카오지회가 교섭대표노조가 되었을까? 아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전국대리운전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인정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조이건 위탁계약을 체결한 노조이건 모두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법이 정한 절차에 의해 결정되었다.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근로계약을 체결해야만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현실이 이미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대리운전기사 문제야 그들을 조직하고 있는 노조가 잘 대변할 수 있다지만, 카카오모빌리티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 문제까지 그들이 대표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래서 화섬노조 카카오지회 역시 카카오모빌리티와 별도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섭단위 분리 통해 여러 개의 교섭 병행도

사실 이런 사례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지난 1~2년 사이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조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노조가 나란히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 참여한 사례만 10개 안팎에 이르며, 사용자들은 교섭대표노조로 결정된 노조와 교섭을 하고 있으며, 법인 분리나 교섭단위 분리가 이뤄진 경우 2개 이상의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사례로 소개했던 카카오모빌리티 외에도 쿠팡의 배달과 배송 부문, 하이엠솔루텍의 가전제품 방문 서비스 분야, 삼성화재와 한화생명 등 보험설계사와 내근직(정규직) 부문에서 다양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나란히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정규직과 특수고용직 사이 교섭단위를 분리해 달라는 신청들이 몇몇 사업장에서 있었고, 지노위·중노위 결정이 일관되진 않는다. 그러나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조도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위탁계약을 체결한 특수고용·플랫폼 노조도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절차가 복잡해지거나 난해하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쿠팡이츠가 아직 법인이 분리되기 전, 그러니까 쿠팡의 음식배달 서비스 브랜드로 운영되던 시절인 2021년 초에 라이더유니온이 단체교섭을 요구하게 된다. 쿠팡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자 하는 노조는 라이더유니온 말고도 배달 라이더를 조직하고 있었던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가 있었고, 택배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운수노조 쿠팡지부도 있었다. 배달 라이더의 경우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지만 택배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그렇게 3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선정을 위한 지노위 절차가 진행되었고, 노조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결론이 내려졌다.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절차에서 배제된 적도 없고,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조에게 우선권이 부여되지도 않았다.

언제든 법인 분리로 교섭권 박탈

쿠팡과 하이엠솔루텍 사례에서는 공통적으로 '법인 분리'가 등장한다. 쿠팡 상대로 3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를 선정하지 못하고 절차가 이어지던 중 음식배달서비스는 쿠팡이츠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법인이 분리된다. 이 순간 쿠팡을 상대로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쿠팡이츠를 상대로 창구단일화 절차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하이엠솔루텍 사례도 마찬가지다. 금속노조가 2020년에 이곳 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모두를 조직하며 지회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했다. 그 뒤 금속노련 하이엠솔루텍노조가 설립되었고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전체 조합원 규모로 보면 금속노조가 앞선 상황이었고, 정규직 조합원만 보면 금속노련이 더 많았다. 그래서 금속노련 측이 정규직과 특수고용직 사이의 교섭단위를 분리해 달라는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지노위는 이를 인정했으나 중노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그 사이 하이엠솔루텍이 특수고용직 관련 업무를 중심으로 하이케어솔루션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분리해버린 것. 결국 앞선 창구단일화 절차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고, 특수고용직의 경우 처음부터 다시 하이케어솔루션이라는 새로운 법인을 상대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시작해야 했다. 노조가 처음 결성된 시점부터 시작해 제대로된 교섭을 개시하기까지 무려 2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자본 측이 활용한 핵심적인 수단은 ‘법인 분리’였다.

고통과 설움을 겪는 건 노동자들

사용자들이 상대해야 할 노동조합이 너무 많아진다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이 복잡해진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엄살에 불과하다.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여 원청 또는 진짜 사장에게 사용자책임을 지운다 해서 절차가 복잡해지거나 난해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드는 건, 자본 측이 언제든 맘 먹으면 실행할 수 있는 '법인 분리'였다. 만일 상대해야 하는 노동조합이 너무 많아지는 게 문제라면, 자본가들 입장에서 법인을 분리하는 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 될 것이다. 법인을 분리하는 순간 각 법인에서 각자 노동조합을 상대해야 하니까 말이다. 노무관리부서, 인력관리부서도 별도로 만들어야 하니 이 얼마나 낭비가 되느냐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반대다. 자본가들, 특히 원청에 해당하는 재벌 대기업들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분산시킬 목적으로 법인 분리를 강행한다. 법인 분할·합병시 단체협약과 노동조합 승계가 당연시되지 않는 후진적 노동법을 가진 한국에서, 법인이 분리되는 순간 교섭권을 얻기 위해 노동조합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자신들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핵심적인 수단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 사용자책임을 지우면 노동법적 질서가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 모두 엄살에 불과하다. 앞선 과정에서 모두 살펴보았지만 고통을 겪는 건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엄살도 이 정도면 진짜 월드클래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