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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순간'과 마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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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순간'과 마주치다

[최재천의 책갈피] <현법의 순간> 박혁 글

한나 아렌트의 정치 사상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의 고백이 특별하다. 사실 나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공감하기에 그대로 인용한다.

"저는 지금까지 남한에서만 치러진 총선거로 뽑힌 제헌의원들을 무시했습니다. 남북 영구 분단을 초래할 선거가 시행된 것이 안타깝고 못마땅했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만든 제헌헌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대로 된 헌법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든 졸속 헌법이라 하찮게 여겼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문서라고 낮잡았습니다. 다른 나라 헌법을 짜깁기한 모방 헌법이라 얕잡았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5월 13일 198명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발표됐다. 5월 31일, 제헌 국회 첫 번째 본회의가 열렸다.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개회사를 낭독했다.

"기미년의 결사 혈투한 정신을 본받아 최후 1인, 최후 일각까지 분투하여 나가자."

6월 1일 헌법기초위원회가 구성된다. 6월 22일 전문과 10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헌법안을 완성한다. 헌법안은 본회의에 제출되어 20일간의 심사에 들어간다. 7월 12일 헌법안이 통과된다. 그리고 7월 17일 제헌 헌법이 공포된다.

저자는 '1948년 6월 23일부터 7월 12일까지, 헌법기초위원회가 헌법안을 본회의에 보고한 날부터 제헌의원들이 헌법안을 심사해 최종 통과하는 순간'까지인 20일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 기간을 '헌법의 순간'이라 명명한다.

"우연히 '헌법의 순간'과 마주쳤습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찬찬히 볼 기회가 있었지요. 그때 느낀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헌의원들이 들려준 생생한 목소리와 그들의 생각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활기에 넘치던지요! 간절함과 의지가 빚은 광경이 제 심장을 두드렸습니다. 상대를 설득하고 논박하는 언변과 논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정치의 향연'입니다. 그 향연이 가슴을 뛰게 하고, 가슴 속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향연을 풀어놓았다.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결정한 이유, 3.1혁명이 3.1운동으로 바뀌게 된 경위,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제로 바뀐 까닭 등 14개의 헌법적 이슈를 추려내고 속기록을 요약해가며 착실히 해설했다. 법률과 정치라는 두 가지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실상 법률과 정치 관련 좋아하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강천석 고문님께 감사드린다.

▲<현법의 순간> 박혁 글 ⓒ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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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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