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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거리의 만화가'를 자청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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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는 왜 '거리의 만화가'를 자청했나 [전태일 통신] <102> 현장에서 느끼는 사람 향기 그리는 이동수 화백
"주제어가 '수첩'이라고 해서 여러 개 가지고 왔어요."

이동수 화백은 가지고 온 수첩을 주섬주섬 꺼내어 펴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수첩의 허름함이 보였다. 어딘가에서 행사가 있을 때 받았을 법한 평범한 포켓용 수첩이었다. 이 화백은 <경인일보> 등에서 시사 만화가로 일했으며, 현재 진보적 시사 만화가 단체인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장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웹진 <인권오름>에 '이동수의 만화 사랑방' 등을 연재했다. 그는 자신을 표현할 때 '반(半) 농담'으로 '레알 로망'이라는 말을 쓴다.

"원래는 이것(크로키북)만 가지고 다녔는데 주머니에 넣기가 불편해서 작은 걸 가지고 다니면서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성이 필요한 곳에서는 작은 수첩이 유용하죠. 즉각 대응용이랄까. 어디선가 나눠주면 이런 거(작은 수첩)는 체면 불고하고 막 집어옵니다.(웃음)"

수첩 안에는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이 들어 있었다. 거의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의 여백엔 글씨들이 흘림체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림의 주인공들을 보호한다는 듯이 글씨가 감싸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그려서 기사 비슷하게 글을 써서 알리는 것인데, 터지는 데가 워낙 많아서 왔다 갔다 하다보니까 정리를 좀 못하고 있죠…."

포켓에 들어가 있을 때는 그저 허름하고 평범한 수첩이었지만, 꺼냈을 때는 그 안에 누구에게도 잘 그려지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기는 수첩이었다. 이동수 화백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이동수 화백 ⓒ전태일재단

전태일재단 : 언제부터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셨어요?

이동수 : 현장을 본격적으로 돌아다닌 지는 4년쯤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주로 조직(만화가 조직) 활동을 했고 그때도 틈틈이 현장에 나와서 작업을 했었어요. 적극적으로 현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 현장, 용산참사 희생자 농성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현장의 내용들을 만평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것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죠."

전태일재단 : 어떤 계기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시게 됐어요?

이동수 : 그전에는 시사 만화를 오랫동안 그려왔었어요. 그런데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을 비판하는 내용들만 그리다보니까, 남 욕하는 거니까, 나도 재미가 없어져요. 그리고 예전에는 만평이 영향력이 있었고 그 지적들을 받아들이는 측면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부터는 소위 문화적 교양과 예의가 없는 정권들이 들어서서 강압을 하고 지적들을 무시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용기를 주는 게 훨씬 더 의미가 있겠다 생각해서 현장에 다니기 시작한 거죠.

전태일재단 : 그러면서 '거리의 만화가'라는 별명이 붙으셨군요?

이동수 : 어쨌든 저는 현장의 중요성을 생각해요. 우리나라 언론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잘 안 다루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보니까 나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또 한편으론, 좀 다른 방식으로 주류 언론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요. 그렇게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전태일재단 : 이 그림들을 그려서 인터넷 신문 같은 언론에 보내시는 건가요?

이동수 :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에 기사를 덧붙여 언론에 기고하기도 해요. 좀 더 열심히 써보려고 했는데, 워낙 현장에 터지는 일들이 많다 보니까 정리할 틈이 잘 안 나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해서 호구지책이 마련되면 해볼 만한데, 현실적으로 그 정도까지 되지 않으니까 쉽지가 않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쓰는 기사의 가치가 떨어지는 측면도 있으니까 오프라인 언론처럼 높은 고료를 요구하기는 힘들겠다 생각하는 면도 있지만, 좀 아쉽죠. 글을 쓸 때는 내가 빨리 알려야 된다는 마음인데, 어느 순간 보면 내 기사의 가치가 이렇게밖에 평가를 못 받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까 한 1년 정도 투고를 그만둔 적이 있었어요. 저에게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리고 다음에는 가능하면 좀 많이 알리는 게 중요해요.

▲ 이동수 화백의 수첩 ⓒ전태일재단

전태일재단 : 현장에 가서 캐리커처도 그리시는 거죠?

이동수 : 아주 기본적으로는 거기 계신 분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요. 아까도 말했지만 거기 계신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어요. 또 하나는 '당신들의 현재 모습들이 옳다'라는 것을 저는 그림으로 말해드리는 거죠. 기륭(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때 그런 걸 느꼈었는데, 투쟁이라는 게 경직된 모습,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기륭에서 승리하고 나서 마지막에 문화제를 할 때 김소연 지회장을 그렸었어요.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나도 밝은 거예요. 천진난만한 표정이었어요. 그게 그 사람의 본모습인데, 본질인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전태일재단 : 현장에서 그림 그리다가 안 좋았던 기억은 없었나요?

이동수 : 딱히 안 좋았던 기억이라고 할만한 것은 혼자 감수할 수 있는 정도예요. 그런데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예컨대, 내가 현장에 가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는 게 바른 방법인가, 아니면 그림들을 만화책이라든지 하는 걸로 만들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게 맞는 방법인가, 그런 고민 지점이 있어요. 분명히 실질적으로는 그게(전자가) 더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또 현장에 있는 것도 중요하죠. 한편으로는 그렇게(전자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현장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된다, 이렇게 봐요. 문제는 그 둘의 가치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는 생각을 해요.

