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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정치(正治)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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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대통령, 정치(正治)를 하세요"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4> 통치·사치(私治)의 유혹 뿌리쳐야
치사하다. 그만 두겠다는 사람 사표도 수리하지 않은 채 보름동안이나 꼼짝 못하게 기둥에 묶어 세워 뒀다가 등 뒤에서 칼질을 했다. 직전의 검찰총장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제조'해 철저하게 망신살을 뒤집어 씌우려한 이 정권 이정부의 의도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치사한 짓거리였다"는 소리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혼외(婚外)아들이 있음을 입증하는 직접증거도 물론 없었다.

고검장실에 '그 여인'이 찾아가 소란을 피웠다거나, 그 여인이 '이른바 언론'에 보도 되던 날 새벽에 가방을 싸들고 잠적했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도 그저 전해들은 '정황'일 뿐이었다. 더구나 혼외아들 유무에 대한 진실 문제를 놓고, 채동욱 전 총장이 정정 보도를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절차가 진행될 예정인 상황에서, 증거도 없으면서 '의혹은 사실'이라고 몰아붙여 공표까지 한 것은 '법'을 다루는 정부부처로서 지극히 바르지 못한 처신이었다. 야비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게 법무부는 "혼외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할 만큼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진술과 정황을 확인했다"며 대통령에게 채동욱 총장의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법무부는 '털어 봐도' 나오는 게 없자 '감찰 결과' 발표를 통해, 채 총장의 사표를 움켜쥐고 보름동안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앓이를 하던 대통령에게 사표를 수리해 버릴 수 있는 궁색한 명분을 억지로 마련해준 셈이다.

이른바 감찰이 시작 되던 날 채동욱 총장은 바로 사표를 냈으나 그 사표는 '정부 측 사정에 의해' 수리되지 않았다.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수리하지 않겠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설명이었다. 때문에 채 씨는 그동안 형식상 검찰총장이었으나, '식물총장'이면서 동시에 아직 공직에 적을 둔 상태라 운신의 폭이 지극히 제한되는 상황 속에 놓였다. 그러다 등 뒤에 칼을 맞았다. 아직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채 씨가 손발 묶인 상태에서 '감찰'은 15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전국에서 '먼지 털기'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심지어 채 씨 조상들이 묻힌 전북 군산의 선산까지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아들이라고 '지목'된 그 어린이는 2002년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혼외아들 출생으로 그때 품위를 손상했다 쳐도 감찰에 따른 징계 시효는 3년이다. 왜 2013년에 그 요란한 감찰이라는 것을 시작했고, 왜 대통령은 그렇게 미적거렸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채동욱 사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처리과정에서 윗분의 뜻에 따르지 않고 원세훈 씨를 '기소'함으로써, '지존'을 '능멸'한 검찰의 수장이 정권의 보복과 응징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채동욱 전 총장은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거치는 임명과정에서부터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통령 의중의 인물은 따로 있었다고들 말한다.

그래도 총장이 된 그 '미운털'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기소하면서 '괘씸죄'에 걸렸고, 그래서 청와대의 '채동욱 뒷조사'가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로 번져있다. 뒷조사 과정에서 혼외아들 '정보'가 입수됐다고 했다.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꿎은 한 어린이의 인권까지 짓뭉갠(채 씨의 혼외아들이라 치더라도 그렇다) 이 정보가 한 '이른바 언론'에 전해져 '작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당초 계획은 '하청' 받은 '이른바 언론'이 혼외아들 보도를 터뜨리면, 그걸 빌미삼아 '감찰'을 시작하고, 총장이 사표를 낼 테니까 청와대가 바로 이를 수리하는 순서가 예정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돌발변수가 생겼다. 총장 사표에 검찰 내부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서, 민주당 쪽에서도 예정돼 있던 대통령과의 3자회담 거부 기류가 일어나자, 청와대가 허겁지겁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 사퇴 의사를 밝히고 검찰청을 나서고 있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다. 그게 놓쳐서는 안 될 본질이고 핵심이다. "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기소'한 검찰총장 때문에 대통령은 한없이 속상해 하고, 혹시라도 터져 나올지 모르는 '정통성 시비' 가능성까지 신경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선개입은 분명한 범죄였다. 덮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냥 범죄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든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다.

