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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독일이 실패한 것들만 받아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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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독일이 실패한 것들만 받아들이나" 철도 산업의 미래를 위한 국제 학술 심포지엄 개막…"민영화 저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죽은 줄 알았던' 불씨, 철도 민영화 이슈가 다시 불붙었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대선 이전부터 새누리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철도 민영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경고음을 꾸준히 내왔다. 이 같은 사회적 우려를 의식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 도중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 경고됐던 일들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 벌어지고 있다.

▲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사실상 뒤집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철도 민영화 콤비?

철도 구조 개혁의 역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 부처 산하 외청이던 철도청이 코레일(철도공사)로 옷을 갈아입었고 시설과 운행을 나누는 '철도 상하 분리'가 이뤄졌다. 큰 틀에서 민영화를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두 정부는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민간 경쟁 체제 도입만은 '금기'로 남겨두었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2003년 6월), 철도사업법(2004년 11월)을 비롯해 철도청이 공사로 변환되고 상하 분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한국철도공사법, 한국철도시설공단법, 철도건설법 등 5개 관련 법률을 대표 발의했었던 이호웅 전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이 일관되게 증언하는 것도 "국가 소유의 철도를 민간이 운영하도록 하는 근거는 없다"는 부분이다.

▲ 새누리당의 '수서발 KTX' 민영화 계획 ⓒ철도노조
이는 '철도 민영화는 전임 정부에서 추진했고, 이를 실행하는 것일 뿐"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철도 민영화' 추진 논리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철도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고 정부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로 읽을 수도 있다. 그만큼 민감한 이슈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특유의 '불도저' 스타일로 교통·건설 분야 관료들을 앞세워 철도 민영화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2015년 개통하는 수서발 KTX 노선의 운영을 민간 기업에 넘겨 고속철도 간선의 운영을 철도공사(정부 소유 공기업)의 독점 체제에서 '공기업 운영사와 민간 운영사가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프레시안>은 민간 건설사 내부 문건을 폭로해 새로 도입되는 수서발 KTX의 민간 사업자 선정 계획을 낱낱이 밝혀내기도 했다. 거센 반대에 부딛힌 이명박 정부는 이런저런 '꼼수'들을 등장시켰다. 철도 관제권을 국가가 환수해 민간 사업자의 진입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도 이뤄졌다. 그러나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철도 민영화 추진에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관료들이 내놓은 정책을 이어갈 '보수 정부'의 정권 연장이었다. 그리고 '보수 정부'의 연장은 현실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박 대통령의 공약과 달리 이상한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코레일이 독점하는 철도 운영을 복수의 경쟁 체제 방식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입장'을 재차 천명하며 철도 산업의 분할과 민영화 계획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주의적 철도 구조조정을 옹호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민간자문위원회'가 갑자기 조직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23일 민간자문위원회의 입을 빌려 '철도 발전 방안'을 발표했고, 6월 26일 철도산업위원회(철도 산업 거시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위원회)를 개최해 철도 민영화의 '마중물' 격인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을 천명한다. 이를 시작으로 철도 민영화를 위한 단계별 추진 계획도 확정했다. 2017년,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코레일이 전담하고 있는 사업을 쪼개 분야별 자회사를 둔 지주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015년 이후 개통하는 4개의 신규 일반 노선과 기존 적자 노선의 운영을 민간 사업자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철도 발전 방안'을 '공기업 중심의 독일식 모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시민사회 단체, 노동계 등은 "철도 운영의 분할과 프랜차이즈화를 핵심으로 하는 '영국식 철도 민영화 모델'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박근혜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것으로 보고 국토부의 철도 민영화 추진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항의 행동에 돌입했다.

철도 민영화는 그 '생명'을 연장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시민사회로부터 "공약을 뒤집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철도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근간을 형성하는 각종 공공 부문에서 정부 주도의 '민영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 같은 사회적 흐름 속에서 철도뿐 아니라 공공 부문의 민영화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철도노조 등은 27일부터 3일간 '한국 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을 연다. ⓒ철도노조

"철도, 변화는 필요하다…단 노동자·시민 의견 반영돼야"

민주노총은 지난 8월 19일 민영화 저지 집중 투쟁 기간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다음달 7일까지를 1차 집중 투쟁 기간으로 선포했고, 9월에 시작될 정기국회의 국정 감사 기간 이후인 10월 중순부터 11월에 열릴 예정인 전국노동자대회까지를 2차 집중 투쟁 기간으로 예고했다. 오는 28일, 다음달 4일 등 매주 수요일을 '집중 행동의 날'로 정해 출근 선전전, 촛불 집회 등을 진행한다.

이날 개막한 '한국 철도 산업의 미래를 위한 국제 학술 심포지엄' 역시 민영화 저지 활동의 일환으로 민주노총, 한국철도노조 등이 기획한 행사다. <프레시안>, <한겨레>를 비롯해 '공공 부문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 공동 행동', 'KTX 민영화 저지와 철도 공공성 강화 범대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당 설훈·김현미·박수현·정호준 의원,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이 후원하고 있다.

27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이번 국제 심포지엄에는 국제운수노련(ITF) 철도 분과 의장인 와슈타인 아슬락센 노르웨이 국영철도위원, 철도 전문 저널리스트인 크리스천 월마 전 <인디펜던트> 기자, 독일 최대 환경 단체인 분드(BUND) 교통정책과장 베르너 레 박사, 유럽공공노련 집행위원인 얀 루덴 스웨덴 기간산업전국교섭위원회 위원장, JR동일본철도노동조합 이시이 다카시 부위원장, 그리고 철도 기관사 출신인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참여한다.

독일의 철도 전문가인 베르너 레 박사는 국제 심포지엄에 앞서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도입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독일식 모델'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짚으며 "한국 정부는 독일이 실패한 것들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레 박사의 인터뷰는 조만간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민주노총 등은 "이번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국토교통부의 철도 구조조정 정책은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추진되었던 세계 철도 산업의 민영화·상업화 전략과 동일한 것이고, 세계 철도 산업에서 이미 실패가 입증됐음을 확인할 것"이라며 "더 나아가, 한국 철도의 미래를 열어갈 올바른 철도 발전 전망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슬락센 의장은 국제심포지엄 개막식 축사를 통해 "국제운수노련은 철도 공공 서비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철도의 공공성은 언제나 유지돼야 하고 민간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세계가 변화함에 따라 철도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 변화를 위해서는 철도와 관련된 자국민들과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아슬락센 의장은 "민영화 저지 투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철도 노동자들의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철도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강한 연대가 중요하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박근혜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철도 민영화를 바로잡는 투쟁은 노동자 투쟁을 넘어선, 전 민중을 위한 중차대한 투쟁"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친자본 정책과 민영화 정책을 저지하는 것은 민주노총 하반기 투쟁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꼭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KTX 민영화 저지 특위' 위원장인 설훈 의원은 "모든 법은 국회에서 정리되도록 돼 있다. 법뿐 아니라 정책도 양당 간에 합의돼야 실현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공공 부문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휴지 조각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막아냈다. 단언하건대 민주당이 있는 한 공공 부문 민영화는 안 된다.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정의당 'KTX 민영화 저지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원석 의원은 "수서발 KTX 도입은 명백한 민영화"라며 "민영화를 반드시 막을 것이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공공 서비스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모든 국민이 민영화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바라고 저도 국회 공론화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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