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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박근혜가 아니다 [데스크 칼럼] 이명박과 박근혜, '진보하는 보수'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하 박근혜)이 2일 대선캠프를 본격 가동한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 캠프를 차렸다. 별도로 개소식은 하지 않고 10일께 대선 출마 선언을 한다고 한다. 대선이 6개월도 채 안 남은 현 시점에서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0%가 넘는 1위 후보니까 '컨벤션 효과'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김문수, 정몽준, 이재오 등 비박(非朴) 대권주자들이 '경선 불참'까지 내걸고 요구한 완전국민경선제를 처참히 묵살했던 것에서 확인된 것처럼 '최대한 조용히', '지금 이대로' 12월 19일 대선까지 가는 게 박근혜가 바라는 바다. 그의 바람대로 갈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이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대세론.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 2012년 대선을 지배하는 단어다. 풀어서 얘기하면, 누가 박근혜를 꺾을 수 있을 것이냐가 올해 대선의 관전 포인트다. 현 시점에선 여권에도, 야권에도 대항마가 없다.

▲ '박근혜 대세론'이 끝까지 갈 것인가. 2012년 대선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다보니 '박근혜의 약점'에 집중한다. 특히 야당 후보들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주요 공격 지점으로 하고 있다. 민주당의 문재인 의원이 '정수장학회' 문제에 날을 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다. 최근 경선룰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였던 완고한 '불통(不通)'의 리더십과 같은 박근혜 개인의 약점 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까지 모두 끄집어 내 '독재자의 딸'이라는 범주 안에서 공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대선 캠프에 참여하기로 해 화제를 모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런 공격이 "연좌제"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박정희의 딸로서 박근혜가 갖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가 독재자로서 저지른 과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단죄가 없었던 것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대목이다. 만약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이 돼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와 후대에 대한 교육이 그의 임기만큼 더 연기된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의 후퇴'를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판은 현실에서 큰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야권 인사들과 그 지지자들은 다수의 국민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더 크게, 더 많이 얘기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민심은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일각에선 '우매한 국민 탓'을 한다.

왜 박근혜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작동하지 않는가?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에 근거한 비판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어떤 대통령이었냐는 지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야권의 폭로로 자신이 갖고 있던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바꿀 유권자는 많지 않다. 박근혜 지지자들 중에선 더 그렇다. 이런 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이는 '독재자의 딸'은 정치적인 효용성은 떨어지는 대목이다. 유권자들 입장에선 이는 가장 손쉬운 공격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한반복하는 야권의 전략은 스스로의 '무능'에 대한 자기고백으로 읽힐 수도 있다. '박근혜 공격'에 대한 효과에 의심을 품은 이들 중 일부는 '박근혜 매력 찾기'로 눈 돌리기도 한다. 그나마 나은 접근이기는 하지만 때늦은 감이 없잖아 보인다.

2012년 대선을 지배하는 '박근혜 대세론'을 보면서 2007년 대선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일단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명박 대통령이 주저앉히면서 사실상 게임은 끝났다. 이명박 역시 BBK를 앞세운 야권의 집중포화에도 끄떡없었다.

2004년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을 '천막당사'로 살려낸 박근혜를 이명박이 이기자 일각에선 '신(新)보수'의 등장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자신들 입장에선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보수세력이 세대교체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박형준, 곽승준, 정두언 등 이명박 정권을 만든 일등공신 중 일부는 과거 '꼴통 보수'와 대비되는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했다. 실제 이명박 정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MB 심판'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된 민심이다. 하지만 많은 수의 국민들은 그 심판의 주체로 박근혜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 왜? 국민들의 바라는 '심판'은 말 그대로 심판, 정치보복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과 다른 국정운영이다. 그 점에서 박근혜는 이명박과 같은 당 소속이지만 분명 '차별적 이미지'를 갖는다. 그 이유가 친이(親李)계의 정치적 탄압 때문이었든, 박근혜 의원 스스로의 거리두기 때문이었든 간에.

이명박 정권과 차별적 이미지를 갖는 것의 핵심은 '현 정권과 권력 배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가 이명박과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종인 전 수석, 이상돈 중앙대 교수 같은 이들이 상징적 인물이다. '정통 보수'이지만 이명박 정권을 비판해온 이들이 표방하는 이미지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다. 김종인 전 수석은 박정희 정권에서 의료보험 도입을 주도하고, 노태우 정권에서 재벌개혁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이상돈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해온 인사다. 김종인 전 수석이 대선 캠프에서 정책을 총괄하는 등 이들은 대선에서도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이상돈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실제 박근혜 의원이 집권할 경우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게 찍혀 '팽' 당하듯 내부 권력다툼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얼마 전 실체가 드러나 논란이 된 3공, 5공 출신 친박 원로그룹인 '7인회'가 박근혜의 또 다른 조언그룹이라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충분히 현실 가능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신보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이명박 정권이 초토화된 지점에서 박근혜라는 또 다른 보수의 리더가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회창에서 이명박으로, 이명박에서 다시 박근혜로, 그 이미지와 내세우는 가치가 '진보'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보수세력은 그 층위가 두텁고, 유권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박근혜는 개인 박근혜가 아니다. 변화하는 생물인 정치 매커니즘 안에서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박제화된 모습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딛고 일어서려는 보수정당의 새 지도자다. 이 간단명료한 사실이, 그 의미가, 소위 총성 없는 전쟁이라 표현되는 선거전에선 잊혀지기 쉽다. 야권이 'MB 심판'의 주체로서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이에 천착해야 한다.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비전 제시와 구도 짜기가 핵심이다. 2012년 대선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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