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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돕는다'고 둔갑한 정책,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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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민 돕는다'고 둔갑한 정책,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자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다주택자에게 혜택 돌아가는 특례보금자리론
올해 초 정부(한국주택금융공사)는 특례보금자리론을 1년 시한으로 도입했다. 기존 보금자리론, 안심전환대출, 적격대출을 통합한 특례보금자리론은 현 정부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펴는지, 우리나라 집값이 오르내리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엿볼 있게 한다는 점에서 따져볼 가치가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의 총 규모는 39.6조 원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주택담보대출 순증가액이 최근 5년 동안은 연평균 48조 원이고 지난해는 28조 원이었다. 이에 비춰볼 때 특례보금자리론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의 유효 대출 신청액은 9월 말에 이미 목표액을 넘어선 데 이어 10월 말에는 41.7조 원을 기록했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특례보금자리론에는 여러 혜택이 주어졌다. 무엇보다 대출금리가 시중금리보다 낮았다. 정부 설명자료에 따르면 우대 금리가 적용되면 대출 금리는 3.75~4.05% 정도인데, 이는 시장 금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만기도 30년을 넘어 40년, 50년까지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원리금 상환 부담액도 그만큼 줄어든다. 대출 한도도 비교적 많은 편으로, 9억 원 이하의 주택 구입자는 5억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특례보금자리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정부는 이 제도의 도입 목적이 서민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돕고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서민과 실수요자가 이 제도의 수혜자란 얘기다. 이러한 정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두 가지 점 때문이다. 먼저, 특례보금자리 이용자 가운데는 서민이라고 보기 어렵고 실수요자도 아닌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례보금자리론 이용 조건에는 소득 기준이 없다 보니 대출의 많은 부분이 고소득층 손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소득 1억 원 이상인 사람이 특례보금자리론을 신청한 금액은 전체의 16.6%를 차지한다. 소득 8000만 원 이상인 사람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그 비율이 34%에 이른다. 더욱이 특례보금자리론의 이용 대상은 무주택자뿐만 아니라 1주택, 2주택 소유자도 포함한다. 이 때문에 주택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았다. 그런데, 예컨대 연봉이 1억이 넘고 이미 주택을 두 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서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돕고자 했다면 그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제한을 느슨하게 했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특례보금자리론의 수혜자가 이 제도의 이용자뿐만 아니라 주택소유자 전체로 확대된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서민과 실수요자를 돕는다는 정부의 설명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또 다른 이유는 특례보금자리론의 진정한 수혜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집값 하락세가 지난해에는 꽤 가팔랐다. 그러다가 특례보금자리론 자금이 나가면서 그러한 추세가 바뀌는 모습을 보였다. 집값의 급격한 하락세는 일단 멈췄고 지역에 따라서는 상승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단기간에 대량으로 풀린 대출 자금이 집값 하락세를 멈춰 세우는 데 기여한 셈이다. 정부는 틀림없이 이러한 효과를 내다보면서 특례보금자리론을 설계했을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이 집값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그 규모가 커야 했고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자금이 나가야 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당연하지만 자주 놓치는 사실은 집값이 상승하면 거기에서 이익을 보는 계층이 생기지만 거꾸로 손해를 보는 계층도 생긴다는 점이다. 새롭게 집을 장만해야 하는 계층(특히 젊은 계층)은 집값이 상승하면 더 높은 대금을 지급하고 집을 사야 한다. 세입자들은 더 높은 임대료를 내야하고 한꺼번에 거액의 전세금을 올려주어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집값 상승은 무주택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주택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주택 대출의 확대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집값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영향을 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전세자금 대출까지도 집값을 끌어올리는 기능을 했다. 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고 실제로도 특례보금자리론이 도입되자 그러한 효과가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특례보금자리론은 공적인 자원을 들여서 무주택자들의 주머니에서 다주택자들의 주머니로 부(임대료)가 흘러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특례보금자리론의 최대 수혜자는 다주택자들이고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자들이다. 정부가 대출 조건을 최대로 완화해서 단기에 대량의 자금을 푼 것은 그것이 집값의 전반적인 상승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되었기 때문이지 서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구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세입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 서민을 위한 정책일 수는 없다. 정부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례보금자리론 이용 조건에는 소득 기준이 없다 보니 대출의 많은 부분이 고소득층 손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사진은 지난 3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붙은 특례보금자리론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에서 읽어내야 할 몇 가지 사실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은 집값 정책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보여준다. 첫째,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이자율 수준과 대출 규모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정책에서 보듯, 이자율 수준이나 대출 규모는 어찌할 수 없는 외부 힘에 의해 결정되는 고정 수치가 아니다. 정부는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이자율 수준이나 대출 규모를 특정한 수준(그것이 높은 수준이든 낮은 수준이든)에 어느 정도는 묶어 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어느 계층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는가이다. 둘째,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은 정부가 주택이라는 특정 부문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례보금자리론의 규모는 매우 크지만 정부는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고 단기간에 주택부문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자금의 흐름에 대한 선별적 정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셋째, 특례보금자리론의 우대금리가 시장금리보다 훨씬 낮다는 점에서 드러나듯,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은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이자율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정책 자금에 대해서 현재도 대부분 차등 금리를 적용하기는 한다. 넷째,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은 정부가 이자율이나 대출 규모의 통제를 통해 집값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는 금융을 통해 집값을 올리는 방향으로도, 내리는 방향으로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집값 정책과 관련하여 특례보금자리론이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실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뒤집으면 집값 안정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시절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의해 생긴 것만은 아니었다.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이 이를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집값 안정을 위해 이자율과 대출 규모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고,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으며, 다주택자들에게는 특례보금자리론의 우대금리와는 반대 개념인 높은 벌칙 금리를 매길 수도 있었다. 나아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다주택자들에게는 추가 담보대출을 중단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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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email protected])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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