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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을 애통하게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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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회찬 의원을 애통하게 보내며 [기고]
정의당 사람들과 나는 인연이 많은 것 같다. 노회찬 의원과 나의 둘째 사위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동기로 졸업했다. 노 의원은 뺑뺑이 전의 경기고에 다녔고, 내 사위는 뺑뺑이 후의 경기고를 다녔으니 고등학교도 동문인 셈이다. 그래서 둘은 친했단다. 심상정 의원과 나의 첫째 딸은 서울대의 동기생으로, 심 의원은 사대이고 내 딸은 인문대였으나 지금까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노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 그가 진보정치추진위(진정추)를 할 때 그의 동료 주대환 씨와 함게 인사동의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다. 내가 정치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후 그가 나의 선거구였던 강서·양천구에서 선거 기반을 닦아보겠다고 하기에 적극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때 그는 조화순 목사가 자기의 장모라고 하였다. 견문이 짧은 나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렇게 말하였다가 미혼인 조 목사가 어떻게 장모가 되겠느냐고 면박을 받은 일이 있다. 노 의원은 조 목사를 따르는 운동권 여성과 결혼한 것을 두고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 후 그는 노원구로 선거구를 옮겼다.

나는 심상정 의원과는 드물게나마 만났지만, 노회찬 의원과는 만남이 아주 드물었다. 1년여 전의 일이다. 그가 인사동의 한정식집에 초청하여 갔더니 노동전문변호사 이덕우, 인터넷언론 <레디앙>을 하던 이광호, 정의당 사무총장 신장식, 정의당 원내대표 비서실장 김종철 씨 등이 모여 있었다. 1차 술자리가 끝난 후 그들은 큰 벤 차량으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유쾌하게 떠들며 2차 술자리로 갔다.

노 의원은 무엇보다도 재치있는 말로 주목을 끌고 인기를 끌었다. 흔히 촌철살인이라고 하는 순발력 있는 정치적 발언인데, 투사형이라기보다는 재사형인 정치인이었다. 삼겹살을 굽는데는 불판을 자주 바꿔야하듯, 정치판도 바꿔야한다는 재치있는 경구가 국민 사이에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요즘 진보 정치인들을 볼 때 속된 표현으로 너무 "가방끈이 길다"는 생각이 든다. 민노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권영길 씨는 서울대 농과 출신으로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파견되어 거기서 얼마 동안 대학 공부도 하였다. 민노당 대표였던 문성현 씨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우리나라의 해방 후 대표적 민족 지도자이자 진보 정치인이었던 여운형 씨는 접할 기회가 없어 언급을 생략하겠다. 그 후의 대표적 진보정치인인 조봉암 씨는 모스크바공산대학에서 단기교육을 받는 등 교육 과정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리 화려한 교육 경력은 없다. 또한 군사정권 시대에 작기는 하지만 진보정당을 만들어 줄기차게 노력했던 김철 씨도 별로 교육 과정이 대단했던 것 같지 않다.

진보정치인 자신들이 많은 교육 과정을 밟을 필요는 없을 성 싶다. 한 예로 지금 영국 노동당 당 대표를 맡은 제러미 코빈은 전문대학 과정을 잠깐 다녔을뿐인,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다.

진보정치인들은 대학교수 등 지식인을 참모로 둘 수 있다. 조봉암 씨는 도쿄제국대학 정치과 출신인 이동화 씨를 정치참모로 둔 적 있다. 그러나, 정강정책에 '사회적민주주의'라는 사회민주주의 개념을 삽입하여 6.25 후의 심한 반공 분위기에서 그런 표현이 과연 대중에게 설득력이 있었겠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김철 씨는 사회민주당을 만들 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인 임종철 씨를 정책위의장으로 둬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정의당에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였던 김세균 박사가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이와 같이 긴 설명을 한 이유는 우리나라 진보정당 간부들이 대체로 '가방끈'이 길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나는 창당 초기는 몰라도 진보정당에서 가방끈보다는 활동 경력이나 투쟁 경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드문 예지만 순수 노동 운동가 출신인 단병호 씨와 같은 훌륭한 예가 있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지금 노동 교육에만 힘쓰고 있는 것 같은데, 큰 자질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진보 정치에서 가방끈이 긴 정치인보다는 활동 또는 투쟁 경력이 뚜렷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전날에 재주가 번쩍이는 정치인을 정계의 '기린아'라고 부른 때가 있다. 기린이 목이 길어 뛰어나 보여서다. 노회찬 의원은 투지도 있고 참 재기발랄한 정계의 기린아였다. 그런 현명한 정치인이 어쩌다 그런 불법정치자금의 덫에 걸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정의당의 서민 사회와 함께 경기고 출신 등 상류 사회에 반쯤 몸을 담고 있었기에 그런 상류 사회의 풍습과 관행과도 같은 부패의 덫에 걸린 게 아닐까 상상하여 본다. 돈을 전달한 고등학교 동문인 변호사에 관심을 갖고서의 관찰이다. 나도 10여 년간 선거 정치에 빠져봤지만, 약간의 주의로 그런 함정은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재주 있는 노회찬 씨가 아차 깜박 주행선을 잘못 잡아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수사와 공판의 긴 과정을 겪으며 계속 정의당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단절하기 위하여 극단의 선택을 한 것 같다.

아깝다. 애통하다. 노회찬 의원을 보내며 나는 마음의 공허를 느낀다. 정의당 사람이나 정의당을 아끼던 서민 대중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27일은 그의 장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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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며 이념을 떠나 보수와 진보 양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 연재한 기고를 바탕으로 <언론·정치 풍속사>를 냈고 이후 대담, 연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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