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자기에게, 책임은 부하에게'
윤희근 경찰청장은 제23대 경찰청장이다. 앞서 22명이 그 자리를 거쳐갔다. 이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사람도 적지 않아 '경찰총수의 영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언론 직업상 다른 경찰청장들의 부침도 유심히 관찰했다. 생각해보면 경찰청장 직책만큼 풍파가 심한 정부 고위직도 별로 없는 듯하다. 2003년 경찰청장 임기제가 도입된 뒤 임기 2년을 채운 경찰청장은 이택순·강신명·민갑룡 청장 세 명뿐이다. 임기제 이전까지 합쳐도 박일룡·이무영 청장 등 5명만이 2년을 재직했다. 1년도 채 안돼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 부지기수다. 임기 중 대형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중도 하차한 사람도 적지 않다. 역대 경찰청장들의 능력과 리더십, 업무 성과 등은 개인적으로 편차가 있다. 그중에는 구시대적인 인식, 인권 감수성 제로의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사람들도 있다. "경찰의 중립성 문제는 그 나라의 민주 발전과 국민의 의식 수준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까마귀들이 몰려들어 불법 폭력사태 문제가 발생한다" "조폭과 전쟁을 벌이면서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겠다. 총을 쏴서 잡아라" 등등 경찰청장들이 남긴 '어록'이 많다. 그런데 리더십, 조직내 신망도, 경찰의 미래지향적 발전 노력, 민생 치안 성과 등을 기준으로 역대 청장들의 성적표를 매겨보면 결과가 어떨까. 순전히 주관적 판단이지만 윤희근 청장이 최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훌륭한 리더의 요건 중 하나는 '공은 부하에게 돌리고 책임은 자기가 지는' 자세다. 그런데 윤 청장은 완전히 정반대다. 이태원 참사로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장, 112치안종합상황실장,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등이 구속되고 서울경찰청장,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과 상황3팀장 등이 불구속 형사처벌을 받았다. 부하 직원들이 이처럼 줄줄이 법적 처벌을 받았는데도 윤 청장은 아무런 지휘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게다가 윤 청장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날 술을 마신 사실을 국회에서 스스로 인정했다. 음주 후 잠자리에 드느라 사건 당일 밤 11시32분과 11시52분 경찰청 상황담당관의 참사 발생 보고를 놓쳤다. 그가 사건 발생을 인지한 것은 참사가 일어난 지 2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음주 지휘'라고도 할 수 있다. 부하 경찰들에 대한 지휘 관리 실패는 말할 것도 없고 윤 청장 본인의 업무 태만도 심각했다. 역대 경찰청장들은 중대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 11월 서울 여의도 전국농민대회 시위 중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농민 2명이 숨진 사건으로 허준영 경찰청장이 경질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조현오 경찰청장이 2012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납치·토막살해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부실 대응 등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당시 조 청장은 사건 발생 8일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용서를 구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윤희근 청장은 그런 결기가 전혀 없다. "경찰법상 지역 내 다중 운집 상황에 대한 교통 혼잡 및 안전 관리는 자치경찰 사무여서 경찰청장의 지휘 감독 의무가 없다"는 말로 빠져나가기 급급하다. 법률상 책임이 없다고 윤리적 도덕적 책임까지 면탈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떠나 부하 경찰관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경찰총수가 자기 목숨 연명에 매달리는 것은 얼마나 남루한가.'경찰 위상 추락'에 앞장서는 경찰총수
윤희근 경찰청장을 역대 최악의 경찰청장으로 꼽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경찰의 유례 없는 위상 하락이다. 그의 취임 뒤 경찰의 위상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윤 청장은 이를 막으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노력은커녕 오히려 위상 약화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경찰청은 윤 청장이 경위로 임관하고 넉 달 뒤인 1991년 8월1일 출범했다.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를 '독립 외청'으로 분리한 것은 경찰 민주화를 향한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오랜 세월 '정권의 사병' 노릇을 해온 경찰을 중립으로 이끌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쪽으로 물줄기를 거꾸로 돌려버렸다. 사실 경찰청에 대한 통제 문제는 경찰청 출범 무렵부터 큰 논란을 빚었다. 