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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방시혁의 K-팝에서 'K 떼기', BTS팬과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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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방시혁의 K-팝에서 'K 떼기', BTS팬과는 전혀 다르다

[케이팝 다이어리] K-팝에서 K를 뗀다면?

근래 들어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K-팝에서 K를 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밝히는 중이다. 이는 최근 케이팝의 성장세가 둔화했다는 지표로 인해 야기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사용한 표현들은 이 같은 위기의식을 방증한다. "K-팝은 이제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넓은 소비자층을 만나야 한다." "K의 정체성을 고수해 나가는 방식은 성장 둔화 위기 상황을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글로벌하게 보편적 가치에 접근할 수 있는 출구와 입구들을 많이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한 보편 가치'의 정체

방시혁 의장 발언이 의미하는 바는 "글로벌하게 보편적 가치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K라는 접두사를 K-팝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접두사 K의 용례는 다양하다. 먼저, K-팝, K-드라마, K-리그처럼 국가 간 체계를 식별하는 기호로 사용된다. K-팝이나 K-드라마의 경우 단순한 국가 표기 기능을 넘어 콘텐츠 수용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문화적 브랜드로서의 기의를 획득한다. 또한, 기존의 한류 콘텐츠 지형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신한류의 국면을 가리키는 K-뷰티, K-푸드, K-문학 같은 명명이 존재한다.

그런가하면 K-방역, K-국방, K-의료처럼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프레임과 새롭게 결합해 과열된 집단주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K-장녀, K-직장인, K-비리처럼 한국 사회의 모순을 자조하기 위해 K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처럼 접두사 K는 수식하는 대상에 고정된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는, 맥락과 통용되는 방식에 따라 수많은 의미로 미끄러진다.

이중, 방시혁 의장이 극복하고자 하는 K-팝의 K는 아마도 국가적 식별기호로서의 K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미권의 대중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인 '팝'에 굳이 K를 붙임으로써 메인스트림과는 확연히 구분지어져 버리는 '한국대중음악'으로서의 K-팝일 것이다. '그' BTS조차 여러 번 그래미 팝 카테고리 후보에 오르되 수상에는 실패한 것은, K-팝을 팝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서구 음악 산업의 보수성을 반영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그가 극복하고 싶은 K는 보편적이지 않은 서브 컬처 취향 수용자들이 코어 팬덤이 되어 밀고나가는 '산업'으로서의 K-팝일 것이다.

K-팝이 "글로벌한 보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정국과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최근 음악에 담긴 매우 '서구적인'(혹은 방 의장의 말에 따르면 '보편적인') 사운드로 현실화된다. 그가 추구하는 '글로벌한 보편'은 K-팝이 '팝' 안으로 수용되는 것, 그로 인해 더 많은 서구 대중이 유입되고 결과적으로 K-팝 코어 팬덤의 자리를 전통적 '리스너'들이 채우는 모습이다. '보편성'이 결국 헤게모니에 따른 권력의 결과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방 의장이 추구하는 보편은 곧 '서구적 보편'을 의미한다.

코어 팬덤이 더 쥐어짜여지는 현재의 역설

산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 강력하고 몰입도 높은 소비를 보이는 코어 팬덤이 밀고나가는 시장에 한계가 있다는 그의 고민은, 이른바 '팬덤빨'이 '대중'을 못 이긴다는 속설과도 맞닿아있다. 그러나 음악만 듣는 10명의 라이트한 팬보다는 앨범과 MD를 사고, 공연을 보는 1명의 충성도 높은 코어 팬이 음악 산업 매출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는 음악 산업뿐 아니라 게임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가볍게 플레이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이 급성장한 상황에서도, 한국 게임 업계에 수익을 보장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용자들은 하드코어 게이머(게임 몰입도가 높고 게임에 시간과 돈을 많은 쓰는 이들)이지 캐주얼 게이머(게임에 크게 몰입하지 않고 시간 날 때 소소하게 플레이하는 이들)가 아니다. 게임사들이 남초 커뮤니티 발 '페미 사상 검증'에 동조해 게임 업계 여성 노동자의 계약을 해지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하드 게이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이용자를 의식한 결과이다.

