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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유명시인에게 3000만원 소송 걸린 피해자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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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유명시인에게 3000만원 소송 걸린 피해자가 찾아왔다

[이은의 변호사의 예민한 상담소] 박진성은 왜 법정구속되었는가

2015년, 김현진은 지방 소도시에 살고있는 17세 여고생이었다. 시인을 꿈꾸던 여고생은 그 당시 이름이 제법 알려진 한 중년 시인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12만 원을 지불하고 '온라인 시 강습'을 받기로 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자식들 돌보느라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차마 시 공부를 하겠다고 손을 벌릴 수 없었다. 그 해 내내 모은 용돈 12만 원을 망설임없이 보냈다.

그렇게 설렘과 기대로 시작한 시 강습이었지만 시작부터 처참했다. 아버지 뻘이었고 평소 존경했던 시인은 17살의 김현진에게 애인이 되달라며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성적 언동을 이어갔다. 재차 직접 거부감을 피력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교복 입은 사진을 보내달라던 시인은 여고생에게 다니고 있는 학교가 어딘지 알고 있고 찾아갈 수도 있음을 은근히 시사하기도 했다. 17살의 김현진은 안간힘을 내며 예정된 시강습만이라도 채우고 싶었지만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강습받기를 중단했다.

약 1년이 지나고 수능을 끝냈을 때,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문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18살의 김현진은 자신의 피해를 있는 그대로 트위터(현 'X')에 폭로했다. 자기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폭로 직후, 가해를 했던 시인이 연락을 해왔다. 폭로 글에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한 행동이니 모를 리 없었다. 시인은 사과하겠거나 보상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며 이름만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김현진은 시인이 연락을 해온 상황 자체가 무서웠다. 대화를 하고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무시됐다. 시인은 무릎을 꿇어 사죄하겠다며 끈질기게 용서를 종용했다. 가해자의 뒤늦은 무릎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냐는 의미로, 주시려거든 돈이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금전을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은 시인이 병원비 등을 주겠다거나 공짜로 강습을 해주겠다는 등 말을 이어갔지만, 김현진은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글을 썼고, 그런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

사과를 받아달라던 시인은 태도가 돌변해 SNS 등에 김현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무고녀'니 '무고범'이니 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김현진의 이름과 주소지, 학교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고 사진을 올렸다. 김현진의 주민등록증도 올렸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김현진은 돈도 정보도 부족했다. 쓰나미처럼 일상을 덮쳐온 2차 피해를 겪으면서 뭘 해야할지 몰랐고 뭘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수년의 피해를 보았다.

그 시인은 보도지침을 어긴 언론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현진은 그런 재판이 진행되는 중임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그 사이 시인이 승소를 하고, 판결문에는 김현진의 피해사실을 비롯하여 그 시인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고소했다가 불기소된 사건들이 '허위'라고 명명되어 기재됐다. 이때부터 김현진에 대한 2차 피해는 더 극심해졌다.

2019년, 그 시인은 김현진이 거짓 폭로를 해서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먼저 소송을 걸어왔다. 소장을 받아들자 막막했다. 김현진은 그 시인과 혼자 힘든 다툼을 이어가던 유진목 작가에게 피해를 알렸다. 유진목 작가는 천희란 등 동료 문인들에게 이를 알리며 적극적인 도움의 길을 모색했다. 딱 4년 전인 2019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김현진과 유진목이 선임을 위해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박진성 시인 사건인데 변호사님이 맡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2015년부터 김현진의 삶을 마구잡이로 휘저은 중년의 유명시인은 박진성이었다.


박진성은 이미 개별 언론사들과 손해배상 재판을 지속했다. 그런 최초의 재판에서 박진성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폭로가 모두 허위라고 명명한 1심 판결문은, 그 뒤 이어진 재판들에서 복제품같은 판결문들을 잉태했다. 온라인 시 강습을 빌미로 17살 여고생에게 가해진 온갖 성적 언동들이 SNS 대화 목록으로 버젓이 남아있었고, 그걸 보고도 내려진 판결들이었다. 이를 뒤집어야 하는 승산이 희박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박진성의 2차 가해는 무심한 법원의 판결과 방관하는 언론에 힘입어 끝간 데를 모르고 이어졌고, 김현진에게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선택지 없는 전쟁이 시작됐고, 여성 문인들이 십시일반 금전과 마음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해가 세 번을 바뀌고, 박진성과 김현진에 대한 당사자 신문까지 진행된 민사 1심에서 판사는 김현진이 피해자임을 인정했다. 희박한 승률을 알지만 절박하게 달려온 길에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이후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이 사건은 형사고소와 민사항소심도 진행할 수 있었다. 형사고소는 시효 문제 때문에 미성년자 대상 통신매체이용음란 등은 다룰 수가 없었다. 박진성이 2016년 이후 자행해온 온라인상에서의 명예훼손만을 고소했다.

