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소속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을 합의했다. 20여 년 전 김대중 정부에서 만들어져 노사 관계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던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를 확대 개편하여 노동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의제로 다루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발족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이미 고용보험에 가입한 분들을 대상으로 구직 활동을 지원하고, 구직 기간 동안의 생계를 보조하는 실업급여가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 임시직 등 정작 고용이 불안하여 고용보험 가입이 가장 절박한 분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실업급여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보험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고용보험은 그림의 떡이었다.
또 고용보험에 가입한 분들 중에서도 가입 기간이 짧아 사각지대에 놓이거나 고용보험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의 금액이 적어서 구직 기간의 삶을 이어가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실업급여인 구직급여는 고용보험이 적용된 사업장에서 이직일 이전 18개월간(기준기간) 피보험 단위기간이 통산하여 180일 이상이어야 지급받을 수 있는데, 일자리가 불안정한 저소득층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수급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180일이 되기 전에 자주 직장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질 낮은 일자리에 취업했다가 단기간 근무한 후 실직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근로 빈곤층의 경우 실업급여 수급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고용보험에 가입하고도 실질적인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중위소득 30% 미만의 저소득층이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비율은 9.4%에 불과했다. 현재의 소득보장 제도에서는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수급자가 아닌 실직자는 먼저 모든 소득이 끊기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전락하고 나서야 생계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도입하기로 합의한 실업부조 제도의 지원 대상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보호도 받지 못하던 분들이다. 소득 기준으로는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 가령, 2019년 4인 가구인 경우 기준 중위소득은 461만 3536원이므로 가구 소득이 이것의 50%인 약 230만 원 이하라면 소득 기준은 충족한 것이다. 지원 금액을 보면, 우선은 최저 생계보장 수준의 정액 급여로 6개월 동안 지급된다. 올해의 기준을 적용하면, 1인 가구의 경우 기준 중위소득이 170만7008원이므로 소득이 이것의 50%인 월 85만3504원 이하라면 한국형 실업부조의 수급 대상이 되며, 이때 기준 수급액은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의 30%인 51만2102원을 6개월간 지원받는다.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 도입의 의의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가능해진다.
첫째, 고용보험의 가입 대상이 되지 못했던 분들이 혜택을 받게 된다. 또 고용보험에 가입하고도 실업급여의 수급 대상이 되지 못하여 사각지대에 있던 실직자들에 대한 상시적 안전망이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의 도입으로 우선 직장을 구하지 못한 가난한 청년들과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들, 그리고 사회보험 가입이 어려운 처지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어머니가 팔을 다쳐 실직을 하니,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되던 수입이 끊기고, 더 이상 월세와 생활비가 감당할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팔을 다친 어머니가 갑자기 실업 상태가 되어도 영세 사업장 또는 비정규직 등의 이유로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가 도입되면 앞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지난 2015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세 자매가 "살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동반 자살한 사건의 경우에도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가 하나의 중요한 대책이 될 수 있다. 당시 자매 2명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실직한 상태였는데, 이들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어머니 명의의 2억3000만 원대 아파트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의 수급 대상자도 아니었다. 당시 경찰은 실직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자매의 동반 자살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에 경사노위에서 도입하기로 합의한 한국형 실업부조는 그처럼 생활 능력이 없는 구직자들에게 국가가 예산으로 실업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들처럼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거나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은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에 속하는 저소득층이 실업부조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득보장 제도는 직장에서 실직한 이후 고용보험 가입자도 아니고, 소득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재산이 거의 없다는 것까지 확인이 되어야 소득인정액 기준을 통과해서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극빈자들을 직접 발굴하고 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로 지정을 해 주거나 긴급복지 지원 대상으로 선정을 해 주어야 기초생계비가 지급되는 '사후적인 방식'이 아니라,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통해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면 바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전적인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즉, 실업부조 제도를 통해 사회 안전망의 효율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공공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가 되기 싫어 신청을 기피하는 분들도 소득보장의 제도적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당사자들의 자존감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의 도입으로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핵심 목표 중의 하나가 격차 사회의 해소다. 