당시 내부무가 마련한 '내무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규칙' 시안에 대해 경찰이 "경찰청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크게 저해하는 독소 규정"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내무부는 당시에도 본부에 치안감급의 현직 경찰을 국장으로 하는 '치안행정국'을 설치하려 했으나 경찰의 반발을 감안해 막판 시안에는 빠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행안부의 경찰청 지휘 통제 방침에 일선 경찰서장 등이 강력히 반발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경찰관들과 정부가 정면 대립하는 사태는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당시 치안본부는 1991년 7월4일 이종국 본부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내무부 시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자체 수정안을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경찰대 출신 소장 간부들도 경찰대 총동창회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위한 당초 경찰청 발족의 의미를 축소 또는 퇴색시키고 온 국민의 숙원인 경찰 조직의 바로서기를 저해하는 움직임"이라고 강력히 성토했다. 결국 내무부는 경찰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치안본부가 마련한 수정안을 대폭 수용하는 쪽으로 후퇴해 이 사안은 일단락됐다.'검찰의 하수인' 으로 전락한 경찰
조직의 이해 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대응하는 분위기는 경찰과 검찰이 확연히 다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검찰 개혁 방안, 검찰 인사 등을 두고 검사들의 집단 항명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검찰 수뇌부는 이를 응원하고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항명 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은 검찰 조직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던져 희생한 '영웅' 취급을 받았다. '조직의 이해'를 위해서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찰에 비해 경찰은 오합지졸 수준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수뇌부의 보신주의다. "경찰 수뇌부는 단 한 번도 현장 경찰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는 한탄이 경찰 안에서는 터져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어찌 보면 '경찰은 영원히 검찰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조직'임을 윤희근 경찰 체제는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한때 검찰과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놓고 기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 마치 양쪽이 호각세를 이루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검찰 공화국'의 시퍼런 기세 속에서 경찰은 검찰 앞에 오금도 펴지 못하는 조직이 됐다. 최근 법무부는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수사준칙 개정안을 마련해 관계기관의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그런데 경찰청은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동안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쟁점별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를 두고 한 언론은 "굴욕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경찰의 백기투항"이라고 논평했다. (<노컷뉴스> 8월29일)'갈팡질팡 주먹구구' 민생 치안
경찰의 최대 존재 이유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윤 청장 체제의 경찰은 이 대목에서 치명적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 급변하는 범죄 환경과 범죄 추세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도 효과적인 대응책도 없다. 장갑차와 특공대 배치 등 보여주기식 치안에 급급하더니 급기야는 '의경 부활'을 불쑥 들고 나왔다. 경찰의 치안 무능을 군에 입대할 젊은이들을 내세워 해결하려는 발상은 잼버리 대회의 실패를 '나이 어린 케이팝 아이돌'들로 만회하려는 발상과 정확히 닮은 꼴이다. 경찰의 지난 역사를 보면 '시국 치안'과 '민생 치안'은 늘 반비례의 관계에 있었다. 경찰이 시국 치안에 집중하면 살인·강도·성폭행·절도·폭력 등 강력 사건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검거율은 떨어진다. 한정된 경찰 인력과 자원을 권력의 정치적 요구에 맞춰 운용하다 보면 강력 범죄 대응, 시민의 안전 확보 등에는 소홀해지게 마련이다. 이미 그것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태원 참사부터가 시국 치안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에 일어났다.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장이 나간 현장은 이태원이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대회'였다. 경찰의 관심 우선순위가 '시민 안전'이 아니라 '정권 안전'에 쏠려 있던 것이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경찰이 '건폭 수사'한다면서 노조원들 잡아들이는 데 힘을 쏟고 파업 시위 주동자 잡으러 쫓아다니는 사이 지하철역 흉기 난동 사건,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등 흉악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조현오 경찰청장을 사퇴하게 만든 경기도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경찰이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외치며 시국 치안에 몰두하던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금 경찰이 하는 모양새로 봐서는 앞으로 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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