2022년, 형사 1심은 박진성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지만 집행을 유예했다. 이례적으로 사회봉사 320시간을 명령했다. 수년간 김현진이 입어온 피해의 역사를 생각하면 고무적인 결과였지만, 발생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후 다시 1년. 항소심은 드디어 박진성에 대하여 실형 1년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판결일엔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법정을 메웠고, 다함께 울고 웃었다.

피고인이 범죄혐의를 부인하지 않는 형사사건 항소심에서 원심의 판결을 넘어 형량이 늘어나는 일은 몹시 드물다. 집행유예가 되었던 사건이 특별한 사정없이 실형으로 선고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박진성 시인에 대한 대전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판결의 결과가 아니라 판결의 내용이다. 이 판결은 사건 피해자 김현진에 대한 화답에만 머물지 않는다. 존재했지만 침묵을 선택한 박진성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성범죄나 2차 피해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우리 법원이 잊지 말아야 할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박진성이 김현진에게 저지른 잘못은, 피해자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른 후 알려졌을 때 내세우는 변명이나 피해자에게 저지르는 2차 피해가 어떤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함께 가해자가 법원을 향해 말하는 자백이나 반성이 왜 피해자들에게 울림을 갖지 못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이런 사건을 다루며 빠지기 쉬운 오류가 어느 지점인지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진성에 대한 형사 항소심 판결은 시작점에서 그간 박진성이 무고성 사건을 경험하다보니 김현진의 폭로가 무고의 일종으로 생각했다는 변명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시작한다. 재판부는 박진성이 김현진 외에 과거 박진성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했던 사건들을 '검사가 범죄혐의 인정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기소 결정을 하였던 사건들이다'라고 표현했는데, 박진성이나 형사1심에서 김현진 외의 사건들이 무고였다고 했던 것이 확증편향된 잘못이었음을 지적했다.

이어 박진성이 김현진에게 과거에 건넨 말이나 문자메시지 내용이 있는데, 이걸 모두 망각한 상태에서 김현진이 금품을 노리고 허위 미투를 하였다고 오해하여 사죄를 강요하고 2차 피해 범행으로 나아갔다고 볼 여지는 없다면서 오히려 박진성이 김현진의 정당한 항의와 사과 요구를 이와 다른 사건들과 비슷한 것처럼 오인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의심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지점은 박진성의 범죄를 평가한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여준다. 박진성은 김현진의 신상을 무차별 유포하며 무고범이라는 거짓말을 하였고 그 증거가 명백하였지만 자신이 허위 미투를 당한 줄 착각하여 그런 허위 게시물을 썼다고 변명했는데, 이를 1심 법원은 '참작할 동기'로 평가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이를 반박하였고, 오히려 이것이 '비난할만한 범죄동기'에 해당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특별양형인자로 반영하지는 않았는데, 이를 통해 수사기관이 이러한 문제점을 수사하고 입증하는데 소홀했음 역시 지적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박진성이 자백반성한다면서 민사재판 항소를 취하하고 1심에서 판결된 금원을 공탁하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진성이 김현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의 진행 과정이나 그 판결 후에도 박진성이 불복하여 1년3개월 이상 책임을 부인하다가 형사사건 1심 선고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민사사건의 항소를 취하하였을 뿐인 점, 이러한 박진성의 태도 변화는 김현진에 대한 명예훼손 범죄가 자행된 때로부터 3년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박진성에게 유리한 양형사유가 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항소심은 피고인이 형사 1심 판결을 앞두고 피해자에 대한 민사소송을 취하하였다거나 민사소송 판결금을 공탁하였다는 사실이 피고인이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피고인의 소송전략의 일종일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진성은 민사소송의 금전적인 손해배상과 이행을 두고 공탁법에서 말하는 형사공탁의 특례조항에 따른 공탁처럼 이야기해왔다. 현재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탁이 가능하도록 하는 공탁법 조항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박진성은 민사소송의 판결금을 공탁하면서 이것이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의 피해를 보전한 것인양 주장했는데, 형사 1심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이런 방식의 '상황인식은 위험하거나 적절하지 않다'라고 명시했다. 항소심은 가해자가 피해자가 형사합의를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응당 피해자에게 지불해야 할 손해배상금원을 공탁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느라 공탁하게 된 형사합의금과 등가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는 이 사건의 김현진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형사사건들에서 가해자들이 합의를 원치 않는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금원을 공탁하는 것이 기계적인 감형사유로 작동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박진성은 형사재판에 항소한 후 성폭력 예방 교육과정을 듣거나 선플달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며 반성하고 뉘우쳤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서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진성이 그간 자기가 올린 김현진의 신상정보나 허위사실들을 정정하려는 노력을 한 적이 없는 등 진정으로 범행을 뉘우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는 근래 성범죄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여성단체에 대한 기부금, 교육이수, 봉사활동과 같은 선행 이력을 반성의 징표인양 내세우고 이를 법원이 유리한 양형인자로 인용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리는 부분이었다.