반면, 라이트한 팬덤이 늘어나는 구조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하이브가 실제로 실행하는 수익 추구는, 코어 팬덤으로부터 최대한의 소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이브는 작년 6월, 아티스트와 팬 간의 프라이빗 메시지 시스템인 위버스 DM을 론칭해 일부 아티스트와의 소통을 유료화했다. 또 작년 4월에는 BTS 멤버 슈가의 미국 콘서트에 가격변동제, 일명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했다. 40만 원 선의 티켓이 1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면서 이 정책은 코어 팬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실시간 수요에 따라 마치 경매하듯 티켓 값이 상승하는 시스템이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정가보다 높게, 그 반대라면 낮게 책정되는 원리이지만, 인기 있는 아티스트 공연에서 늘 치열한 티켓팅 전쟁이 벌어지는 실정을 감안할 때 그저 '티켓값을 높이는 꼼수'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팬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이런 가격변동제 티켓은 높은 가격에 따른 특별 혜택이 전무하며, 환불마저 불가하다. 성장 둔화를 감당하기 위해 K-팝 산업에서 벌어지는 가격 인플레이션은, 결국 코어 팬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케이팝에서 'K'를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하이브는 코어팬덤을 더 쥐어짜는 데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CJ ENM

팬에게 K-팝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오늘날 K-팝이 글로벌한 유행이자 하나의 '현상'으로 주목받는 이유 중 커다란 몫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팬의 독특한 수용 양상이다. 팬은 아티스트의 성장 서사에 스스로를 투사해 울고 웃으며, 아티스트의 실패와 변질, 그리고 업계의 부조리에 분노해 냉담하게 돌아섰다가도 여러 번 조건 없이 이 모든 걸 껴안는다.

K-팝 아티스트와 팬 사이에 흐르는 이 같은 정동적 강렬도와 여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팬들의 집단적 실천은 동시대 그 어떤 팬덤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특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아티스트의 성공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와 정치적 부정의를 전복하기 위한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는 K-팝 팬덤을 향해 서구 매체들이 "대체 왜 K-팝 팬덤이 브라질과 미국의 대선에 개입하느냐?"라고 묻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K-팝 팬덤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든 다양한 개인들은, 팬이 되면서부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무수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이든 팬들은 왜 어린 남성/여성 아이돌을 좋아하느냐며 경멸당하고, 서구 팬들은 왜 하필 아시아 가수를 좋아하느냐며 비웃음을 당한다. 한국과 역사적 긴장 관계에 놓인 나라의 팬들은 양국 간의 국가적 사안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취향을 숨긴 채 숨죽여야 하고, 심지어 보수적인 종교 색채를 띤 일부 아시아권 국가 팬들은 타락한 문화를 추종한다며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관계들과 사회 속에서 비주류로 취급 받는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일종의 소수자 의식을 몸으로 체화하게 된다. 이때 팬덤은 단순한 팬의 집합이 아니라, 동질감을 공유한 이들의 단단한 결집체로 변하게 된다. K-팝 팬덤의 유별난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 실천은 바로 이런 소수자적 동질감에 의한 결집으로부터 유래한다 볼 수 있다. 이때, 이들에게 K-팝의 K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기호 또는 음악적 양식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주류로부터 배척당하는 '주변성'의 상징 같은 것이 된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팬들이 K를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한다. BTS 팬들은 최근 서구 음악 시상식들이 따로 K-팝 카테고리를 만들어 상을 수여하는 것에 반발하며, 카테고리 신설의 의도를 문제 삼았다. 서구 시상식의 이러한 행위가 K-팝의 주변성을 강조하고 서구 팝의 지배력을 공고히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때 K를 떼라는 팬들의 요구와 방 의장의 소망은 동일해 보이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방 의장의 목표는 K-팝을 서구 팝과 구별되지 않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서구 리스너들을 유입하는 것이지만, 팬들은 '우대하는 척 차별하는' 서구 시상식의 음험한 권력 형식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K-팝에서 K를 뗄 것인가 붙일 것인가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를 지켜내는 데에 동의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전한 서구 중심의 문화적 질서 속에서, K-팝이 '서구적 보편'이라는 가치를 전복하고 문화로 이어진 글로벌한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깟 K를 붙이건 떼건 팬들에게는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므로.

▲TXT (투모로우바이투게더)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 Official MV ⓒ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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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행

이화여대 생물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 필름&비디오스쿨에서 라이브 액션으로 석사학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남대 멀티미디어학부 전임강사,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기술 변화에 따른 동시대 대중문화 콘텐츠와 수용자 속성 변동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트랜스미디어콘텐츠 연구, 팬덤연구, 대중문화 속 파국감정 연구를 진행해 왔다. 관련 저서로 <BTS와 아미컬처>(2019), <BTSとARMY わたしたちは連帯する>(2021), <페미돌로지>(2022,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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