상대빈곤율이란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2017년도 상대빈곤율은 17.4%나 된다. 주요 선진 복지국가들의 상대빈곤율이 5∼10% 수준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8%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 17.4%는 너무 높다(이상이, 2019). 2018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74만 명(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4%)에 불과하므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즉 전체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는 상대빈곤자들은 소득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을 통해 상대빈곤율을 2017년 17.4%에서 2023년 15.5%로 낮추고, 2040년엔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는 이들 상대빈곤층에 한해 실업부조를 제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다. 최근의 통계청의 발표로 가장 낮은 소득계층인 1분위의 소득 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3.4%만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만으로는 1분위 계층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뚜렷하게 한계가 있다. 한국형 실업부조를 통해 나머지 14%에 속하는 분들(상대빈곤자)의 소득을 단계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분들을 돕자는 것을 넘어서는 정책이다. 즉,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경제 정책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너무나 심각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는 내수를 심각하게 위축시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조건에서 양극화를 극복하는 최우선적 과제가 바로 상대빈곤율을 줄이는 것인데, 실업부조 제도가 여기에 크게 기여할 것이고, 소득주도 성장을 통한 포용적 복지국가로 경제사회 체제를 이행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 전망과 과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15차례나 회의를 하면서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합의가 법제화되어 실제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난관들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이번 합의안은 주요 위원들의 불참으로 인한 의결 정족수 미달로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못했다. 이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하게 하려고 노동자 위원 중 계층별 대표인 청년유니온 위원장,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이 경사노위 본위원회에 불참하겠다고 사전 통보를 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에는 본 위원회 의결을 위해 노동자·사용자·정부를 대표하는 위원이 과반 이상 출석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노동자 위원은 한국노총·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자 4인으로 구성돼 있어서 계층별 대표 3인이 빠질 경우 의결 조건을 충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직 기간 동안의 소득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뿐만 아니라 노동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참여 주체들 중 정부가 예산에서 재원을 마련하므로 노동계나 사용자 측 모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 경사노위에서는 실업부조 도입을 합의하고도 다른 이유들로 인해 정작 의결은 하지 못했다.
사회안전망개선위의 합의는 경사노위 본위원회 의결을 거쳐 정부 안에 반영된다. 이미 경사노위에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등 정부위원들이 사회안전망개선위 논의 과정에 참여한 만큼 의결이 된다면, 정부 안으로 채택되어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는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산 투입을 동반하는 실업부조 제도가 국가의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조항을 통해 대상과 급여 수준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일부 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법 개정이 되어야 정부에서 내년 예산에 실업부조를 위한 고용보험기금에 정부 출연을 확대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더 이상 미루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실업을 당해야 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국회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이번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한 합의문'에는 2019년 실업급여 수준의 하한액을 6만120원으로 인상하고, 모성보호 급여사업에 대해 정부의 일반회계 예산으로 1400억 원을 지원하는 등 고용보험 제도를 내실화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직원 1인당 구직자 수가 선진국 대비 최고 30배에 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지원 인력을 확충하는 방안 등 고용서비스의 인프라 확충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실업부조 수급자에게는 구직기간 동안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 기회를 동시에 제공해야 실업부조 제도가 고용으로 이어지고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실업부조의 지원 대상을 기준 중위소득의 50%가 아니고 60%까지로 범위를 확대해야 필요한 분들이 제대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루 빨리 제도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지연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위원장의 말대로 "제도 도입 초반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안전하게 출발하자"는 취지에는 일단 동의한다. 하지만 제도 시행 후 수급자 상황과 소득보장의 사각지대를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점차 수급 대상을 확대해 나가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래 전부터 실업부조 제도의 도입을 통해 보편적 복지의 중요한 기둥인 보편적 소득보장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우리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번의 사회적 합의가 그런 제도를 구체화하는 첫 걸음이기에 적극 환영하고 지지한다. 노동계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의 도입에 대해 어렵게 합의를 도출한 것을 계기로 일련의 고용안전망 강화 정책들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하고 내실 있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