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전 세계 녹색 정치 활동가들이 모이는 글로벌그린즈(세계녹색당) 제5차 총회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 각 대륙의 녹색당 전·현직 의원들과 청년 녹색 정치인들 약 450명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세계녹색당과 <프레시안>은 글로벌그린즈 총회에 참석하는 각 국가 별 녹색당의 역사, 현황, 주요 정책, 주요 정치인 및 활동가 등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한국 독자들께 전한다. 환경, 민주주의, 평화, 다양성 등 ‘녹색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 주
기후재앙 골든타임 10년, 절규하는 섬나라 사람들
지난 4월 14일 정부 청사에 있는 세종시에서 '414기후정의파업, 함께 살기 위해 멈춰'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의 약 350개 단체, 4,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시민의 안전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책임을 방기하는 정부와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를 규탄하고 기후정의를 요구했다."생태학살! 신공항 철회하라"
기후정의파업을 위해 제주에서 온 녹색당원들의 외침이다. 이들은 특히 비자림로 확장공사, 해군기지 건설에 이어 제주2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해양생물을 비롯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고, 지역사회의 평화를 깨며, 공권력으로 시민들을 학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뿐인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는 제주도민들에게 재앙에 가깝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출을 결정했을 때 제주도민들은 상여를 들고 나와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고 절규했다. 지난 3월 20일 UN 산하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기후위기 보고서를 최종 승인했다. 보고서에서 이들은 "기후위기엔 더 이상 선택지가 없으며 앞으로 10년 안에 지구의 존폐가 달렸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기후재앙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 10년 남았다."스피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사는 사람들이 뉴질랜드까지 와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살 곳이 없어진다고, 이미 우리는 늦었다고, 그렇지만 이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니까 이제 좀 닥쳐주시겠습니까, 부머(Boomer)들?" 기사 중 발췌, 민중의소리, 2019.11.21
8일 인천 송도컨펜시아에서 열리는 제5회 글로벌그린즈 총회의 자원봉사자팀으로 활동하는 전소윤 당원(제주당원)은 2019년 9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린 기후위기 파업에 참여한 태평양 섬 주민의 목소리를 전한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이다. 남태평양에 있는 키리바시, 투발루 등의 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수몰되고 있으며, 2020년 유엔(UN)은 이곳에서 떠나온 난민들에 대해 '기후난민'이란 이름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한 바 있다. 태평양 지역의 작은 섬뿐만 아니라 뉴질랜드도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뉴질랜드는 재앙이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홍수와 폭풍, 가뭄과 화재를 겪었다. 뉴질랜드 국민 7명 중 1명이 홍수가 발생하기 쉬운 지역에 살고 있으며, 약 7만 명이 극심한 해수면 상승에 따른 직격타를 받는 지역에 살고 있다. 2019년 당시 웰링턴 기후위기 파업에는 뉴질랜드 녹색당 공동대표이자 기후변화부 장관인 제임스 쇼(James Shaw)도 참석했다. 그는 기후파업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게 "지난 30년간 정치인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만 해왔다. 이젠 대화를 멈추고 행동을 시작할 때이다"라며 "녹색당이 '탄소제로법'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녹색당을 지지해 달라고 말했다.2017년 창당 27년 만에 집권당으로 연립정부, 2019년 지방선거에서도 활약
뉴질랜드 녹색당의 기후보호 정책은 생존권을 위협받는 뉴질랜드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전 세계에서 400만 명이 참가한 기후파업 직후 열린 2019년 10월 뉴질랜드 지방선거에서 뉴질랜드 녹색당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거를 치렀다. 무려 42명의 녹색당 후보가 지방의원으로 당선됐다. 뉴질랜드 남섬의 더니든(Dunedin)에서는 35세의 애런 호킨스(Aaron Hawkins)가 세 번째 시도 만에 시장으로 당선됐다.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녹색당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녹색당이 2019년 지방선거에서 역대 가장 많은 지방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17년 총선의 여파도 있었다. 2017년 9월 총선 이후 뉴질랜드 녹색당은 1990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집권당이 되었다. 녹색당이 역대 최대 득표수를 기록한 2014년 선거보다는 저조한 결과(6.3%, 120석 중 8석, 제4당)였지만, 노동당 주도의 연립정부에 함께했다. 당시 녹색당은 노동당과 뉴질랜드제1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에 참여하면서도, 적극적 협정에 임하기보다는 느슨한 연정형태인 신임공급(Confidence and supply) 협약을 맺었다.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된 노동당 저신다 아던 총리(Jacinda Ardern)는 기후변화부, 환경보존부, 여성부를 비롯한 6명의 장관과 각 부처의 여러 부장관, 차관 등을 녹색당 의원들로 임명했다.2019년 뉴질랜드 의회, '2050탄소제로' 법안 통과
