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란', 핵심은 '1919년 임시정부' 인정 여부?
김 관장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본인의 건국절 추진 의혹과 관련 "신용하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이뤄진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다"며 "저의 입장은 신 교수와 동일하다"고 했다. 임시정부 수립년도인 1919년, 독립일인 1945년도를 광복의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독 정부수립 시점인 1948년을 인정한다는 '뉴라이트 의혹'에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13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선 1919년을 임시정부 수립에 따른 '건국년도'로 해석하는 데에는 "국제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보편적인 (건국의) 기준이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며 "전 세계가 인정해 줄 수 있는 관점에서 설명을 해야지 우리만 정서적으로 (1919년 임시정부 건국) 그걸 인정하면 그건 마치 북한이 세계의 흐름을 부인하고 '올해는 주체 112년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주장했다. 임시정부를 건국(혹은 광복)의 시작 지점이라고 하면서도 이를 건국의 구체적인 기준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헌법은 1919년 3.1 운동 직후 수립된 임시정부를 국가건립의 구체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대목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단독정부 수립 당시의 제헌헌법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명시한다. 김 관장이 '입장이 완전히 같다'고 언급한 신용하 서울대 교수 또한 이를 인정한다. 신 교수는 지난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의 '1919년 시작해 1948년 완성' 이론과 관련 "1919년 9월 통합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전 세계의 한민족은 이를 정부로 생각했다"고 말해 '건국기준'으로서의 입시정부의 의의를 긍정한 바 있다. 신 교수는 글에서 "(임정은) 국내의 국민과 연결하는 연통제·교통국 등의 제도를 확립하고 국민개납(皆納)주의, 국민개병주의, 국민개업(皆業)주의를 명시하면서 통치권도 일부 행사했다", "손문의 광동정부, 레닌의 소련정부, 에스토니아로부터 승인도 받았다"는 등 임정의 '국가 성립 요소'를 강조하기도 했다. 김 관장의 '내심'이 무엇일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이 같은 이론적 정황은 김 관장의 건국론이 뉴라이트계 역사관과 유사하게 '1948년 단독정부수립'에 방점을 찍는다는 의심을 사게 할 수 있다. 1919년 3.1 운동부터 해방, 정부수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서의 건국'론은 용산 대통령실에서도 몇 차례 강조한 바 있는 관점인데, 대통령실의 해당 관점 또한 지난 '건국전쟁' 영화 논란 등과 함께 진영 간 역사논쟁이 벌어질 때 등장했다. 김 관장의 기자회견 당시 일부 기자들이 '미국의 독립기념일' 등을 예로 들며 '과정론'에 반박식 질문을 던진 배경이기도 하다.발언 논란부터 '친일 인사' 논란까지 ... 부적절성 사과 없이 돌파 가능할까
이 같은 역사 해석 논란은 김 관장의 또 다른 발언인 '일본 국적' 논란으로도 이어진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의 기준으로 볼 때, 일본이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의 국적을 일본으로 편입한 일은 명백한 불법이자 무효화해야 할 행위다. 즉 광복회 등이 해당 발언으로 주장하는 김 관장 '식민사관' 논란은, 김 관장이 강점기 당시의 일본 국적을 심적으로 긍정했는지 여부 보다 그 불법성을 관념적으로 체화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한 것에 가깝다. 김 관장은 "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뛰었고 일본 국적으로 출전을 해야만 했겠는가"라며 "그게 바로 나라를 빼앗긴 슬픔"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일제강점기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해명일 뿐이다.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일본의 국권찬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적절한 역사관을 따지고 있는 독립운동단체들이 해당 해명에 납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여권 측 인물인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특히 8.15의 의미를 찾는 광복절(을 앞둔) 상황에서는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이야기"라고 지적하는 판이다. 결국은 태도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다. 뉴라이트라는 확증은 없을지언정 '뉴라이트계 역사관'에 대한 이론적 친밀성들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 김 관장은 본인 과거 발언들이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부적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취임 되자마자 '친일인명사전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를 바로잡겠다는 식의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발언을 꺼내놓고, 그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오해", "왜곡"이라는 단어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에선 "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학문적으로 지적하고 공개적으로 토론을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승만 국부론' 등 역사적인 논쟁이 뜨거운 사안에 대해선 "내 나름의 소신"이라면서도 "독립기념관장은 역사적 내용에 개입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답을 피한다. 독립긴념관장으로서의 '소신의 적절성'을 묻고 있는 유관단체들에게는 역시 허울 뿐인 답변이다. 정부 또한 '태도'의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관장 논란이 일기 전부터 정부는 독립기념관, 한국중앙연구원, 진실화해위원회 등 역사·보훈 기관에 대해 연이어 '뉴라이트 인사 논란'을 자처한 바 있다. 박이택(독립기념관 이사), 김낙년(한중원장), 김관동(진화위원장) 등 인사들이 각각 뉴라이트·식민사관 등 논란 속에서 각 기관 이사 및 기관장 등으로 임명됐고,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관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에도 뉴라이트 인사 논란이 일었다. 이 회장은 일련의 인사논란이 "커다란 계획", "거대한 음모"라며, 특히 '건국전쟁', '테러리스트 김구' 등 보수진영 역사 영화·도서 등과 이를 연결해 "이승만 대통령을 치켜세우고 '이 기회에 김구는 죽여버리자', 이런 음모"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의제가 직접적인 지지율 타격으로까지 이어진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의 이 같은 '인사 역사논란'이 장관 등 주요 공직자 인사급 논란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와중에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주변 참모들에게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왜 지금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지,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또한 인사 적절성 자체의 논란에서 '야당의 광복절 보이콧'으로 논점을 옮겨 "친일 선동으로 국민 속이고 국정을 흔드는 민주당의 행태야말로 매국"(곽규택 수석대변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합의 상징이었던 광복절 이후, 상황이 어디까지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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