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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미국 대선 투표권을 허하라'가 헛소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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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미국 대선 투표권을 허하라'가 헛소리라고요?

[정치학 교실] '트럼프-해리스 대전'과 민주주의 기본원칙

2024년 11월 5일, 60번째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한국의 언론 보도나 기사 댓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을 살펴보면, 우리 대선 못지 않게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이 크다. 2000년 7831건에서 2020년 5만2639건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선이 있었던 해마다 지속적으로 기사 수가 증가해왔고, 올해는 미국 대선을 50여일 앞둔 2024년 9월 현재 3만8575건의 기사가 확인된다.

왜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 대선이 '태평양 건너편 남의 나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결과가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아무리 미국이 예전 같지는 않다 해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전 세계의 정치, 경제, 군사안보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군사적 동맹, 경제적 상호의존, 북한 문제,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와의 관계 대부분이 미국과 얽혀있는 우리나라는 특히 미국 대선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게 뻔하다.

그러니 미국 대선은 어떤 면에서는 구청장, 시의원 선거보다 나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왜 한국인인 '나'는 참여할 수 없는 걸까?

'미국 국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건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타박하겠지만, 이 물음에는 의외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이 있다. (물론 실제로 한국인들이 미국 법원에 투표권을 요구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 카멀라 해리스(왼쪽) 미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좌), AP=연합뉴스(우)

민주적 의사결정에는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

아주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이 공통의 문제에 대해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방법과 절차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사람'을 누구로 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이 문제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도출된 법과 정책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법과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모든 통치대상 고려 원리'(The All-Subjected Principle), 줄여서 ASP라고 한다.

ASP에 따르면,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만들어진 법과 정책은 국가의 주권과 통치권에 기반해 대상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결국 해당 국가의 국민이나 거주민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두 번째는 민주적 의사결정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느냐를 기준으로 영향받는 모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모든 영향받는 대상 고려 원리'(The All-Affected Principle), 줄여서 AAP라고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민주적 의사 결정이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결정의 결과로 영향을 받는 사람 모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AAP, 즉 '어떤 결정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 사람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일상의 영역에서는 매우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조기축구회 경기 일정을 내 의견은 묻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정한다거나, 아파트 주민인데 아파트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면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내가 참여조차 할 수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집단적 결정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은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V,59,5,2)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Quod omnes tangit debet ab omnibus approbari)는 원칙이 그것이다.

현대에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을 위시한 많은 학자들이 이 원칙의 현대적 버전인 AAP를 민주주의 이론과 접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워렌(Mark E. Warren)은 그 이유에 대해 AAP가 민주주의의 장점을 직관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내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고 싶다' - '발언권을 가짐으로써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집단적으로 자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계발의 기회이자 삶의 위험을 완화하는 방편이다' - '그렇게 못 한다면,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생각의 흐름에 따라 AAP와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pixabay.com

선을 넘는,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

이런 맥락에서, 워렌은 AAP가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사회 정의의 중요한 측면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AP를 일상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 그것도 국가 수준의 민주주의에 대입해보면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

먼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아니라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지역, 즉 직장이나 학교가 위치한 동네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내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홍대 '문화예술관광특구 테마 거리' 길바닥을 붉은색으로 칠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때, 주소지가 마포구가 아니지만 매일 같이 홍대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의사결정에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민이나 등록된 거주자뿐 아니라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서류 미비자, 밀입국자, 불법체류자 등 모든 사람들 역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가 비록 미국 국민은 아니지만, 미국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의견 역시 고려되어야 하고 우리도 대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펑(Archon Fung)은 국가를 넘어 다국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 등이 미치는 영향도 다룰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마냐(Pablo Magaña)처럼 동물도 정치적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AAP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물의 고통과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학자들도 있다.

핵심은 AAP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대선은 미국인 입장에서야 '민주적' 결정일지 몰라도, 삶에 큰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는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결정일 수 있다.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탐색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물론 우리 한국인들이 미국 대선에 투표를 할 수는 없다. 엘라히(Ahmed Elahi)는 AAP가 곧바로 투표할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AAP는 민주적 참여를 위한 권리를 창출하지는 않으며, 단지 정당성에 대한 권리를 제공한다. 내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따라 자동적으로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나아가 내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투표권은 여전히 국민만이 가지는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AAP의 논리에 따라 영향받는 모든 사람이 미국 대선의 투표권을 가진다면, 우리나라도 같은 논리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투표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국가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연관된 문제다.

다만 민주주의 정치철학은 현실이 그어놓은 선을 넘나드는 힘을 가진다. 물론 학자들은 AAP가 현대 민주주의 이론에 중요한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지나친 확장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다. 예를 들어, AAP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모든 결정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과도한 요구를 발생시킬 수 있다거나(쾨니히-아르치부기, Mathias Koenig-Archibugi), 이런 식이면 죽은 사람들도 법적·사후적으로 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민주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벵트손, Andreas Bengtson)는 비판이 제기된다.

AAP의 과도한 포괄성에 대한 비판에 따라 '모든 영향받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AAIP(All Affected Interest Principle)이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으로 한정하는 PAP(Possible Affected Principle) 같은 대안(로젠버그, Jonas Hultin Rosenberg)이 제시되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AAP는 특정한 제도적 설계나 글로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제도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윌슨, James Lindley Wilson)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일종의 사고실험이지만, 이러한 논의들은 모두 다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를 탐색하기 위한 노력들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미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영주권자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고 있는 흐름을 거슬러 때아닌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지 않은가.

정치·경제·안보문제뿐 아니라 인권, 테러,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당연한 듯 넘나드는 오늘날, 국경을 강화해 국민국가의 권력을 재집중시키려는 포퓰리즘의 반대편에는 AAP와 같은 논의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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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호

송경호 박사는 정치사상 전공자이자 개념사 연구자로,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BK21 '혁신 과학기술 시대의 정치적 문제 해결 교육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인문학자들의 모임인 'AI Five'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인권, 민주주의, 기후위기, 인공지능, 정치(학)의 변화 등을 키워드로, 다양한 연구 및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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