집권당에 참여한 녹색당은 노동당 정부의 탄소제로 정책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2019년 5월 쇼 기후변화부 장관이 제안한 제로탄소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그해 11월 2050탄소제로법안(Cabonzero Act)이 최종 통과됐다. 야당인 국민당은 메탄 감축 목표(2050년까지 2017년 배출량 기준보다 24~47%까지 감축)에 대해서는 "끝까지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녹색당은 탄소제로법뿐만 아니라 △이 법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연구 및 분석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기후위원회 설립 △대중교통 비용 절감 △철도 및 자전거 시설 투자 △보존부 예산 확대와 같은 환경정책을 내세웠다. 또한 △부유세 도입(연간소득 150,000달러 이상인 사람의 세율을 33%에서 40%로 인상) △성별 임금격차 해소 △임대주택 확대 등과 같은 사회 정책과 더불어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 안도 함께 제안했다. 녹색당이 제안한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와 총선이 함께 진행됐던 2020년 10월 총선, 녹색당은 농업, 운송, 해양, 주택, 빈곤, 에너지 분야 총 6가지 분야에서 기후보호와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공약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선거에 임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도가 치솟자 녹색당은 다시 한 번 기후위기에 대해 강조했다. 선거결과 정당득표율 7.9%. 녹색당은 9명의 비례대표 의원과 1명의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며 전체 120석 중 10석을 얻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1999년 첫 지역구 의원 이후 11년 만의 배출이었다. 지역구로 당선된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이자 최연소로 국회의원이 된 스와브릭 의원이었다. 스와브릭 의원은 △기후보호를 위한 기금 확대, △지속 가능하고 저렴한 교통수단, △임대주택과 노숙인 자립 지원 확대 등을 자신의 집중 과제로 설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가 50.7% 반대표로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아쉽지만 목적에 맞는 마약법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주요 언론에서는 "녹색당이 복지 시스템의 급진적 개편과 15년 이내에 석탄과 화석 연료 사용을 종식시키는 등 대담한 정책으로 뉴질랜드의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기꺼이 떠맡을 유일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도했다.한국과는 사뭇 다른 뉴질랜드 선거제도와 문화
뉴질랜드 선거제도는 한국에도 이미 많이 알려진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녹색당의 정치적 성장엔 해당 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선구제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녹색당은 1990년 창당 이래 치러진 두 번의 초선 동안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1993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함께한 동맹당(Alliance)은 득표율 18.2%를 기록하고도 단 2석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총선과 함께 실시된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국민투표는 이후 뉴질랜드 녹색당 성장에 전환점이 되는 결과를 얻었다. 뉴질랜드 국민의 53.86%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에 찬성한 것이다. 한해 전인 1992년 진행된 1차 국민투표에서 무려 70.51%의 뉴질랜드 국민이 4가지 선거제도 안 중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한 바 있다. 최종 국민투표가 있기 전, 기존의 선거제도를 유지하려는 양대 정당과 이들과 연결된 기업들은 '선거제도의 개혁이 민주주의의 재앙이 될 것이며 경제에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녹색당을 비롯해 여러 진보 정당, 시민단체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총력을 쏟았고, 결국 투표가 있던 마지막 주, 뉴질랜드 주요 신문들도 선거제도 개혁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역사적인 선거제도 개혁 이후 치러진 1996년 선거에서 녹색당은 또다시 동맹당으로 선거에 참여, 전체 10.1% 득표율로 획득한 13석 중 3석에 녹색당 의원을 배출했다. 동맹당 활동은 녹색당에게 첫 국회 입성이라는 성과를 가져다주었지만, 동맹당에 반대하는 내부 갈등으로 일부 당원이 탈당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결국 녹색당은 1997년 동맹당에서 탈퇴해 그 이후 총선부터는 녹색당의 독자적인 후보를 내고 선거에 참여해 왔다. 녹색당은 오랫동안 지역구 후보보다는 비례명부 작성을 통해 선거에 임해왔다. 지역구에서 노동당과 국민당 후보를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은 다른 어떤 정당보다 가장 민주적인 절차로 비례명부를 확정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먼저 각 지역에서 전 당원 투표를 통해 1차로 비례대표 후보들이 선출된다. 