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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세계 최초' 김홍빈 원정대 조난이 '해외위난상황' 해당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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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세계 최초' 김홍빈 원정대 조난이 '해외위난상황' 해당 않는다?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②
산악인 '김홍빈 대장'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등반 도중 조난사고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김 대장은 본인에게 시련을 줬던 산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지난달 23일, 초여름을 알리는 더위를 뚫고 도착한 곳은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헌시비 뒤편 '위패봉안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검은색 위패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한낮에도 어두웠다. 엄숙한 분위기에 그 누구도 발소리도, 말소리도 내지 않았다. 참지 못해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벽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백 명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시신도 유해도 찾지 오지 못해 위패로만 모신 이름들. 죽어서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을 마주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입구 바로 왼쪽, 기자가 만나러 온 바로 그 사람 '산악인 김홍빈'의 위패가 봉안돼 있었다.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 원정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성공한 후 하산 도중 추락 실종됐다. 2022년 9월 8일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김홍빈 대장을 국립대전현충원에 국가사회공헌자로 위패 봉안했다. '스포츠 영웅'으로는 7번째. 김 대장은 2021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2021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 헌액됐다.
▲ 김홍빈 대장은 시신도 유해도 찾지 못해 현충원에 위패로 봉안됐다. ⓒ셜록
하지만 세계 최초의 기록을 만든 김홍빈 원정대에게 '원고 대한민국'은 소송을 걸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부는 2022년 5월 31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7000만 원 상당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하산 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 비용을 내놓으라는 것. 김홍빈 대장의 위패를 현충원에 모시기 약 100일 전에 일어난 일이다. 1심 법원의 판결은 원고 '일부 승소'. 지난해 6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류일건)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은 구조비용 전부(약 2500만 원)를, 대원 5명은 구조비용 일부(총 1076만 원)를 연대하여 납부하라”고 판단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김홍빈 원정대가 법에서 정한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였다. 그렇다면 국가가 구조비용을 부담할 수 있기 때문. '영사조력법'에 따르면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예외가 있다.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 즉, '해외위난상황'에 처했을 경우다. △ 재외국민이 본인의 무자력(無資力) 등으로 인하여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거나 △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없어 국가가 이동수단을 투입하는 경우엔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외교부는 김홍빈 원정대가 히말라야에서 처한 상황이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세계 최초의 도전을 위해 타국에 나간 '스포츠 영웅'이 조난을 당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다른 대원들 역시 죽음의 문턱을 가까스로 넘고 육체적·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태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외교부는 당시 상황이 '전쟁, 내란, 폭동, 해외재난 등 영사조력법에서 규정한 해외위난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외교부는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은 피고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의 '구조비용 지급보증 약정'을 근거로 파키스탄 정부 당국에 의뢰해 구조비행을 실시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김홍빈 원정대가 당시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지출된 구조비용이 과다해 일부를 갚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피고들(김홍빈 원정대)은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해외위난상황에 처한 재외국민이라 할 것이고, 당시 위 베이스캠프에서 (파키스탄 도시) 스카르두까지 대피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없었으며, 원고 대한민국이 파키스탄국 정부 당국에 의뢰하는 방법으로 파키스탄국의 군용 헬리콥터라는 이동수단을 피고 연맹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들(김홍빈 원정대)에게 투입하였다고 보아야 한다."(1심 판결문 중)

영사조력법 시행령 제20조에 따르면, 해외위난상황에 따라 이동수단이 투입됐을지라도 과도한 비용이 지출되면 외교부 장관은 비용 일부에 대해 재외국민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법원에서 인정한 구조비용이 3600만 원이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의 '비정함'이 드러나는 건 이 대목이다. 외교부는 1심 법원의 판결대로 약 3600만 원을 돌려받는 걸로 끝내지 않았다. '구조비용 약 70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다시 항소했다.

"1심 판결에 따라 헬기 비용을 내고 마무리 짓는 걸로 (대원들끼리) 뜻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다시 항소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법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겁니다."(정인복(가명) 대원)

▲ '원고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의 기록을 만든 김홍빈 원정대에게 소송을 걸었다. ⓒ대한산악연맹
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의 구조비용 지급 약정'이다. '헬기 띄우기 전에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이 비용을 내겠다고 약속했으니 외교부가 그 돈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 법정에서도 이 '지급 약정'에 대한 공방이 이뤄졌다. 김홍빈 원정대 측은 외교부가 '지급 약정'의 증거로 제시한 것이 카카오톡 대화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심지어 광주광역시산악연맹 소속이 아닌 개인의 답변을 단체를 대표하는 입장으로 해석했다는 것.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직원은 2021년 7월 20일 구조 활동에 앞서, 김홍빈 원정대 측에 물었다. "구조팀 비용은 1쏘티(비행기 1회 이륙 및 착륙)에 2만 5000달러(당시 환율 기준 한화 약 2900만 원)가 소요"된다며,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김홍빈 원정대 측은 한국에 꾸려진 '김홍빈 원정대 광주시 사고수습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소통했다. 소통은 산악인 A 씨가 담당했다.