수많은 피고인들이 기소가 된 후 선처를 받기 위해 법원을 향해 사과를 외치지만, 정작 피해자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기 드물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인데, 법원이 이런 피고인들을 두고 자백반성을 하였다며 유리한 양형사유로 받아들일 때 재차 상처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박진성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우리 형사법원이 양형을 하면서 형식적이고 단편적으로 취급해온 자백과 반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원성은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비단 징역 몇 년이라는 숫자와 결과만을 두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법원이 이를 판단한 이유를 피해자도 국민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손해배상금을 형사공탁금 제도의 취지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아닌 사과의 언동을 반성과 뉘우침으로 받아들이거나 범죄에 이르게 된 동기를 지극히 가해자의 입장에 기울어진 판결은 가해자를 적절하게 응징하지도 피해자를 제대로 위로하지도 못했다. 당연히 사회에 경종이나 울림이 되지도 못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처벌에서 이어지는 범죄예방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언론 기사 대부분이 <연합뉴스>의 짤막한 판결 보도를 거의 그대로 인용했고, 박진성이 감옥에 갔다는 것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이번 형사 항소심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그것이 아니다. 김현진은 박진성으로부터 극한의 피해에 내몰렸다.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사회는 김현진을 보호하지 못했다. 오히려 법원은 박진성의 2차 가해에 힘을 실어주었고, 언론은 박진성의 2차 가해를 보면서도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김현진이 박진성과 해온 재판 과정은 이를 보다 못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긴 시간 유기적으로 연대해 온 과정이었다. 그 과정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던 끝에, 이번 형사 항소심에서 김현진의 피해가 어떤 것이었음을 제대로 판결받게 되었는데 그 판결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김현진만이 아니라 우리 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기준을 선언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김현진의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도움되는 결실로 끝났다. 이제 무엇을 돌아보고 바꿔나갈지에 대한 숙제가 법원과 언론에 남았다.

덧붙여…

박진성 시인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범죄행위로 법정구속이 될 때까지 4년간의 긴 싸움을 해온 김현진 씨, 그 싸움을 해나갈 수 있도록 중심이 되어준 연대자이자 박진성 시인의 또 다른 피해자였던 유진목 작가님, 4년간 먼 길 마다않고 법정을 찾아 함께 해주신 천희란 작가님을 비롯하여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 여성 문인 여러분, 그리고 시민들. 소송비용에 십시일반 동참해준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 사건 판결로 과분한 감사 인사들이 김현진 씨에게 또 그의 변호사였던 제게 왔으나, 이렇게 보여주고 엮인 마음들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못한 여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이제, 고통스러운 날에서 영광스러운 훈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김현진 씨를 비롯한 우리들은 각자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우리의 경험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할 것입니다. 뜨겁고 벅찬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이은의 변호사.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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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변호사([email protected])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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