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사회학계 신진 김민성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주.
심각한 학교폭력에 노출되었던 고등학생 동은. 가정, 학교 어느 곳에서도 안전함을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자퇴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뜨린 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초등교사가 된다. 계획대로 가해자 딸의 담임선생이 된 그녀. 교실로 찾아온 가해자에게 말한다. "넌 지금부터 그냥 당하는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최근 OTT에서 방영되고 있는 인기드라마 <더 글로리>의 줄거리다. 세상에는 많은 스릴러 소재가 있다. 하지만 원수를 갚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교사가 된다는 이야기는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교육자상에서 다소 벗어난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복수극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짜임새 있는 각본, 시선을 사로잡는 연기력 등도 답이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복수의 계기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잇따르는 요즘이다. 가해자가 유명할수록 사회적 파장은 크다. 그러나 학폭사건 전체를 두고 볼 때 가해자가 유명한 경우는 적다. 학교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만큼, 가해자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로 살고 있을 것이다.'학교공동체' 없는 복수가 주는 찜찜함
<더 글로리>의 복수가 통쾌하지 않은 이유는 폭력 이후의 조치가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진다는 데 있다. 학교폭력의 해결은 사건 대처와 예방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가 보장될 때 가능하다. 그런데 실제 학생, 선생님, 교육감, 교육청이 함께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 일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제도, 학생인권조례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교내 인권 보장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조례에 따라 학교는 학생이 스스로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인권 증진 효과를 불러올까?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실제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교의 인권침해 요소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박환보, 2021) 학생인권조례와 학교폭력과의 관계는 어떨까? 연구 결과, 학교인권조례 시행 전후 연구 지역 내 중학교의 학교폭력 심의 건수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정설미·정동욱, 2020) 그런데 일각에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정희진 강창희, 2015) 공통된 주제에 대한 각기 다른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인권 변화를 양적으로 표현하는 게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 연구들의 연구방법이다. 연구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인권 상황을 살펴보는 척도로 삼았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만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는데도 학생들의 인권이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학생 인권 관련 제도의 점검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학폭 예방,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가능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확실한 체계를 정립했다. 이슈별로 학생 인권 관련 사안에 접근했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조례 제정 지자체들은 좀 더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지속성 있는 인권 업무를 시행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 인권 영향평가, 학교문화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연도별 시행계획,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학생 인권의 실질적 증진 방안을 모색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에는 국내 어떤 교육청에도 학생 인권 사무 전담 부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례를 시행하는 지자체는 교육청 내에 반드시 학생 인권을 위한 기구를 설치해 두고 있다. 서울시는 학생인권정책을 자문하거나 사안에 대해 심의하는 학생인권위원회, 학생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내는 학생참여단, 학생인권 진정을 접수하고 구제하는 학생인권옹호관 등을 운영한다. 충남도는 학교학생인권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활동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법적 근거를 둔 학생 인권 사무 기구가 교육행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이나 학교 재량에 맡겨졌던 학생인권교육도 이제 조례에 따라 학생, 교직원, 보호자에게 의무적으로 실시된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인권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학생의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는 학생인권조례에서 보장하는 핵심 권리다. 학교폭력의 본질은 교내 구성원들의 평화적인 소통 여부이기에, 민주시민 양성을 뒷받침하는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논의할 바탕이 된다. 실제 충남도는 학교장이 교내인권위원회를 조직해 구성원 스스로 학교 내 인권침해 문제를 발견해 시정할 수 있도록 정해두고 있다.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 침해사안을 확인하고 권리구제를 할 때 조례에서 언급된 권리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공동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연구』에 실린 시의성 높은 논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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