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기획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 전시. 명품가방 수수 논란으로 5개월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건희 여사는 5월 21일 직접 전시장을 방문할 정도로 그림전에 애정을 보였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 여사가 방문한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을 직접 다녀왔다.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는 명분을 앞세운 그림전엔, '자화자찬'에 가까운 김건희 여사 영상이 반복 상영되고 있었다.(☞ 바로 가기 : )
그리고 예정에 없던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이 '청와대 개방 2주년 전시' 사업 중간에 끼워졌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여기에 쓰인 예산만 약 1억 6107만 원이다.
'희망을 그리는 아이들 :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전시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렸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 우크라이나 아동미술 전시 기획'이라는 제목의 브리핑으로, 김 여사가 기획한 전시임을 강조해 홍보했다. 전시 주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은 청와대 재단이 담당했다.
지난 5월 31일 전시장을 직접 방문했다. 관람객은 기자 혼자였다. 안내판엔 "죽어가는 우리의 아이들과 동물들을 지켜주세요"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입구에 위치한 나무 책상 위엔 엽서와 크레파스가 각각 놓여 있었다. 그 옆엔 지뢰탐지견 '파트론' 스티커도 함께 있었다.
'파트론' 스티커 체험 역시 김건희 여사로부터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안내문에선 김건희 여사 사진과 함께 "한 아이가 김건희 여사의 손등에 '강아지 파트론'의 스티커를 붙여주었습니다"라는 설명으로 스티커 체험 배경을 소개했다. 관람객이 김건희 여사처럼 '파트론' 스티커를 붙여볼 수 있게끔 안내하고 있었다.
가운데 홀에선 우크라이나 아동이 그린 작품 155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총을 겨누는 군인, 날아다니는 총알, 불타는 마을 등 아이들은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대형 모니터에서는 어떤 영상이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건희 여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상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우크라이나 영부인 젤렌스카 여사를 만나고,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포옹 등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이 영상을 가득 채웠다. 김건희 여사의 멘트가 직접 인용되거나, 노란색 자막을 이용해 강조되기도 했다. 전체 2분 38초짜리 영상에 김건희 여사의 사진과 영상이 1분 30초 이상 등장했다.
대통령실이 5월 21일 공개한 김건희 여사 현장 방문 사진 속의 영상과는 달랐다. 그림전 방문 당시 김 여사는 아이들과 함께 '젤렌스카 여사의 영상메세지'를 봤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겐 전시를 '기획'한 김건희 여사의 노고를 전달하는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전쟁이 끝날 거라는 평화에 대한 믿음
곧 좋아질 거라는 내일에 대한 희망
그 간절함을 응원하고 지지한 김건희 여사의 약속
"아이들이 저널리스트가 되어 전쟁의 참상을 알린 셈… 많은 분이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의 그림을 보고 감동받게 될 것입니다." – 김건희 여사 –
김건희 여사가 전하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희망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한 문화의 힘을 믿습니다."(현장 영상 자막 일부)"
이런 모습은 사실 낯설지 않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사건이 작년에 있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윤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대통령 우상화 교육' 논란이 불거졌다.
심지어 이 사실을 SNS에 최초로 공개한 시민단체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를 당하며 논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커졌다.(☞ 관련 기사 : <셜록> 2023년 8월 8일 자 '')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가본 용산어린이정원은 여전히 '우상의 정원'이었다. 최근 개관한 '어린이 환경·생태교육관'에서도 생뚱맞게 김건희 여사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침팬지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를 소개하는 전시 코너에, 여덟 장의 사진 가운데 김건희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두 장이나 전시돼 있었다.(☞ 관련기사 : <셜록> 6월 19일 자 '')
기자는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에 사용된 예산 내역을 알아봤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의원실(광주광산구을,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을 받았다.
민형배 의원실이 입수한 청와대재단의 용역변경계약의뢰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은 애초 청와대 개방 2주년 전시 사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청와대재단은 지난 1월 20일, 약 19억 4000만 원 규모의 '청와대 개방 2주년 기념행사 대행 용역'에 대한 입찰공고를 냈다. 한 업체가 단독으로 경쟁입찰에 참여해 유찰됐다.
하지만 청와대재단은 6일 만에 재입찰 없이 이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의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취지로 2020년 신설된 한시적 특례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제1호의 재난이나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으로 인한 국가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장관이 기간을 정하여 고시한 경우에는 제10조에 따라 경쟁입찰을 실시했으나 입찰자가 1인뿐인 경우 제20조제2항에 따른 재공고입찰을 실시하지 않더라도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7조 제3항)
"이 규정은「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27조제3항 등에 따라 재난,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국가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입찰·계약보증금 인하 등 한시적 특례가 적용되는 기간을 2024년 6월 30일까지 한다." (기획재정부 고시 2022-33호,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한시적 특례 적용기간에 관한 고시)
당시 낙찰금은 약 17억 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은 이 사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기획은 4월에 들어서야 추가됐다.
문체부는 민형배 의원실에 "올해 초 청와대 개방 2주년 전시 계약 이후, 우크라이나 측의 공식 제안서가 접수되어 추가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협의 여부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측 공식 제안서가 접수된 후, 그 사실을 대통령실에 구두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재단은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사업을 추가하기 위해 변경계약을 맺었다. 증액된 청와대 개방 2주년 전시 사업 총 예산은 19억 3000만 원. 기존에 낙찰된 사업비(약 17억 원)에서 약 2억 2000만 원이 추가됐다. 이 중에서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에 실제 사용한 금액은 1억 6000만 원 정도다.
문체부는 그림전에서 상영된 김건희 여사 영상에 대해 "영상 제목은 별도로 없으며,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개최 경과를 설명하는 영상"이라며, "문체부 소속 한국정책방송원(KTV)이 보유하고 있던 기존 자료를 편집한 것으로, 별도 예산 지출은 없다"고 설명했다.
KTV는 지난 5월 23일 유튜브 채널 내 '프레지던트 다이어리' 프로그램에서 해당 영상 전체를 공개하며,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은 사실상 김건희 여사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홍보했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수의계약 남발'로 비판을 받아왔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실 리모델링공사, 외교부장관 공관 인테리어공사, 청와대 개방 관련 리모델링 공사 모두 '긴급한 행사'라며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행사 진행에서도 수의계약을 동원한 사례가 있다. <오마이뉴스> 5월 3일 자 '민생토론회 한 번에 1억 4천… 벼락치기 수의계약'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4일부터 4월 4일까지 총 26회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용역 계약에서 확인된 수의계약만 13건이다. 이마저도 나머지 12건의 용역 계약은 나라장터에서 조회되지 않아 검증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국가계약법 조항을 정부가 그동안 무분별하게 적용해왔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계약 과정 역시 '수의계약 남발'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형배 의원은 "이전에도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심장병 아동과 찍은 사진을 둘러싼 '자기과시용 화보 사진' 논란이 있었다"면서 "당시에도 다른 사람의 곤궁과 취약을 이용한 이기적 행동이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 의원은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에 마치 '김건희 여사 CF'가 재생된 듯해 민망하다"면서, "김건희 여사 띄우기에 정부가 언제까지 들러리를 서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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