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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에서 난장판 축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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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2대 국회에서 난장판 축구를 봤다

[이관후 칼럼] 누가 이기든,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구립 유소년 축구단에서 미드필더로 뛰는 아이가 요즘 축구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 구체적으로 잉글랜드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브리튼'이라는 섬이다.

다소 끔찍한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축구 경기(?)는 브리튼 섬을 침범해 온 바이킹 무리를 물리친 원주민들이, 생포된 적 왕자의 목을 치고 그 머리통을 발로 차고 다닌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풋볼'이라고 불린 경기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때는 중세다. 소나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공을 경쟁적인 두 마을의 사람들이 차는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경기가 벌어지면 여성과 노약자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나와서 두 마을의 가운데쯤에서 양측으로 갈라선 후, 공을 상대편 쪽으로 차기 시작했다. 공을 상대편 마을로 보내면 이기는 것인데, 사실 공을 찬다는 것은 일종의 구실이고, 공을 중심으로 몰려들어서 가까이 있는 상대편과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주요한 행위였다. 주먹질, 발차기, 물어뜯기 등 가능한 모든 폭력이 허용되었고, 가끔은 몽둥이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몇 시간 만에 끝나기도 했지만 며칠을 가는 경기도 흔했고, 다친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은 당연하고 사망자도 드물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게다가 지는 쪽 마을의 경우, 집이나 기물이 파괴되는 것도 피하기 어려웠다. 폭력성이 너무 커서 런던시장을 비롯한 여러 영주들은 축구를 금지하려고 했지만, 이 카니발적인 축제의 매력 또한 너무 커서 경기는 영국 전역에서 성행했다.

축구는 19세기에 사립학교들의 집단적 체육 활동으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축구가 남성 청소년들에게 투쟁심과 용기, 협동심을 길러 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학교 사이에서는 경기가 열릴 수 없었다. 축구 규칙이 동네마다 학교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주먹질이나 발길질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발로만 차야 하는지 들고 뛰어도 되는지 확실치 않았다.

팀 간의 경기가 가능해진 것은 1863년 축구협회가 생기면서 처음 룰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이 당시 룰에 따르면, 공을 가진 선수를 붙잡거나 정강이를 걷어찰 수는 있었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었다. 심판이 도입된 것은 한참 더 뒤의 일이다. 처음 도입된 심판들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었고, 정장을 잘 차려입고 경기장 밖에 앉아 있다가 파울이라고 생각이 되면 손수건을 꺼내 흔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손으로 공을 만질 수 없고, 상대 선수를 붙잡거나 걷어찰 수 없는 경기가 싸커(Soccer)로 자리 잡았고 세계로 퍼졌다. 반면 공을 잡고 달리고 몸으로 부딪쳐 상대를 태클하는 풋볼(Football)은 미국의 스포츠가 되었다.

축구보다 못한 정치

축구 이야기를 길게 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한국 정치에서 벌어진 일들이 축구의 역사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한 입법청문회에서 이종섭, 임성근 같은 정부의 중요한 증인들은 선서를 거부하고 무성의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회의를 진행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과거의 어떤 국회의 관례에서도 보지 못한 '10분간 퇴장' 같은 망신주기를 반복했다. 원인 제공은 정부와 여당이 했지만, 야당 위원장의 회의 진행도 목불인견이었다.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진지한 태도로 채상병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청문회를 정치적 공세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이었다.