그다음 각 지역에서 선발된 대의원들이 후보자들의 입후보 소감과 토론을 진행한 뒤 투표로 최종 비례명단 순위를 결정한다. 2023년 10월 선거를 앞두고 뉴질랜드 녹색당은 지난 5월 말, 31명의 비례명단을 발표했다. "차기 정부에 녹색당의 기후친화적 정책을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자와 함께 총선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선거는 지난 수십 년간 치른 어떤 선거보다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녹색당은 의회에서 대담한 기후행동, 자연 보호, 안전하고 저렴한 주거를 보장하기 위해 강력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31명의 비례명단 중 4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거구에 지역구 의원으로 선거에 나섰다. 비례명단에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지역구 의원으로 단독으로 출마하는 후보도 6명이나 된다. 여기에는 2019년 시의원으로 당선된 마오리 출신의 테모사 폴 의원도 있다. 지난 3년 동안 웰링턴시 의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폴 의원은 웰링턴시 지역구 후보로 첫 총선에 도전한다. 선거를 앞둔 뉴질랜드에선 한국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선거운동 모습을 보기 어렵다. 뉴질랜드 녹색당의 선거캠페인에서 활동한 전소윤 당원은 "(대신) 후보들은 잠재적 지지자들에게 직접 전화하고 가가호호를 방문해 선거유세를 할 수 있다. 뉴질랜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기피하며 정당 가입을 하지 않는 청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녹색당은 근사한 대안을 내며 소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기후이주민, 난민은 우리 모두의 문제
뉴질랜드 녹색당에겐 기후보호 정책, 사회복지 확대 정책 외에도 핵심 정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민자 정책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1960년대부터 자국의 노동력 부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입시켰다.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과 비슷하게, 이민자 유입에 반대하거나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현재 뉴질랜드에선 자국보호주의,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뉴질랜드제1당같은 극우정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 뉴질랜드 양대 정당인 국민당과 노동당은 이미 자국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노동 이민자들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정책기조를 돌렸다. 원내 진출 정당 중에서 유일하게 이민자 수를 제한하지 않고 있는 정당은 녹색당 뿐이다. 2017년 총선을 준비하면서 녹색당은 인구 증가의 1%로 이주 상한선을 제안했지만 여러 이주민 단체의 항의와 비난에 이 정책을 포기한 바 있다. 반이민주의,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 문제가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기후난민이 유입된다면? 그동안 뉴질랜드 정부는 기후문제로 인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이웃 남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의 난민신청 시도를 거부해 왔다. 이에 녹색당은 지속가능한 인구 수준을 고려한 개방적이고도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녹색당은 '뉴질랜드와 태평양 내에서 기후변화 영향을 받는 지역의 지역사회 및 개인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을 확립할 것'을 당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총회 셋째 날인 6월 10일 토요일 오후 3시 반부터는 아시아태평양 녹색당 연합이 주최하는 "기후이주와 강제이주(Climate Migration and Displacement)" 세션이 진행된다. 이 세션을 제안한 이는 뉴질랜드 녹색당원이자 아시아태평양 녹색당 연합 사무국장인 페피 킹이(Pefi Jingi)이다. 그는 "2050년이 되기 전에 전 세계 12억 인구가 기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인구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으로 이주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주는 사회경제적인 요인에 의해 더욱 결정되며, 이주·정착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생계와 삶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라며, 기후 이주민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지역 간, 국가 간 법률과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세션에는 페피 킹이 아태 녹색당연합 사무국장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녹색당에서 활동하는 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 문제 분야 변호사인 에밀리 서턴(Emily Sutton)과 마오리 원주민 출신의 로파타 무어(Rōpata Moor)가 스피커로 참여한다. 이들은 호주, 네팔, 인도, 오스트리아에서 기후이주와 난민 분야에 활동하는 당원들과 함께 기후이주민 및 난민 현황과 이들에 대한 보호, 정착지원 등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8일부터 시작된 총회는 부분적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자세한 참여 정보는 를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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