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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도 물건너간 선거제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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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번 총선에도 물건너간 선거제도 개혁?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게리맨더링
25명의 유권자가 있는 어느 국가/지역에서 5명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를 상상해 보자. 유권자 15명은 A당, 나머지 10명은 B당을 지지하며, 인구 비례와 표의 등가성 원칙에 맞춰 각각 유권자 5명으로 구성된 5개 선거구획정을 가정할 때 두 정당의 당선자 숫자는 어떠할까?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A당에서는 3명, B당에서는 2명의 대표자가 선출되는 게 옳아 보인다. 하지만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따라 5:0, 4:1, 3:2, 2:3 등 매우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림의 왼쪽 사례처럼 획정하면 A당이 5개 의석을 모두 가져간다. 각 선거구에서 B당 지지자가 소수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오른쪽 사례는 오히려 B당이 3명의 대표자를 배출해 다수당이 되는 획정인데, A당 지지자를 2개 선거구에 집중시키고 나머지 3개 선거구에서 B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선거구를 나눴기 때문이다.
▲ 선거구 획정 예시 그림. ⓒ이정섭
이와 같은 자의적인 선거구획정을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우리가 선거구획정에서 맞이하는 현실은 인구,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등이 훨씬 복잡하므로 위의 사례보다 다양하고 교묘한 형태로 게리맨더링이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 선거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에서는 이와 같은 자의성을 방지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선거구획정을 위해 중립적 기구를 둔다. 우리나라는 독립기구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획정안을 제시하고, 국회가 이를 확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권역이라는 비례대표 선거구

올해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정치 개혁이라는 큰 대의를 향해 그러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제21대 총선 직전에 만들어진 민망한 부칙들이 거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춘천시, 순천시, 화성시 등에서 벌어진 기괴한 지역구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 의석 중 30개는 연동형, 17개는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게 제21대 총선에만 적용되는 '특례'라는 것이다. 국회의 4년 회기 내내 정치 개혁을 외쳤지만, 막상 다음 총선 직전에 이르러서 법을 개정하고 선거구를 획정한다는 소란이 이번에도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아울러 너무나 다양한 대안들이 이제야 그리고 급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매우 걱정된다. 특히 지난 제21대 총선 직전까지 논의되다가 사라졌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일부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역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달리 비례대표에 대한 선거구획정은 없었고, 아니 정확하게는 할 필요가 없었는데, 전국이 단일 선거구였기 때문이다. 제20대 총선까지는 5석 이상의 지역구 의석을 차지한 또는 전국적으로 유효한 비례대표투표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게 그 득표 비율에 따라 병립형으로 배분했다. 제21대 총선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고, 물론 '위성정당'이라는 별개의 문제가 발생했지만, 전국이 하나의 비례대표 선거구였다는 점은 이전과 같았다.

