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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공무원은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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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공무원은 적이 아니다! [데스크 칼럼]<48>김종훈-황철주 사태와 '위인설법'
생각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공무원들의 생리를 잘 알 것 같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스물 넷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리했다. 국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관료들과 그들을 다루는 법을 보고 배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 겪었던 일들도 아마 권력과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 대표 등 정당을 운영할 때도 그의 용인술은 남달랐다. 사람을 고를 때 주위 사람에 의존하지 않았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한번 발탁해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계속 자리를 만들어줬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런 독특한 인사 스타일은 계속 유지됐다. '깜깜이 인사', '나 홀로 인사', '불통 인사' 등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직까지 변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초기 인사 실패는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닌 듯하다. 누구보다 공무원들의 생리를 잘 아는 그로선 초반 기세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공무원들을 다잡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사다. 특히 '복지부동'이란 말이 으레 앞에 붙는 관성에 사로잡힌 이 배타적 집단에 '직방'인 게 바로 외부충격요법이다. 자진 사퇴하지 않았으면 사상 첫 미국인 출신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김종훈 씨(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주식백지신탁제도 때문에 자진 사퇴한 황철주 씨(중소기업청장 후보자) 등 기업인 출신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게 '외부충격'을 주고자했던 게 아닌가 싶다. 바깥의 인재를 중용하는 방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닮았다는 풀이도 있지만 말이다.

ⓒ청와대

안타깝게도 두 인사 모두 자진사퇴했다. 김종훈 씨는 이중국적과 CIA 연루설, 뒤이은 미국내 행적과 재산형성과정 등과 관련된 루머가 퍼지면서 급작스레 자진사퇴했다. 그는 20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사퇴한 이유에 대해 "약 2주간 한국 사회 한복판에 있으면서 한국의 '한쪽 피를 봐야 하는 정치(blood sport politics)'와 뿌리 깊은 관료주의는 나 같은 외부인을 받아들여 새 부처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고 주장했다. 황철주 씨는 지난 18일 주식백지신탁제도를 이유로 전격 사퇴했다. 황 씨는 청장직을 수행하게 되면 자신이 창업한 '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전량 매각해야 했기에 사의를 밝힐 수밖에 없다며 "'백지신탁'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 불찰"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당선 이후 김용준 총리 후보자에 이어 3명이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의 낙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도 초기 조각에서 3명이 장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낙마했었다. 새 정부가 자리 잡는 초기 진통 과정 정도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사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김용준, 김종훈 씨가 사퇴하면서 지적한 인사청문회의 문제, 황철주 씨가 지적한 주식백지신탁제의 문제를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행정안전부 내에서 마치 충성 경쟁이라도 하듯 관련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물론 법과 제도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문제 삼는 대목이 과연 그런 문제일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과연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주식백지신탁제도가 현재 공직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 수혈하는데 지장이 될만큼 엄격한 제도일까?

객관적으로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문제를 지적한 현재의 인사청문회를 위장전입과 같은 '가벼운' 위법을 저지른 후보자도, 한달에 1억 원이나 되는 보수를 '전관예우' 차원에서 받은 후보자도 모두 통과했다. 주식백지신탁제도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된 2006년 이후 2012년까지 단지 17.9%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으로 인정됐다. 대법원, 검찰청, 경찰청, 외교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행정안전부 등의 고위공직자 소유 주식은 전부 '직무관련 없음'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박근혜 정부와 여당 내에선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까?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공직자'가 어떤 사람이냐는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여전히 국민 10명중 7명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 전반이 투명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9일 현대경제연구원 발표). 여전히 우리나라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에 달한다는 얘기다.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 곧 법과 제도를 만드는 한 주체가 공직자다.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다양한 경험과 능력일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특권'과 '불평등'을 바로 잡고 완화하겠다는 의지가 우선이 아닌가 싶다. 고위 공직에 있다 로펌에 취직해서 월 1억 원의 보수를 받는 게 당연하고, 그런 뒤 다시 장관직을 제안하면 아무런 갈등 없이 덥썩 받아들이는 '특권의식'에 가득찬 '능력자'들이 바람직한 '고위 관료'의 모습일까?

박 대통령은 '신뢰'와 '원칙'을 기반으로 '법치'를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집권을 하고 나서 자신이 발탁한 총리,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법'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 맞게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사람에 맞춰 자리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사람에 맞춰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이 '위인설법'하면서, 국민들에겐 '준법'을 강조한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또 박 대통령이 그렇게 함께 일하고 싶은 장관 후보가 왜 꼭 기업인 출신인지도 의문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 운영과 공익을 추구하는 국가 운영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이미 이명박 정부 때 확인된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가졌더라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정부 정책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차라리 공무원 중에 찾아보는 건 어떨까. 공직자 중에서도 훌륭한 인재는 얼마든지 많다. 정치성향 따지고, 출신 지역 따지다 보니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수완' 좋은 일꾼이 아니라 '정직한' 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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