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정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는 것은 누가 뭐래도 '약자와의 동행'이다. 그는 2022년 7월 시장 취임식에서 "약자와의 동행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제가 서울시장으로서 존재하는 이유이자, 제 평생의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이후로도 오 시장은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가 "약자와의 동행"이라고 수차례 밝혔다. 취약 계층 생계지원책인 서울디딤돌소득, 교육지원책인 서울런 등 관련 정책도 시행 중이다. 그가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뉴타운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서울시장이고,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시장직을 잃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변화다. 다만 '약자와의 동행'이 서울시장으로 존재하는 이유이자 정치하는 이유라는 오 시장의 말을 온전히 긍정하기는 어렵다. 그 말이 무너지는 일, 특정한 약자를 골라내 동행에서 배제하는 일을 찾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세훈 서울시가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올초 법무부에 요청한 일이다. '극우 인사'로 꼽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마저 청문회 과정에서 이에 대해 '헌법상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오 시장은 "필리핀이나 동남아 국가 기준으로는 우리가 드리는 인건비 수준이 몇 배가 되기 때문에 기계적 평등을 따져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면 매우 형식적 관찰"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서울시가 법무부에 보낸 요청은 '코리안 드림'을 품에 안고 있었을 한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입국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9일 언론에 보도됐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을 테지만 오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열흘여 뒤 직접 나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서 재차 주장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도 빼놓기 어렵다. 서사원은 '좋은 돌봄은 좋은 일자리에서 나온다'는 기조 아래 돌봄노동자를 직접고용해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서울시 생활임금에 기초한 급여를 지급하던 공공돌봄기관이다. 민간이 맡기를 꺼리는 돌봄 이용자를 위한 '탄탄하고 빈틈없는 서비스 제공'도 목표였다. 그런 서사원이 서울시의회 의결과 서울시 승인에 따라 지난 7월 문을 닫았다. 민간기관이 맡기를 꺼려 서사원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다 폐지 소식에 발만 동동 구르는 돌봄이용자, 폐지에 반대하며 단식을 감행한 돌봄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1월에도 오 시장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이동권을 위해 싸워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겨냥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해 장애인 혐오를 조장하고 시민 간 갈등을 부추긴다고 비판받았다. 같은 해 4월 오세훈 서울시는 가족을 잃고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차린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납부하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하게 돼 있다'며 2900만 원의 변상금을 부과했고, 6개월 뒤 그 돈을 받아냈다. 오 시장이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방문해 유족들에게 공개적인 위로의 말을 남긴 것은 분향소를 인근 건물로 옮기기로 결정한 뒤였다. 오 시장의 '선택적 약자 동행' 행보가 더욱 문제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 외면한 약자들이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참사 유족이라는 데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혐오의 대상이 돼 여론지형상 소수로 몰리곤 하는 이들이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약자들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필리핀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적용 제외 주장을 생각해보자. 오 시장이 내건 명분을 그대로 따라 "물가"도 "인건비"도 우리의 "몇 배"에 달하는 스위스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 한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어도 그는 같은 말을 했을까. 한국사회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혐오 여론이 있으니, 그런 주장을 해도 정치적 부담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면 지나친 가정일까. 그래서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지만, 그가 내심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중도적 이미지를 강화해 정치적 인기를 끌어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정치적 유불리에 관계 없이 혐오 여론에 베이기 쉬운 약자들까지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약자와의 동행"에 대한 오 시장의 진정성은 앞으로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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