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 1조 목적에 명시된 문장이다. 이 조례의 주요 내용으론 △차별받지 않을 권리(5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6조) △개성을 실현할 권리(12조) △사생활의 자유(13조)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28조) 등이 있다. 또한 조례는 학생인권침해 발생 시 구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게 하고 있다. 해당 조례의 시행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조례에 따라 인권전담기구인 '학생인권교육센터'와 '학생인권옹호관'을 설치했다. 학생인권옹호관은 지난달에만 1298건의 권리구제신청을 받았고 권고 186건, 분쟁조정 328건 등 그에 대한 조처를 완료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보수개신교 중심의 단체가 서울시의회에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를 갑작스럽게 제출했다. 그들이 낸 조례 폐지 청구가 상임위 심의를 거쳐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2월 중으로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될지 모른다. 현재 서울시의회 의석 중 3분의2를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어 가결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폐지보다 안 좋은 대체조례안
서울시의회는 현재 '서울특별시 학교구성원 인권증진 조례안(이하 학교구성원 조례안)'과 '서울특별시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이하 성규범 조례안)' 등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따른 대체조례안을 발의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이후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두 대체조례안은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인권의 후퇴를 일으킬까 우려된다. 먼저 학교구성원 조례안은 학생인권조례와 그 내용이 비슷해 보인다. 다만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서술이 다르다. 이 조례안은 현재 학생인권조례 5조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에 대한 차별 금지 내용을 제외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28조에 나열되어 있는 소수자 예시에서도 '성소수자'를 빼고 있다. 이는 명백한 성소수자 차별이고 혐오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이어 학생인권조례까지 성소수자 '혐오공격' 타겟으로 지정된 셈이다. 그 외에도 조례는 종교 과목 수강을 강요할 수 없도록 하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학생 소지품 검사를 금지한 '사생활의 자유' 조항 등을 삭제하고 있다. '학교구성원'을 명시하는 조례안의 이름처럼, 인권 적용 주체를 학생에서 교직원으로까지 넓히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대체조례안인 성규범 조례안은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고 여성혐오를 부추긴다. 학교구성원 조례안과 같이 성소수자 혐오 또한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며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한편으론 "태아의 생명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로 보호되어야 한다"며,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이미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낙태죄'를 복귀시키려 한다.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조례안들이 학생인권조례의 대체조례안이랍시고 통과되면 학교현장이 얼마나 나빠질지가 걱정이다. 있으나 마나 한 조례안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할 것이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학교에서, 위축된 성소수자 학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이해를 막는 학교에서,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에게 쏠릴 낙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해 12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등 한국시민사회는 서울과 충남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에 긴급진정을 냈다. 이에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1월 25일 한국 정부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 국제인권기준, 특히 차별 금지 원칙에 반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때문에 겪는 차별에 대한 보호를 축소하려는 시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다른 지자체 학생인권조례까지 폐지되는 길을 열까봐 두렵다"고도 했다.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혐오세력의 주장 속에서
학생을 위한다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논리 속에는 보수 개신교 단체 중심의 '혐오세력'이 평소 구축해온 성소수자 차별의 논리가 그대로 담겨있다. 하여 조례 폐지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보고 있으면, 보수 개신교 성향 혐오세력의 주장이 제도로까지 침투하려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대체조례안과 혐오세력은 아동‧청소년을 '미성년자'라고 호명하며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있다. 혐오세력은 아동‧청소년은 보호와 양육의 대상이며, 따라서 인권과 기본권 행사 능력도 제한돼야 하는 존재라고 본다. 대체조례안을 추진하고자 하는 세력들도 아동‧청소년에 대해 만연한 보호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아동‧청소년은 주체적인 삶과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한다. 가령 성규범 조례안은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다른 교육당사자와의 관계에서 원칙적 우위를 가진다"는 내용을 넣고 있다. 학생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부모의 권리를 앞장세우며 학생은 부모가 정해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학생을 교육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구성원 조례안을 살펴보자. 일부 부모와 교사들은 그 이름의 탄생에서부터 학생이 인권의 주체임을 부정했다. '교권' 침해를 강조하며 교사의 자율적인 수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력구조를 무시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그 권력구조를 드러내기 때문에, 권력의 위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부 부모와 교사들은 그것이 불쾌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선 팽배한 나이주의로 인해 어린 사람이 쉽게 낮은 취급을 받는다. 예컨대, 교사가 교실을 들어오면서 학생들에게 반말로 인사하는 것은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대로 학생이 교사에게 반말로 대화를 청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학생은 혼나는 게 자연스럽다. 어쩌면 벌점이나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겠다.혐오와 '라떼'를 거부한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그것도 청소년 활동가들이 직접 발로 뛰어 시민들이 서명한 주민발의로 만들어진 것이 서울학생인권조례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 중심의 혐오세력은 해당 조례안의 일부 내용이 '동성애 조장'이라며 성소수자 차별을 위해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를 폐지하려 한다. 대체조례안은 차별과 혐오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하고, 아동‧청소년을 미성숙한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대체조례안은 학생인 아동‧청소년 차별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작용할 것이다. 인권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 한편 학생인권조례 존폐 위기에서 "예전보다 좋아지지 않았냐"는 말을 하는 '으른'들도 있다. 그들 비청소년이 만든 '라떼'를 쓰게 마시는 몫은 결국 청소년이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확장시키는 것에 대해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보다 좋아지지 않았냐"는 말로 인권의 진전을 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예전보다 좋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앞으로 더 좋아져야 한다. 과거와 비교하지 말고 구성원의 평등한 관계에 대한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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