보건복지위에서 열린 의료상황 관련 청문회에서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출석했는데, 강선우 국회의원이 과거 자신에게 '미친 여자'라고 했던 발언을 상기시키자 비웃었다. 그리고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태도와 발언 모두 저급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국민과 국민의 대표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왜 그들의 주장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22대 국회 들어 처음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상대 정당을 비판하다가 "정신 나간 의원들"이라고 표현했다. 상대 정당이 사과를 요구하자 "당원들이 속 시원해한다"면서 거부했다.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역시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상대 정당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발언으로는 대단히 부적절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처음 사과를 거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에 '국민의힘은 쥐약먹은 놈들'이라고 말한 사례로 대응했다. 이 역시 부적절했다. 김병주 의원은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이라는 공적 시공간에서 상대 정당 의원들이 눈앞에 있는데 발언한 것이고, 윤 대통령은 사적인 통화에서 언급한 것이다. 이런 수준의 정치적 대응은 그저 정쟁을 지속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사과와 유감표명을 빨리 했어야 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처럼 좋은 이야기를 했다.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면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속내는 바로 다음날 드러났다. 대통령은 3일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관련 회의에서 "왜 25만 원만 주느냐, 1인당 10억 원씩, 100억 원씩 줘도 되는 것 아니냐"고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지원금을 비꼬았다. 결국 전날 했던 이야기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대에게는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면서, 이쪽에서는 맘대로 조롱하겠다는 태도를, 그것도 매우 저급한 언어로 적나라하게 하는 것이 과연 국가 원수가 할 일인가.

국회의장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대통령만 존중하라면?

22대 첫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대부분 지켜지곤 했던 국회의장에 대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인사를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좋은 말로 타이르는 의장에게 '인사 받을만큼 행동을 하라'는 식으로 비아냥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할 때,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대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정말 저질적인 정치행태의 반복이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로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이 존중받을만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정치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당신들이 좋아서 서로를 존중하라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몇 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거부하자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의 연설 원고를 공개적으로 찢어버렸다. 이건 약과일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방문하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안 봐도 비디오'다.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어느 쪽도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지금의 한국정치를 보면, 19세기 이전 브리튼에 존재했던 축구 같다. 이것은 단지 볼썽사납다든지, 사람이 다친다든지 하는 문제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붙잡고, 물고, 걷어차고, 두들겨 패는 축구를 본다면, 이 경기에서 누가 이겼는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일단 '축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정치가 그렇다. 누가 이기기는 하겠지만, 민주주의에서 이긴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정치라고도 할 수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라고도 할 수 없다. 상대를 적수가 아니라 적으로 여기고 존중하기는커녕 조롱하고 말살하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거를 해서 승자를 뽑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정한 선거는 있지만 민주주의는 없는 상황, 그것이 지금 한국 정치의 상황이다.

누군가는 팬덤정치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일극체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비겁한 변명이다. 본회의장에서 의장을 존중하지 않고, 국회의원의 발언에 집단적으로 유치원생들처럼 대응하는 게 과연 팬덤정치의 결과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자제력이 부족한 탓인가?

책임은 팬이 아니라 선수에게 있다

축구로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야구로 해보자. 지금 한국 정치는 서로 끊임없이 빈볼을 던져대는 야구나 다름없다. 투수들은 점점 더 구속을 높여서 타자들을 맞추고, 욕설과 주먹질, 벤치클리어링을 반복한다. 누가 이길 수도 없겠지만, 이긴다고 해서 야구에서 이기는 건 아닐 것이다.

빈볼이란 야구 경기의 한 부분이다. 양측의 승부욕이 지나쳐서 누군가 비겁한 행위를 하면 상대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위협의 목적은 '룰을 지키고,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데 있는 것이지, 상대를 맞춰서 부상당하게 하고 영원히 야구를 못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야구팬들도 그걸 안다.

정치적 갈등이 커지고, 정치팬들이 극성이라서 그렇다고 말하지 말자. 지금 우리 국민들 다수가 그렇게 변했나? 지금 한국 축구팬들은 상대 공격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외치고, 야구팬들은 머리를 맞춰버리라고 소리 지르는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간혹 그런 팬들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선수나 감독이 하는 말이 '열성팬들이 원하는 걸 하다 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그게 변명이 되겠는가? 책임은 선수에게 있지 팬들에게 있지 않다.

이 빈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든 먼저 멈추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야구를 보러왔지 싸움을 보러 온 건 아니기 때문이다. 1회부터 9회까지 빈볼만 던져대는 야구를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 보기에 창피하고, 그 아이들이 이것을 배울까 더 두렵다.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 처리 문제를 둘러싼 필리버스터 종료에 대한 표결이 시작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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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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