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문제'라고 하면, 한국인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한일간의 역사, 외교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하긴 그런 측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독특한 종교성과 그를 기반으로 한 정치성의 문제이다. 그런 관점 없이 야스쿠니를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한국에서 파악하기는 힘들다. 일본의 종교관, 정치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쉬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이찬수 교수의 저서 <메이지의 그늘: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이다. 일본에서 19세기 후반 시작된 메이지 유신은 일반적으로 일본이 서양을 모방하면서 근대화로 나아간 움직임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정신적 통합이다. 거기서 이용된 것이 일본의 전통적 종교인 신도(神道)이다. 천황제 국가의 국민통합을 위해 이용된 신도는 천황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재편됨과 동시에, '나라를 위한 죽음'을 칭송하기 위한 야스쿠니 신사의 설치로 이어졌다. 근대화를 진행하면서 제국주의화한 일본은 대외 전쟁을 추진하는 과정에 많은 전사자를 발생시켰다.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전사자는 국가에 의해 동원되고 죽임 당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가 설치된 이후 '나라에 의해' 죽은 전사자는 '나라를 위해' 죽은 자, 즉 '호국영령'으로 미화되었다. 유족들은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를 위한 귀중한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정신 구조가 형성되었다.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자신이 받은 피해가 명예로 왜곡되고 대외적으로는 가해자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과 배경을 '영혼의 정치'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이러한 정신 구조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복고주의자도 적지 않다. 일본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에는 평화 조항인 제9조의 개정안과 함께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규정한 제20조 개정안도 포함되어 있다. 제20조는 신도가 국가와 연결되면서 국민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는 정신적 기반이 된 것을 반성하면서 제정된 것이다. 20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과거의 반성을 포기하는 행위이며 9조의 개정 이상으로 위험한 도발이다. 자신의 피해를 피해로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종교성과 결별하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도 화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물론, 일본인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일본 사회가 극복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이 책은 보수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이 역사적 가해성을 인식하지 못한 이유를 종교문화적 차원에서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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