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의 여파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고,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중국은 한·미·일 협력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한반도 정세는 강대국의 힘이 투사되고 부정적 압력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금 능동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기회로 삼는 국가들은 항상 있어왔다. 튀르키예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승인 조건으로 쿠르드 무장조직 지원 금지 및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 철회 약속을 받아냈다. 인도는 미국 주도의 쿼드(QUAD)에 가담하며 국경분쟁 중인 중국을 견제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기회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실현할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와 대량의 무기 공급 계획을 발표한 후 50년 전 전면전을 치른 미국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을 체결했다. 이는 베트남이 국가 간 맺는 관계 중 가장 높은 단계로 국제질서의 혼란기에 기회를 만드는 실리 외교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국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주변 강대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한반도에 투사되는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을 분산하고 위기 속에 기회를 만드는 창의적 대안을 고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미국, 안보를 위한 방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유럽, 무기만 지원한다면 끝까지 싸우겠다는 우크라이나, 이 전쟁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러시아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서방 전체와 싸우는 모양새다. 이러한 러시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유일한 나라는 북한이다. 최근 북·러의 밀착은 현 지정학적 상황을 활용하려는 양국의 전략적 행보이다. 4년 5개월 만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의 장소가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라는 것만으로도 큰 상징성이 있다. 운반 로켓 기술력 부족으로 두 차례 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으로서는 우주 기술 이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소련과 체결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에 의한 핵 기술 이전에 기인한 것이었다. 인접국의 핵무기 보유와 ICBM 고도화는 러시아에도 잠재적 안보 위험이며, 상호 교환적 거래의 관점에서 러시아가 북한에서 얻을 실익이 현저히 적지만 현 국제 정세에서 북·러는 윈윈(win-win) 관계임이 분명하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위기 상황에 대응해온 북한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으로 고립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국제 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무기 거래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평양과 모스크바가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행히 북·러의 관계 강화가 북·중·러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이 북·중·러 연대의 선봉에 서서 북·러와 같은 배를 타는 것은 자국의 큰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를 오가며 협상의 지렛대를 키우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분주하다.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 이후 경제적 대외의존도 역시 상승했으며 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중 경쟁이 진영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중국에 대한 유럽 및 아시아에 속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계심이 커졌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 경제안보를 위한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중국은 경제 성장 둔화와 미중경쟁으로 국내외적인 어려움에 봉착했고,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는 지금이 오히려 중국과 협력을 논의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중·일 고위급 회의를 계기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삼국이 역내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소통의 물꼬를 터야 한다. 미중 대결이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한·미·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 그러나 한·미·일 협력의 목적은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같이 강대국의 힘의 균형점 역할을 하는 중간국이 급격히 한 편으로 균형점을 이동하게 되면 다른 한편과는 적대 관계가 형성되며, 안보를 위한 선택이 오히려 극단적인 안보 불안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으며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한반도 평화에 대단히 큰 위협이 되었다. 이는 강력한 북·중·러 연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한반도 안보에 여전히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북·중·러는 핵과 ICBM을 보유한 이웃 국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한국의 안보 전략은 이러한 지정학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수립되어야 한다. 한국의 안보 전략이 한·미·일 편향 일변도로 이행한다면 북·중·러와 관계가 악화하여 오히려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안보 전략은 한반도에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이 상승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행해야 한다. 어렵지만 미·중·일·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러와 비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북한을 견제하기 더 어려워진다. 이것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도 중국·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한국은 현 상황을 한·미·일 협력에 비해 등한시했던 역내 외교 강화의 기회로 삼는다는 능동적 해석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국이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고 한국도 역내 안보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이 미국·일본과의 협력에만 경도되어 중국과 비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자칫 미·일 협력에서도 레버리지(지렛대)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 2022년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의 미래 30년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공동 청사진을 마련해야 했음에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경쟁 심화로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미중경쟁으로 한반도에 신냉전 기류가 고착화하지 않도록 한·중·일 협력 모멘텀을 만들고 한중관계를 회복하여 경제적, 안보적 실익을 얻어야 한다. 중국의 한국 단체 관광 허용을 계기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여 혐한·반중 감정 완화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도 중단했던 고위급회담 재개하여 경쟁 속 협력을 도모하며 대립의 수위를 낮추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도 한·미·일 협력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중국과도 우호적인 한중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지금이 역내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여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위상에 맞는 국제질서에 대한 기여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미중 간 힘의 대결이 심화할수록 한국 외교의 외연 확장 못지않게 남북·한중·한러 등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양자 관계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 중·러의 핵심이익을 침해하지 말고 한중관계를 우호적으로, 한러관계는 위기관리로 서로의 레드라인을 지켜 양국관계를 유지해야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국제 사회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동시에 다가올 평화의 시기에 더욱 발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최재덕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한중관계)를 받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 국제관계 박사후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능분과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현대중국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슬라브유라시아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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