가끔 현장에서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함께하고 있는 캐리커처 작가는 한국에서 최고로 캐리커처를 잘 그리는 사람이다.' 이렇게 과장되게 표현해요. 왜냐하면 우리의 노동 현장 내부에서는 가끔 그런 풍토들이 있어요.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대중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착각, 혹은 실력이 없어서 이곳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들이죠. 노동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 지점들인데 과연 그 실력 평가의 기준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현재 상황에서는 (제가) 대중에게 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들이 선택을 한 것이지 선택 당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거든요. (저는) 대중 시장이 아니라 노동 현장이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거죠. 분명히 다른 기준들이 있는 건데, 얼핏 그런 선입견들이 있어요.

▲ 이동수 화백의 수첩 ⓒ전태일재단

"유명세? 끊임없이 현장에 발을 딛고 해나갈 토대를 쌓아야죠"

전태일재단 : 전에 이동수 화백의 다른 인터뷰에서도 그런 언급을 읽었어요. 현장에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오히려 현장에서 이뤄지는 저평가와 그에 대한 아쉬움. 저도 찔리더라고요. 화백님 말씀대로 선택의 문제이고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일 텐데요.

이동수 : 물론 어떤 면에서는 (나도) 떨어지는 면이 있다고도 봐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소한 이걸로는 누구한테도 안 꿇린다, 그 힘으로 노동 현장에서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현장)를 버리고 유명해지는 건 싫다, 만약 유명해진다면 '노동 현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훌륭한 만화가다', 이런 얘기는 듣고 싶어요. 문제는 그렇게 유명해진 후에도 내가 끊임없이 현장에 발을 딛고 해나갈 수 있는 토대를 쌓아야 하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한 자기 확신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아까 말했던 대로 현장에 있는 문화예술가들에 대한 이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요. 각 역할에 따라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죠.

전태일재단 : 예전처럼 시사 만화가로만 있을 때와 지금처럼 현장에 다닐 때를 비교했을 때는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이동수 : 큰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면, 현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막 웃어요. 내가 좋아서 웃는 거예요, 내가 행복해서. 표정 하나를 그리면서도 내가 행복함을 더 느껴요. 짧은 순간이지만 그런 마음들을 얻게 되는 것 같고.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다니는 거니까, 또 한편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았다는 게 있으니까요.

▲ 이동수 화백의 수첩 ⓒ전태일재단

전태일재단 : 그래도 시작할 때는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떠셨나요?

이동수 : 처음에는 쑥스럽고 그런 게 있잖아요. 그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어떤 모르는 사람이 수첩 가지고 끼적거리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했고요. 저는 '겸손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탔는데 나이 드신 분이 타셔서 양보를 하고 싶은데, 양보하면 다들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쭈뼛쭈뼛하다가 양보 못하게 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이런 말 하면 지금은 사람들이 다 웃지만,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현장에 나가는 것이) 큰 용기인 거죠. 창피하고 쑥스럽지만, 그런 과정들을 끊임없이 겪는 거죠. 그리고 이겨내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나름의 비결은 이미지 훈련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거예요. 걱정되는 상황 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상황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두려움들이 있는 거잖아요. 지나고 나면 쓸데없는 두려움들이죠. 그런 상황들을 떠올려 보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가기 전에 미리 생각해보는 거죠. 그러다보면 그런 환경에 적응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돼요. 흔히 만화가들이, 혹은 예술가들이 소극적이잖아요. 창작자로서도 이겨내야 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우물 안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전태일재단 : 겸손한 용기, 예술가들에게 참 필요한 덕목인 것 같아요. 자신의 작업을 가지고 타인들과 바로 소통하는 데는 자신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동수 :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해요. 철저한 준비를 한다는 건 어떤 상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림, 캐리커처에 대해서도 열심히 준비를 해가지고 나가는 거죠. 현장에서 그림 그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물어봐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잘 그리시냐고. 그럼 저는 '이렇게 그리려고 밤새 연습해가지고 왔습니다' 해요. 실제로 그렇거든요. 여러 가지로 미리 연습해보고 실험해보고 하는 준비를 해야 돼요.

▲ 이동수 화백의 수첩 ⓒ전태일재단

이동수 화백은 인터뷰 사이사이 수첩 속 그림들을 보여주며 어디서, 언제 그린 그림인지 소개해주었다.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날씨를 말해주듯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다들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그림들 속에서 사람들은 추워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 곁에는 그들을 그리고 있는 거리의 만화가가 있다. 이동수 화백의 수첩 맨 뒷면에는 이름과 전화번호와 함께 누군가 이 수첩을 발견했을 때 꼭 돌려달라는, 소중한 수첩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한번 잃어버렸다가 이렇게 써놓은 것 때문에 찾은 적이 있었어요. 이거 잃어버리면 '멘붕' 되는 거죠. 수첩이라는 건 내 삶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부천의 콜트콜텍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에 있는 파견 미술가들의 미술 재료들을 사 가야 했다. 이동수 화백은 이동 중에도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현장 소식들을 확인했다. 잠시 담배를 피우고 가자는 말에 멈추었다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담배는 걸어가면서 피웠다. 너무 바쁘게 돌아다니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허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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