여권에서는 "재판이 끝나봐야 유무죄가 판가름 난다"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3심까지 끝나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듯하다. 그렇다면 여권이 혹시라도 '손상'될까봐 '신주 단지처럼 섬기고 있는'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이 끝나봐야 유무죄가 판가름 난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게다가 국정원 사건은 새로운 범죄사실이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

'윗분들'이 그런 식으로 그 범죄를 감추고 덮어보려 한 데서 치사해진 이번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은 오히려 애당초부터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는 입장을 보이는 처신을 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그래서 많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대통령 말대로 "나는 모르는 일"이라 해도 국정원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대선개입 국면의 전환을 위해' 국가기밀을 까발린 '범죄'였다.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몰랐다 해도 문제고 알았다 해도 문제다. 그런데도 분명한 말이 없다.

국정원 개혁안을 국정원 스스로 만들라고 지시한 것도 떳떳한 일이 아니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민주주의를 도둑질한 사건이었고 국정원이 바로 그 '도둑'이었다. 도둑에게 '도난방지 대책'을 세우라 한 것은 난센스였다. 정당한 처신이 아니었다. 국가기밀인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빼내 대선 유세장에서 낭독하며 돌아다닌 자신의 선거대책 총괄본부장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적어도 송구스러워하거나 미안하게 느끼는 몸짓이라도 보이는 게 도리였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바른 처신이 아니었다. 한 때는 이 나라 정치판에서 '원칙'과 '신뢰'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던 게 '정치인 박근혜'의 이미지였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논쟁이 뜨겁던 때 박근혜 의원의 한마디는 천근의 무게로 이 나라 정치판을 평정했었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깨진다면 끝없는 뒤집기와 분열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게 일갈했다. 그러나 '박근혜 표' 원칙과 신뢰는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실상 풍비박산 난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 '약속 뒤집기'와 '불신조장'과 '이른바 언론'들과의 '정치 공작'까지 자리를 잡은 듯하다.

'미래로' 가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던 그녀는 지금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며 '과거로' 가고 있다. 자상하게 보고받고, 자상하게 수첩에 적고, 자상하게 지시하는 자상한 대통령이면서, 그래서 몰랐을 리 없는 일도 그녀는 태연히 몰랐다 하기도 하고, 직접 국민들을 향해 말하는 것까지 회피하고 있다. 정정당당한 바른 정치를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를 대통령 만들어 준 '경제민주화 공약'도 벌써 쓰레기통에 버렸고, 노인들을 상대로 한 기초연금 지급 약속도 어겨버렸다. 물론 이명박 씨가 재임기간 5년 동안 부자들에게 100조 원이나 되는 세금을 깎아준 게, 나라 형편을 '거덜 낸'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상전(上典)'인 부자 감세정책은 이 정권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형편에서 '20만 원 일괄지급' 대선공약을 할 때 박근혜 후보가 전후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 재원조달에 문제가 있다며 주변에서는 만류했으나 박 후보 홀로 밀어 붙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무상보육 공약도, 방과 후 학교 무상화 공약도 사실상 파기되거나 폐기되었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약속을 깨는 건 신뢰를 깨는 것이다. 신뢰를 깨는 것은 말 바꾸기를 했다는 소리다. 정치인이 말을 바꾸며 거짓말을 시작했다는 것은 유권자를 상대로 공작정치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회담장을 나오자마자 바로 '두 정상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의 비핵화 실현에 합의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는 얼핏 보면 그게 그것 같아도 내용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때맞춰 국내 대부분의 '이른바 언론'들은 방송과 신문 등 매체력을 총 동원해 '북한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바로 정치공작이다. 이 정치공작은 '박근혜 지지율 60%'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주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국정원 대선개입 때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외압을 폭로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엊그제 사전보고 없이 한 일간신문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또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게 아니라, 피해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었다는 내용의 뉴라이트 성향 역사교과서를 감수해줬던 대학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들 사건은 각각 성격이 다른 1회성이나 단발성 사건이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그의 체취가 진하게 느껴지는 일관성 있는 사건들이다. 국정 구석구석, 사회 구석구석에 '자상한' 대통령의 '납득하기 힘든' 의지가 스며들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최근 한 정치인이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 아닌 통치를 하려한다고 지적했다. 정곡을 찌른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를 해야 한다. 그 정치(政治)는 정치(正治)여야 한다. 통치는 박정희 씨나 하는 것이다. 바로 사치(私治)다. 사치의 유혹에 빠지면 정치는 치사해진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문제 처리과정이 저토록 치사해진 것도 다 사치의 유혹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에서 조차 영(令)이 서지 않는 작금의 사태도 그 원인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공안몰이의 선수요, 권모술수의 전문가인 유신 핵심 인물 등 이상한 사람들이 사적(私的)으로 모여 지금 거꾸로 가는 판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박근혜 식 정치가 본격적인 사치(私治)의 경지에 이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너무나도 많다. 문제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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