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비싼집 바꿔주는 재개발? 건물주도 내몰리는 구시대 발상 끝났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비싼집 바꿔주는 재개발? 건물주도 내몰리는 구시대 발상 끝났다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탐욕 조장해 늪으로 가는 부동산 정책은 그만
할머니 한 분이 바닥에 끄는 카트형 장바구니를 밀고 사무실에 들어 오셨다. 월세가 한 달에 200만 원 나오는 상가주택을 갖고 있는데, 시가가 10억 원 정도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건물 2층에 거주하면서 200만 원의 월세를 받아 생계를 꾸려가고 계셨는데, 이 상가주택이 재개발사업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자신은 재개발사업으로 월세가 나오는 상가주택 대신 아파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러 오셨다. 뿐만 아니라 곧 재개발 사업지로 편입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나서, 1층 상가는 몇 년간 세가 나가지 않고 비어있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어디서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신다. 재개발구역 내 다른 소유자들이 일정 동의요건을 충족하여 재개발사업 절차가 시작되면, 사업에 반대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으니 소유하신 부동산의 보상(현금청산)을 잘 받아서 나가시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씀드렸다. 재개발조합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토지소유자 4분의 3 이상 및 토지 면적 2분의 1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즉 법에서 정하는 요건의 동의를 충족하면 사업이 추진된다. 재개발사업은 도로, 주차장 등과 같은 기반 시설이 열악하고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과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므로 공공성을 전제로 하는 토지보상법에 따라 부동산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재개발사업은 재건축사업과 마찬가지로 공공성 대신 부동산 소유주인 다수 조합원 최대의 이익을 만들 목적으로 진행된다. 개발동의서에 도장을 찍는 대다수 사람 마음속에 이 재개발사업이 기반 시설 정비를 위한 '공익사업'이라는 생각은 없다. 수억을 번다더라, 아파트값이 오른다더라는 장밋빛 청사진에 경도된 다수 사람들과 건설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업에 반대한 이라도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지난 수년간 이들의 기대는 적중해서 개발사업에 발 담근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된 것 같은 환상이 일어났다.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옥의 시간이었다. 조합원으로 참여하지 않고, 건물을 내놓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는 아마도 이웃들이 조합원입주권으로 받은 아파트 가격이 얼마 올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화병이 났을지도 모른다. 어떤 유형의 부동산이든 가리지 않고 아무리 높은 가격에도 분양받는 사람들이 몰려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시장에서 조합원과 건설사는 같은 편이 된다. 분양가상한제는 수분양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거래되는 가격보다 분양가격을 낮게 유지하게 만들어 청약 흥행을 보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로또 청약이 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조합원, 건설사, 수분양자 모두가 이익을 얻고, 이들을 제외한 불특정 다수에게 부동산 시장의 왜곡과 자산불평등이라는 위험이 전가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조합원과 건설사, 수분양자 모두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유지되지 않는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건축비와 이자비용이 상승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매도청구소송 절차에서 서울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지에 50억 상당의 건물을 갖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 사업 구역에 포함되는 대부분 주택은 10평에서 20평 내외의 작은 규모 단독주택이거나 다세대주택이었다. 100평 이상 큰 규모의 토지를 깔고 있는 건물은 2~3개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에게 사업자금을 보태주기 위해 받은 담보대출이 있었는데, 최근 대출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 개발사업이 곧 진행되니 퇴거해달라는 조합의 통보로 인하여 기존 임차인들은 월세를 내지 않고 있으며, 그마저도 임대차기간이 만료되면 하나둘씩 퇴거하겠다고 한다. 철거 예정 건물이라 새로운 임차인을 들일 수도 없고, 여유자금이 없는 할아버지는 남아있는 보증금을 내줄 돈도 없다. 종전에는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를 받아서 대출이자를 충당하고 생활비를 보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월세를 제대로 내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대출이자를 내기에도 부족하니 살길이 막막하다고 하신다. 매도청구소송으로 현금청산을 받아서 대출과 임차인 보증금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마저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지금 현장의 각종 개발사업은 심각한 난관을 맞닥뜨리고 있다. 개발사업의 분양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앞선 할아버지 소유 빌딩 근거리에 있는 2000세대 규모 아파트의 신축분양가는 24평형 8억, 32평형 10억 원이다. 청약경쟁률은 5대 1이었으나 2022년 말 당시 정당 계약률(청약 당첨자의 실질 계약률)이 60%에도 미치지 못했다. 2023년에 정부의 정책대출인 특례보금자리론이 풀리면서 거래량과 실거래가격이 전년 대비 소폭 반등하였지만, 고물가·고금리에 오랜 기간 누적된 가계부채에 대응하는 대출 규제 정책 등으로 인하여 부동산 시장은 안갯속에 있다.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도 미계약이 속출하여 무순위 청약을 거쳐 겨우 분양을 완료하는 지경인데, 이주·착공이 진행되고 분양을 앞둔 사업지들이 여전히 많다. 대출한도의 감소와 대출이자 상승으로 주택 수요자들의 자금조달능력과 지불 능력은 더 떨어졌는데, 공사비 증가로 인하여 분양가는 더 올라갔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지 못하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공사비가 커졌다고 분양가를 올린들 높아진 분양가에는 수요가 붙지 않는다. 결국 사업지의 분양성과 시장성이 낮아지고, 미분양 위험이 커진다.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PF(Project Finacing)대출의 위험 또한 바로 여기서 온다. 금융기관은 팔리지 않을 물건을 만드는데 돈을 빌려줄 수 없다. 시장 수요에 맞지 않는 상품을 공급하면 팔리지 않는 재고로 쌓이게 되고, 생산에 투입된 비용은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다. 그 위험은 결국 PF 대출에 엮인 금융기관으로 번진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 캐피탈, 증권사의 PF대출 예상 손실액이 최대 13조8000억 원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할아버지의 상가 건물이 있는 사업지는 소규모 정비사업 시행지다. 