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 계약과 정산시스템의 명과 암
표준계약서는 아이돌의 육성과 관리에 필요한 소속사의 투자비용과 이를 고려한 위험 부담을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속 정산 단계에서 비용 회수와 위험 부담 사이의 이익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수익 발생 누락의 문제점과 정산내용 공개의무의 존재는 2022년 11월 가수 이승기가 음원 사용료를 정산받지 못했다고 소속사 후크에 문제를 제기하고 계약을 해지하면서 공론화했다. 이 때문에 연예인 권리 보호를 위한 정치적 논의가 이어졌다. 일명 '이승기법'으로 알려진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2023년 4월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연예기획사 등)가 회계 내역 및 지급해야 할 보수에 관한 사항을 소속 예술인의 요구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연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기 어렵게 만들었던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아울러 개정안이 중소형 기획사의 투자금 관리와 수익 회계 처리의 투명성을 더욱더 요구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보통 정산 문제는 아이돌의 활동 초기에 제기되지 않는다. 피프티피프티를 향한 여론이 좋지 않은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도 정산 문제 제기 자체라기보다는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수익의 관점에서는 국내 활동이 뜸했던 피프티피프티가 이 시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다소 무리수로 보인다. 국내 활동이 미비했던 피프티피프티가 기존의 대형 기획사 아이돌도 견뎌내는 수년간의 수익 창출 활동을 기피한다는 비판이 지지를 얻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아직 데뷔 7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정산을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통상 전속 계약은 체결 당시의 상황과 계약 기간에 따라 변동되는 정산 비율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불명확한 정산 방식 때문에 수익이 빠지거나 비용이 지나치게 청구될 수 있다. 계약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계약 권리가 이전되거나 재정적 투자 공동 사업약정 탓에 정산 비율이 왜곡되는 일도 발생한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소속사와 아이돌 간 상호 신뢰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피프티피프티 사례의 경우 피프티피프티가 소속사에 요구하는 것은 정산의 이행, 즉 지급이 아니라 투자금의 사용 출처 확인이다. 이 경우 투자금이 얼마였는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추후 실제 정산 이행 시 소속사가 수익에서 상계해야 할 비용을 명확히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분쟁 해결을 위한 구제수단의 한계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은 아이돌 계약 분쟁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 시작점은 2009년 동방신기 분쟁이라고 할 수 있다. JYJ로 활동한 김재중 등 3인 멤버가 13년의 전속 계약 기간은 사실상 종신 계약을 의미하며 SM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강다니엘의 전속 계약 분쟁은 원래 소속사인 LM 엔터테인먼트가 강다니엘의 사전 동의 없이 MMO 엔터테인먼트 및 제3자에게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발생했다. 법원은 강다니엘 측의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였다. 문제가 된 계약은 사전 동의 없이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으로, 이는 전속 계약 위반이며 신뢰의 결여로 판단된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이로써 강다니엘 전속 계약의 효력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LM 엔터테인먼트는 이를 항고하여 분쟁이 계속되었고, 강다니엘은 앨범을 발매했지만 충분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한번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면 아이돌 브랜드는 큰 타격을 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프티피프티 사건은 관련 분쟁 해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피프티피프티는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계약 해지 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다. 가처분은 신속하고 독립적인 절차로 간단하고 빠른 분쟁 해결을 목표로 하여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본안 소송의 판결과 동일한 법적 효력이 없고 입증에 관한 절차적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분쟁의 원인은 잠재적인 상태로 남아 있는 가운데, 당사자들은 이미지 손상이나 정신적 고통의 피해를 겪고 이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분출하거나 여론에 필요 이상으로 기댈 수밖에 없다. 일련의 움직임은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한 분쟁 해결 절차를 취하는 방식이 적절한지 고민하게 한다.수익 다각화와 지적재산권의 중요성
피프티피프티 분쟁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경쟁적으로 진행된 상표권 출원 부분이다. 상표 출원은 해외시장에서의 활동, 관련 상품 제작 및 마케팅, 브랜드 경영에 매우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상표법은 등록 중심 원칙, 선출원 원칙, 1상표 1출원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K-pop 초기 한류 스타인 비의 해외 분쟁을 통해 이러한 중요성이 드러났다. 비는 2006년 미국 공연에서 '레인'이라는 상표를 사용했고, 이 때문에 상표권 침해 소송과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비는 미국에서 배우로, 미국 외 지역에서는 가수와 배우로만 '레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이라이트'라는 팀명 변경도 사례로 있었다. BEAST 멤버들은 그룹명을 사용하기 위해 상표권자와 합의해야 했다. 신화의 상표권 분쟁도 유사한 사례이다. 신화 멤버들의 소속사 이적 후 SM이 '신화' 상표를 등록하고, 사용료를 지불하며 그룹명을 유지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상표권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상표 등록 시 다양한 업종 분류를 고려해야 함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으면 등록한 업종에서만 보호받아 브랜드 확장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전에는 계약 기간 종료 후 다른 기획사와의 계약 시 발생했던 상표권 분쟁이 피프티피프티 사건의 경우 분쟁 초기부터 발생한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K-pop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와 분쟁 과정에서 지적 재산권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프티피프티의 성공은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었던 만큼 그 분쟁 역시 전형적이지 않아 보인다. 대중문화예술산업과 관련한 분쟁에서 통상 쟁점은 전속 계약 기간, 손해배상액, 출연료, 수익 분배 등이지만 피프티피프티 사건은 그렇지 않다. 피프티피프티를 둘러싼 전속계약 분쟁에는 과거 사례와 같이 반복되어 제기되는 쟁점과 새롭게 논의가 요구되는 쟁점이 섞여있는 만큼 업계와 관련 기관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분쟁 역시 K-pop 산업과 아이돌 시스템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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