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은 어떤 셈법일까
선거 시기마다 여당은 정권수호를, 야당은 정권심판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한다. 정권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커질수록 여당은 불리해지고 그만큼 야당은 유리해진다. 취임 1년을 앞두고 잇따른 '외교 논란'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며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2배 더 높은 상황이다. 이를 반등의 기회로 삼으려던 민주당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동률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에서 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할지 예측되지 않는다. 전원위를 앞두고 국민의힘은 갑자기 '의원 정수 축소' 카드를 꺼냈다. 정당 득표율을 반영한 비례 의석이 배분되려면 의원 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석 비중을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삼으면서 마치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방안처럼 호도한다. 의원 정수 축소를 '혁신안'이라고 던지는 데는 대통령과 대척하며 걸림돌이 되는 국회의 위상을 낮추는 것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일 수 있다는 국민의힘의 셈법이 있다. 비례대표제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 국민의힘과 다르지만, 민주당도 100% 연동형 방식에는 미온적이다.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문제의 대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랜 시간 개혁과제로 요구되었고,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19년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의 권고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을 다수 확보할 수 있는데, 이를 반영해 비례 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방식이 유리할 게 없는 민주당의 셈법에 따라 준연동형 방식이 채택된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양당이 주도한 위성정당 꼼수 속에 민주당은 개편 배경으로 앞세웠던 비례성 강화의 취지를 무너뜨렸고, 21대 국회는 역대 가장 높은 양당의 의석 독식 결과로 이어졌다.적대하며 공생하는 거대 양당 구도
문제는 더욱 굳건해진 지금의 거대 양당 구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집권 여당은 지금 잡은 정권을 지키는 데만, 야당은 차기 정권 잡기를 기다리며 현 정권의 발목을 잡는 데만 애쓰면 된다. 서로 반대하고 흠집 내면 그만인 적대 관계 속에서 서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대결 정치는 그 자체로 양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동시에 거대 양당 구도에서 여야는 서로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함께 지켜가는 공생 관계이기도 하다. 모두 합의와 협치를 내세우지만, 사안마다 다르다. 20대 국회 끝자락에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단독 처리했던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여야 합의가 아직 되지 않았다며 뒷걸음질만 칠 뿐이다.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집회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시법 11조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 있었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전현직 대통령의 사저와 집무실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서로 발의하면서 '한몸'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매년 국가기관 신뢰도 꼴찌를 기록하는 국회, 비리를 저지르고 막말을 일삼으며 혐오를 선동하는 국회의원이 신물 나도록 매일 단골뉴스로 등장한다. 서로를 힐난하며 끌어내리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정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적대하며 공생하는 거대 양당 구도라는 쳇바퀴 속에서 정치에 대한 환멸은 커져만 간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과 냉소가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는 거대 양당 구도에서 우리가 넘어야 할 문제는 무능한 정치가 재생산되는 것 이상이다.보수양당이 독점하는 정치
거대 양당이 독점하는 정치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온갖 가십을 끄집어내어 서로를 '단죄'하겠다는 말만 넘치게 해도 상관없는 선거판에서 어떤 비전을 갖는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경합하고 토론하며 설득하고 조직하는 정치는 사라진다. 일상에서 삶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와 행동은 전혀 정치적 화두가 되지 못하고, 시민은 저들만의 정치쇼에 관람객으로 동원될 뿐이다. 선거 때마다 민주시민의 자질인 것처럼 투표가 독려되지만, 양당을 중심으로 나누어진 '묻지마 지지/반대'로 수렴되면 그만이다. 기후 위기, 불평등, 불안정 노동, 우리의 삶과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 권리를 흔드는 현실을 폭로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말과 행동이 터져 나오지만, 이러한 정치적 요구들은 국회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담장 밖에서만 맴돌 뿐이다. 이것은 그저 정치가 무능하고 무책임해서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삶의 문제와 요구들이 거대 양당에 더 이상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정치적 목소리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집단의 의사가 드러나고 경합하며 조정해가는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떠올린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거는 단지 절차적 정당성을 보증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기능할 뿐이다. 양당 구도에서 여야는 서로 다른 듯한 외피를 두르지만, 양당 모두에게 지금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 그에 뿌리내려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정치는 상층집단을 중심으로 특정한 이해관계를 지키는 일일 뿐이다. 보수양당이 독점한 정치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구조적인 문제와 변화에 대한 요구는 가시화되지 않고 주변부로 치워진다. 거대 양당 구도가 정치를 잠식해버린 현실에서 불평등과 위기를 하층집단에 전가하며 유지되는 체제를 문제로 겨냥하는 목소리와 행동은 왜곡되고 봉쇄될 수밖에 없다.다시, 우리의 정치를 세워가기 위해
거대 양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소수정당은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저마다의 셈법으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뛰어들고 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조건을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정치에 대한 궁리가 사라진 현실에서, 화두로 떠오른 비례성과 대표성이 그저 형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어떤 비례성이고 어떤 대표성인지를 질문하며 채워가는 우리의 셈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단지 선거제도의 한계가 아니다. 지금 넘어야 할 과제 또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핑계 삼으며 정치적 주체들의 목소리를 가로막아온 정치의 퇴행을 뒤집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거제도가 달라져도 내년 총선 결과에서 보수양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는 정치적 지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적대적 공생관계인 보수양당의 셈법으로 선거제도 개편이 되지 않도록 주시하며, 우리의 정치를 다시 세워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삼는 게 필요하다. 일 년 뒤 총선 결과만 바라볼 게 아니라, 더 긴 시야와 호흡으로 체제 전환을 목표로 하는 우리의 정치적 요구들을 함께 조직하며 지금의 구도에 균열을 내는 고민과 실천을 찾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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