"비용에 대해서는 '광주 산악연맹에서' 정산을 약속하셨구요. 비행 횟수도 우선 3회 정도 하는 것으로 하고 위치가 식별되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면 더 할 수도 있도록 처리해 주세요."(산악인 A 씨)

A 씨의 전언에 따라 김홍빈 원정대도 대사관 직원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광주 산악연맹에서' 지급보증 한답니다. 또한 저희 대원들이 정신적으로 육제적으로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여서 베이스캠프에서 스카르두까지 헬기를 이용해 안전하게 복귀하는 방법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광주 산악연맹에서'라는 부분이 문제였다.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A 씨는 당시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책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시청의 시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당시 대책위 현장에서) 왔다갔다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냥 통상적으로 최고 단체가 산악연맹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으면 '산악연맹에서'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대책위에서 결정하거나 진행되었던 내용들을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면 (…) 저는 전달하는 쪽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통상적으로 '산악연맹에서'라고 표현했습니다."(A 씨 증인신문 녹취 중)

산악인으로서 습관적으로 산악연맹을 언급한 거지,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을 대표해서 약정한 건 아니라는 주장. 실제 A 씨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에도, 대책위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A씨는 한국에서 히말라야 일기예보를 확인해 김홍빈 원정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는 조난당한 김홍빈 대장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나눴던 인물이기도 하다. 조난사고 이후에도 김 대장을 구조하기 위해선 히말라야 현장 날씨를 파악하는 역할이 중요해 그가 실무 소통 역할을 임시로 맡았다.
▲ 파키스탄 군용헬기가 떴지만, 조난당한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지 못했다. ⓒpixabay
외교부가 제시한 증거는 A 씨의 전언 등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뿐.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은 김홍빈 원정대 측에 헬기비용 납부 동의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영사조력법 시행규칙 제3조에 따르면, 해외위난상황 등에 투입되는 이동수단을 이용하려는 재외국민은 '이동수단 탑승 비용 납부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국민이 외국에서 무슨 일을 겪으면 안전하게 국민들을 데리고 오는 게 대사관의 역할 아닙니까? 우리는 다급한 상황에서 카톡 하나 받아서 헬기를 탔는데, 나중에 (우리한테) 헬기비용을 청구를 한다는 건 꿈에도 몰랐죠. 당연히 우리는 비용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정인복(가명) 대원)

1심 재판부도 외교부가 '헬기비용 납부 동의서'를 받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상환 범위의 경우 ①원고 대한민국이 이 사건 변론과정에서 상환 범위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점, ②이 사건 당시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측이 영사조력법 시행규칙 제3조 제1항의 소정의 '이동수단 탑승 비용 납부 동의서'를 제출받지 않은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비용의 25%를 정한다."(1심 판결문 중)

▲ 외교부는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을 김홍빈 원정대원들에게 청구했다. ⓒ셜록
외교부가 자국민 보호 의무를 다했는지도 문제다. 당시 파키스탄 군용헬기가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기 위해 나흘 동안 총 세 차례 떴다. 하지만 2021년 7월 24일 이륙한 첫 번째 헬기에는 '구조대'가 탑승하지 않았다. 그때가 김 대장을 구하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골든타임'이었는데도.

"진짜 구조를 한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진정으로 구조를 할 생각이 있었다면, 베이스캠프에서 구조 활동에 참여할 전문 산악인들을 뽑아서 (첫 번째로 뜬) 헬기에 태워야 했습니다. 그래야 (헬기에서) 하강을 해서 사고 지점까지 내려가 볼 수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과정들이 전혀 없습니다."(유현철(가명) 대원)

심지어 구조 헬기는 김홍빈 대장이 추락한 지점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브로드피크는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지대에 위치하는데, 당시 김 대장은 중국 영토 쪽으로 추락했다. 첫 번째로 이륙한 헬기는 중국 영토로 넘어가지도 못했다.

"제1차 구조비행 당시 위와 같이 중국 측이 월경 허가를 내어준 사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조헬기 조종사에게까지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그런 이유로 구조헬기 조종사가 중국으로 월경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원고 대한민국 항소 이유서 중)

두 번째로 뜬 헬기(7월 25일)는 중국 측 상공을 돌았지만, 김 대장의 추락 지점까지 내려가진 못했다. 마지막으로 뜬 헬기(7월 27일) 역시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던 대원들만 태우고 파키스탄 도시 스카르두로 돌아왔다. 대한민국의 '김홍빈 원정대 구조작전'은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조난당한 김 대장을 구조하는 부분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패한 구조작전의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지워졌다. 당시 헬기에는 김홍빈 원정대만 탑승한 것도 아니었다. 고소병을 앓고 있던 파키스탄 현지인 등도 함께 탑승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외교부는 파키스탄 정부가 청구한 헬기 비용을 근거로, 자국민인 김홍빈 원정대에게만 소송을 제기했다.
▲ 김홍빈 대장의 위패를 모신 국립대전현충원. 그는 아직 히말라야에 잠들어 있다. ⓒ셜록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소관청인 외교부에 반론을 요청했다. 하지만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3월 25일 "현재 재판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해왔다. 소송을 총괄하고 있는 법무부 측에도 입장을 물었다. 법무부 역시 "현재 재판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무엇보다, 김홍빈 원정대가 섭섭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거다.

"외교부가 김홍빈 원정대에 구조비용 청구 소송 제기하기 이전에, 외교부 차원에서 (파키스탄 정부와) 딱 정리를 해야 하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이 듭니다."(유현철(가명) 대원)

김홍빈 대장의 위패 아래에는 그의 캐리커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스티커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 완등'을 뜻하는 '8000mX14'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늦을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그의 신념 그대로. 현충원을 걸어 나오며, 김 대장을 위해 방명록을 남겼다.

"그곳에선 더 이상 춥지 않기를."

김홍빈 대장은 아직도 히말라야에 잠들어 있다.

"그가 히말라야에 가는 것은 숙명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산이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 정신이며 희망이다. 그는 영웅이 되려고 산을 오르지 않는다. 한계에 도전해 이겨낸 의지의 장애인으로서 평가받기를 원한다. 자신을 보고 누군가 용기를 얻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란 끝없는 도전이다."(책 <김홍빈과 히말라야> 중 신흥래 작가의 글)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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