높은 분양가로 100세대 남짓의 소규모 아파트단지를 분양하면, 팔리지 않을 것이 뻔히 예견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조합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금융기관은 사업성 분석을 통하여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미분양 위험이 커지면서 이미 실행된 대출도 회수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업지들이 많은 탓이다. 재개발사업에서 조합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히면, 사업이 멈춘다. 번듯한 50억 빌딩 소유자 할아버지는 현금청산절차를 통하여 매매대금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다. 오랜 기간 입주하여 월세를 꼬박꼬박 잘 납부하며 지내고 있던 임차인들이 퇴거하고, 새로운 임차인은 들어오지 않는다. 벌써 퇴거하고 공실로 방치된 주변 주택들로 인하여 상권도 엉망이 된다. 임대기간이 만료되어 퇴거하는 임차인들에게 돌려 주어야 할 보증금 마련도 어려워진다. 또한 높아진 대출이자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데, 사업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공실이 지속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상가 소유자는 내 부동산이 재개발사업에 편입되는 것에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개발사업으로 인한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현재 부동산·건설 경기는 심각한 하락과 침체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재건축·재개발을 신속하게 추진하게 해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불행히도 정부는 정확히 잘못된 답안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
내 부동산을 개발사업에 내놓고 싶지 않았던 부동산 소유자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존 주택소유자들 또한 유사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조합설립 당시에 예측했던 공사비보다 대폭 공사비가 인상되었고, 이에 따라 조합원인 주택소유자는 추가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2억~3억짜리 주택을 갖고 있는 집주인은 추가로 3억에서 5억을 더 부담하여야 24평이나 32평짜리 아파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2~3억 주택을 갖고 있던 노인들은 여기에 1~2억만 보태면 새집이 생기는 줄 알고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지난 몇 년간은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이나 건설사들이 부동산 불패 신화에 과장을 보태고 최대한 이익을 부풀려 말했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 소득이 없는 대다수 노인은 거액의 대출을 감당할 수 없다. 그나마도 무리하면 10억짜리 새 아파트를 마련하리라 기대했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실거래가는 기존 주택 가치에 대출금을 합산한 것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기는커녕 손해를 보고 조합원입주권을 팔아야 한다. 이익을 기대하고 재개발에 찬성한 결과, 조금 낡고 오래되었지만 편안히 잘 살던 내 집을 잃을 수 있다. 일반분양을 통해서 공사비와 사업비를 조달해야 하는데, 미분양이 된다면 이제 개발 사업지의 조합원과 건설사는 같은 편이 아니다. 이미 발생한 비용, 위험과 손해를 서로에게 전가하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금 각종 재개발,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공사비 관련 분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부동산·건설 경기는 심각한 하락과 침체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로 인하여 여기에 얽힌 많은 시민 또한 다양한 유형의 고통에 놓여 있다. 이는 재건축·재개발을 신속하게 추진하게 해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불행히도 정부는 정확히 잘못된 답안을 내놓고 있다. 시공능력 평가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 이미 위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주요 20개 건설사의 민간 주택사업 PF우발채무를 2023년 하반기 기준 약 30조 원으로 추산하였다. 여기에 태영건설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면 최대 10조 폭탄이 터질 수 있다고 한다. 드러난 파국만 상당하다. 작년 1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장승배기 지역주택조합이 파산했고 당곡역 지역주택조합도 파산했다. 남양주의 한 재건축 아파트 현장은 공사비 갈등으로 인하여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는 가운데, 브릿지론 이자를 갚지 못하면서 사업 부지가 통째로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시국에 지난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생토론회 명분으로 각종 퍼주기 포퓰리즘 개발 공약을 남발하였다. 1.10.부동산 정책을 통해서는 안전진단과 같은 규제가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면서,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노골적인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일색의 총선 개입을 이어 나갔다. 고물가와 고금리, 환율상승 등으로 민생과 서민경제에 고통이 누적되는 시기에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은 문제해결을 위한 개혁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공급 확대, 건설경기 활성화, 재건축부담금 완화, 자산소유자 세금 감면 등의 공약으로 일관하였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용적률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여 통과시킨 것은 다름아닌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지역구에 출마한 여야 국회의원들 공히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포함하는 개발 공약, 종부세 완화 등을 내세웠다. 여야 공약의 차별성이 없었다. 부동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흔적이 엿보이는 개혁성과 차별성 있는 공약은 거대 양당에는 없었다. 오직 이기심과 탐욕을 자극하는 공약만이 난무한 총선이었다. 누적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지금보다 더 중요하다. 규제 완화, 부담금 감면, 용적률 완화와 같이 민간의 이익을 키우는 방식은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더욱 망가트리고, 자산 불평등을 심화한다. 부동산 문제만큼은 자산소유자와 민간 시장의 이익을 키우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의 소득수준과 눈높이에 맞는 주택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민간 시장이 침체한 지금이 공공성 있는 공급을 확대하고, 정부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적기이다.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이들을 더 부자로 만드는 방식으로, 일반 시민의 부채를 통해 가격을 떠받치는 방식으로, 부자들이 깔고 앉아있는 이미 비싼 주택을 더 비싼 집으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대책이 아니라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드는 출구전략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