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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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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음악의 쓸모] 레온 송의 앨범을 이제야 찾아 들은 이유

과거 <한겨레>에서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객원기자를 한 적이 있다. 평론가와 기자의 역할은 또 달라서 아이템을 정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다룰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음악인은 대부분 비주류에 속했다. 일반 대중이 읽는 일간지에 너무 비주류 음악을 많이 소개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잠시 했었지만, 인기가수 K의 신보 발매 기사가 <한겨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일간지에 동시에 실리는 걸 보면서 그런 고민을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악적 판단 없이 그저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언론이 같은 인물을 다루는 걸 보면서 나 같은 기자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다. '인기'는 가치 판단의 가장 큰 요인이다. 그 음악인의 배경에 이야기할 만한 '꺼리'가 있는지가 두 번째 정도 될 것이다. 음악의 우수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령 지난해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프로듀서 250은 많은 언론사에서 그를 소개하고 인터뷰했다. 음악적 평가보단 그가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서였단 배경과 독특하게 '뽕(짝)'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야마'가 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는 인기나 야마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음악을 발표해도 언론, 특히 일간지에 소개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앞서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다 했지만 좀 더 과거로 거슬러 비교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옛날 신문을 보다 보면 인기와 무관하게 좋은 음악인이 곧잘 소개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음악인의 기사를 일간지에선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케이팝과 트로트만 존재하는 줄 알 것이다.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1~2년마다 담당을 순환한다. 일부를 제외하곤 대중음악 분야도 다르지 않다. 음악에 밝지 않고 크게 관심도 없는 가장 보통의 기자가 '가요' 담당이 되면 그들이 아이템을 고르는 우선순위는 인기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데스크에서도 구독 수를 높이기 위해 인기가 있거나 아니면 '꺼리'가 있는 음악인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간접적으로는 내가 주변을 통해 듣는 이야기, 직접적으로는 매체에 소개되는 음악이나 매체가 다루는 소재를 보면 분명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나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썼지만, 아쉬움 또한 어쩔 수가 없다. 과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이른바 평론가를 묶어 부르는 평단의 모습을 보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주변에 농담처럼 "평론가라는 직군이 생긴 이래 이렇게 주류 대중음악에 호의적이고 관대한 적이 있긴 했었나?"라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호의적일 수도 있고 관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팬의 편에 서고 기획사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읊는 듯한 모습은 너무나 생경하고 납득하기도 어렵다.

언제부턴가 언론사의 케이팝이나 아이돌 관련 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케이팝 기사 홍수 속에서 굳이 나까지 더 말을 얹지 않고 싶어서다. 맨 처음 문단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모두가 케이팝에 큰 비중을 두어 말하고 글 쓸 때, 그러지 않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지면과 방송에서 다른 아이템을 정하고 이를 소개하려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나 같은 사람이 조금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덟 명이 말하고 있는 케이팝 이야기에 아홉 번째로 말을 더하는 게 얼마나 의미를 가질지 나로선 잘 모르겠다.

레온 송(송의연)의 앨범 [Ignition]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말이 너무 길어졌다. 말하자면 이 글은 레온 송의 [Ignition]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평단과 미디어에 대한 아쉬움도 담고 있다. 이 앨범이 공개된 건 지난해였다. 하지만 나는 앨범의 존재를 올해 4월 중순이 돼서야 알게 됐다. 이는 내가 앨범이 나오고 올해 4월까지 [Ignition]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나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다양한 평론가, 애호가들과 관계망이 형성돼있다. 하지만 나는 그 관계망 속에서 레온 송, 혹은 송의연이란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 이 글을 보고 뒤늦게 레온 송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평론가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게 달라진 분위기를 대변하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송의연의 [Ignition]을 들으며 과거 조윤의 앨범 [Mobius Strip](1996)을 떠올렸다. 일반 대중에겐 똑같이 낯선 이름이겠지만 평단이나 음악관계자의 반응은 그때와 비교해 굉장히 달라졌다. 두 앨범은 아트 록 혹은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불리는 음악이다. 둘 다 철저하게 비상업적인 음악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때는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음악잡지가 있었고 평론가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군대에 있던 나도 조윤 앨범의 존재를 알고 시디를 살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건 단순히 음악잡지의 유무 차이일 뿐일까.

물론 시대가 바뀌었고 새로운 평론가들의 취향이 바뀌었을 수 있다. 취향은 점점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하고 이런 예스러운 록 음악이 관심 밖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뛰어난 음악은 이런 취향 따윈 넘어선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에게 레온 송의 [Ignition]은 그런 앨범이었다. 부서진 자개장 사이로 보이는 눈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안에 담긴 음악은 송의연이란 음악인을 향한 관심과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모든 곡을 직접 만들었다. 노래와 연주는 물론이고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까지 직접 해냈다. 한국에선 거의 명맥이 끊긴 아트 록 사운드가 처음 듣는 낯선 이름에게서 멋지게 재현됐다.

음악에 관한 글을 쓴 지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평론가'란 직함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칼럼니스트'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의견가'라는 생소한 호칭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각자가 생각하는 평론가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그 역할이 명확했다. 난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걸 가장 우선시했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에게 좋은 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좋은 음악을 발굴하고 이를 소개하는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옥석을 구분할 줄 아는 이여야 했다. 여기에 좋은 문장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변한 세상에서 과한 욕심일 수 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평론가나 칼럼니스트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발견의 기쁨과 뿌듯함을 알고 있는 이들. 그 과정을 통해서 서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이들. 그들에 의해 지난해에 레온 송의 [Ignition]을 접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방식으로 이 음악을 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케이팝과 트로트만 존재하는 것 같은 이 세상에서 그게 내가 평론가로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또 다른 레온 송과 또 다른 [Ignition]을 발견하고 알리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레온 송 [Ignition] ⓒ레온 송


▲레온 송 [Ignition] 중 <Ignition, Part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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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2000년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음악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겨레신문 대중음악 전문 객원기자로 일했고,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과 멜론 <트랙제로> 전문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글 쓰고 말하고 있습니다. <케이팝 세계를 홀리다>를 썼고,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멜로우 시티 멜로우 팝>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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