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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시즌 2'는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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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시즌 2'는 시작되지 않았다 [데스크 칼럼] '안철수의 생각'과 정치인 안철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하 안철수)의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견해를 담은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 나흘 만에 12만 부가 출고됐다고 한다. 초판 4만 권은 이틀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열풍'이지만, 초반의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책 출간과 맞춘 '정치 행보'로 보이는 SBS <힐링캠프> 출연을 놓고 여야 모두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8일 녹화를 마친 <힐링캠프>는 23일 방송된다. 이 프로그램엔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등 여야 대권주자가 출연한 적 있다. 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두 사람 모두 이미지를 개선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책 출간으로 대선 출마가 이전에 비해 좀 더 명확해진 안철수에게도 <힐링캠프> 출연은 마찬가지 효과가 기대된다. 꼬아보자면 '속이 훤히 보이는 행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새누리당 버전으로 말하자면 "달랑 책 한권 내고" 대선 도전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안철수 입장에선 자신의 '생각'을 대중을 상대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제한돼 있다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 23일 방영될 <힐링캠프> 안철수 편. ⓒSBS제공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안철수의 생각>으로 자신에 대한 일차적인 비판은 면했다. 대중적 인기만으로 대통령 자리를 노리려 한다는 비난 말이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 한미 FTA, 보편적 복지정책, 원전 문제, 결혼이주여성 및 그 자녀 문제, 남북관계 등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한 원칙적 수준의 입장을 밝혔다. 책에 담긴 내용만 놓고 보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이재오 의원을 통해 안철수를 배후에서 밀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박근혜 지지모임 박사모의 정광용 대표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안철수의 생각은 민주당에 가깝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보여주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조정해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는 것이 정치 과정이자 정치의 본질이다. 안철수는 이제 첫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보였던 50%대의 지지율, 또 현재 대선가도에서 10-20%대의 지지율은 사실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지지라고 보긴 힘들다. 의사, 벤처기업가, 교수라는 개인 안철수가 이룬 성과와 메시지에 대한 기대심리라고 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치적 지지라기 보단 일종의 '팬덤' 현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안철수를 대권주자로 지지한다는 말을 하기엔 '빈 공간'이 많다. <안철수의 생각>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대중들에게 그의 생각이 안 알려져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비정규직 고용은 사실 회사 입장에서 필요할 때 일을 시키는 방식으로 노동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의 경비절감 수단으로 돈을 더 적게 주면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비정규직을 쓰고 있죠.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늘었고요.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남용할 수 없도록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이 지켜질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합니다. 중소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도입하고,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솔선수범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172쪽)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기 위해 노무현 정부 이래로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어왔는지를 감안할 때 '앙상한 수준'의 해법 제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 한권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점은 알지만, 이런 '생각'을 기업 등의 반발을 무마하고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대목에서 <안철수의 생각>이 특히 아쉽다. 경제, 사회 현안 중에선 민감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이슈(재벌개혁, 삼성 백혈병, 의료민영화 등)까지 담겼지만, 정작 본인이 뛰어들려는 정치 이슈에 대해선 거의 말하지 않았다. 80년대 학번이지만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이전까지 정치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삶의 이력을 볼 때 더 아쉬운 대목이다.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민주당에 대한 실망, 기존 정치질서의 문제점 등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그가 밝힌 '생각'에서 크게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박근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가 가진 민주당의 정책에 가까운 '생각'을 현실화하는 과정엔 우리사회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가 "삼성 동물원"이라고 비판한 재벌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재벌의 반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가 말한 '상식'과 '비상식'의 기준, 그 '비상식'을 유지시키는 게 바로 기득권 세력이다.

'좋은 생각'만으로 '좋은 정치인',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기반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취약하고, 그의 '생각'이 사회 기득권 세력과 배치될 때, 이는 매우 힘든 일이 된다.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겪었던 고초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안철수가 정치인, 더 나아가 대선후보가 되고자 한다면 이런 의문에 답해야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낡은 체제'가 아닌 '미래 가치'의 정치적 아이콘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정치에서 '낡은 체제'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말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나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를 것이라는 얘기는 정치를 모른다는 자기 고백처럼 들린다.

진정한 '안철수 현상 시즌 2'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타났던 '안철수 현상'에 대한 정치적 차원의 자기성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안철수 현상'이 팬덤에서 정치적 지지로 바뀌는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안철수 현상 시즌 2'가 시작되길 바란다.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를 떠나 우리 정치가 좀더 풍성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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