병립형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권역 설정, 민의 왜곡 발생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전제는 전국을 여러 선거구로 나누는 획정이다. 선거구획정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극단적으로는 게리맨더링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크든 작든 민의의 왜곡이 나타는데, 전국 득표-의석률과 선거구별 득표-의석률의 합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립형 의석 배분이라면 이러한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및 권역별 비례의원 배분 시뮬레이션. ⓒ이정섭.
2016년 총선의 47개 비례대표 의석을 병립형으로 전국, 3개 권역 그리고 6개 권역 단위로 구분하고 정당별 의석 배분을 시뮬레이션 해 보자. 투입한 자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시도별 비례대표 선거 개표 결과다. 전국 단위에서의 정당별 의석 배분은 당연히 해당 총선 결과와 같다. 그런데 3개 권역 및 6개 권역 시뮬레이션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3개 권역은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①수도권(서울․인천․경기), ②중부권(대구․대전․세종․강원․충북․충남․경북), ③남부권(부산․광주․울산․전북․전남․경남․제주)으로 나눴고, 6개 권역은 ①서울, ②부산․울산․경남, ③대구․경북, ④인천․경기, ⑤광주․전북․전남․제주, ⑥대전․세종․충북․충남․강원이다. 6개 권역 설정은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높은 사표율, 낮은 비례성, 지역주의 등의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2019년 5월에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명시된 바이다. 전국 단위였던 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3개 권역 시나리오는 각 당의 득실에 차이가 없다. 하지만 6개 권역에서는 당시 국민의당과 정의당 간 의석수에 차이가 있다. 전자라면 병립형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고, 후자에서는 결과가 달라진다.
▲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및 권역별 비례의원 배분 시뮬레이션. ⓒ이정섭.
2020년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에서는 각 당의 득실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때의 (준)연동형을 대신하여 병립형 의석 배분으로 진행했는데, 당시 논란의 위성정당을 포함하여 무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등록했다. 이중 의석 배분을 받은 곳은 5개이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정당은 정의당 하나이다. 위성정당들 덕분인지 몰라도 실제 결과와 전국 병립형 의석 배분은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 간 ±1석 차이 정도이다. 그런데 3개 및 6개 권역별 병립형 의석 배분에서는 4개 정당에서 ±1〜2석씩 차이가 있다. 미래한국당 944만 1520표, 더불어시민당 930만 7112표, 정의당 269만 7956표, 국민의당 189만 6719표, 열린민주당 151만 2763표 등 실제 득표 결과는 변함없지만 어떻게 선거구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건 공정한 선거 결과, 합리적 민의의 대변이 아니며 결과적으로는 게리맨더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권역이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것? 그때는 필요 없고 지금은 필요?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주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권역을 도입하고 거기에 석패율제를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제20대 총선의 전국 단위 병립형(2016년)→제20대 국회에서 6개 권역별 (준)연동형 개정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2019년)→제21대 총선의 전국 단위 (준)연동형(2020년)으로 이어진 기억을 반추하면 설득력이 낮다. 신속처리안건(의안번호 2019985) 개정 이유문에는 지역주의 개선을 목표로 분명 6개 권역 설정과 권역별 석패율제를 도입을 명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개정한 '공직선거법'에서 권역도, 석패율제도 사라졌다. 정작 유권자는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 만약 올해 총선을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치른다면, 4년 전에는 지역주의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금은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또 그때 사표율과 비례성 문제가 이제는 걱정스럽지 않다는 말인가? 혹자는 지난 총선의 위성정당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립형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성정당은 법률과 유권자가 아니라 일부 정당과 세력들이 만들었다.

(준)연동형 의석 배분일지라도 권역 설정은 숙의해야

병립형을 대신해서 (준)연동형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더라도 권역 설정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독일 연방의회 선거를 쉽게 인용하지만, 그들의 권역은 연방을 구성하는 16개 주 단위이다. 즉 주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우리는 연방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거기에 여러 개 시와 도를 묶는 옥상옥의 권역이라는 선거구를 설정할 법률적, 제도적 그리고 공간적 근거와 논리는 허술하다. 극단적 사례지만, 직선거리로 300㎞ 넘게 떨어진 강원도 고성군과 충청남도 서천군을 같은 권역으로 묶고, 생활문화권이 설정 근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 밖의 인구,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교통 등은 아예 따져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병립형보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게리맨더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높은 사표율 및 비례성을 다소나마 개선할 여지가 높다는 것이지 권역 설정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냥 지도 위의 선 긋기가 아니라 여러 지역과 그곳 유권자들을 찾아 다양한 의견을 듣고 서로 토론, 분석하며 뜻을 모아 나가야 할 사안이다. 4월 10일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했을 때, 유권자가 좋은 대표를 뽑을 수 있는 선거제 개혁은 요원해 보인다. 다시금 지난 4년 허송세월이 너무 아쉽다. 감춰둔 당리당략과 기득권이라는 속내에서 우리의 공간과 지역을 '공직선거법' 개정의 핑계거리로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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