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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기대어 노후를 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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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기대어 노후를 보낼 수 없다 [연금개혁을 말한다 ⑧] 국민연금의 신화, 기금 고갈과 세대 간 형평
지난 2018년, 한국 사회를 달궜던 뜨거운 감자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미투 운동과 소득 불평등 악화, 그리고 국민연금 개혁일 것이다. 이중 국민연금은 작년뿐 만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국민연금 장기 재정 추계를 실시한 5년마다 한 번씩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대부분 매우 비판적인 논쟁거리로서 말이다.

과거 국민연금 개혁 전가의 보도, 기금고갈론과 후세대 갈취론

이처럼 재정계산 때마다 매번 벌어지는 국민연금 논쟁은 국민연금기금이 언제 고갈되는지와 보험료율을 얼마나 인상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대개 국민연금이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니 재정 안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있다. 여기에 덧붙여 초기 가입세대인 현세대에게 유리하지만, 후세대에게는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비판 내지 비난도 문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보험료율을 인상하여 제도적으로는 재정 안정을, 현세대의 추가 부담을 통해 세대 간에는 형평을 달성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만큼 국민연금의 기금고갈론과 후세대 갈취론은 국민연금 개혁에 있어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져 왔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이렇게 국민연금에 비판적일까?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첫째,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즉 내가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신화, 제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둘째, 국민연금은 기금이 고갈되면 우리의 자녀, 즉 후세대를 갈취해야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위 두 가지 이유에 대해 실제로 그런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기금고갈의 불안감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냐

먼저, 공적연금의 기금고갈과 이로 인한 제도 파산의 불안감은 한국만의 독자적인 문제는 아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독일 등 선진복지국가들도 경험했거나 경험할 것으로 전망되는 하나의 사건이다. 대표적으로 기금고갈론에 대한 공포가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은 우리보다 이른 2030년대 중반 공적연금(OASDI)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미국 의회 조사국은 기금소진과 관련하여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을 다룬 보고서, '사회보장: 만약 신탁기금이 고갈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Social Security: What Would Happen If the Trust Funds Ran Out?)'를 발간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는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실제 제도가 파산한다거나 급여 지급의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리고 기금 고갈이 되면, 급여 수준을 약 21~26%가량 감액하여 지급하거나, 보험료율을 3~4%p 인상함으로써 약속된 급여를 지급하여 제도를 유지할 것을 제언하였다.

즉, 기금고갈은 제도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세대 간 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하나의 신호인 것이다. 부모 세대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녀 세대의 부담을 줄여줄 것인지, 아니면 자녀 세대에게 좀 더 부담되겠지만 부모 세대의 노후를 유지시켜줄 것인지.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 세대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둘째, 후세대 갈취론은 연금제도에서의 세대 간 관계를 금융 거래를 한 계약 당사자 간 관계로 이해할 때 가능한 논리이다. 왜냐하면, 수익비가 1에 수렴할 때에만 수리적 차원에서 세대 간 형평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수익비란 낸 돈과 받는 돈의 비율을 의미한다. 낸 돈보다 받는 돈이 적으면 수익비는 1보다 적고, 낸 돈보다 받는 돈이 많으면 수익비는 1보다 크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1보다 크다는 것은 이미 주지된 사실이다. 이에 국민연금은 세대 간 형평에 맞지 않은, 수익비 1을 초과하는 세대가 이익을 보는 불공평한 제도라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연금제도는 수익비 논란이 아닌 세대 간 연대로 이해해야

하지만 연금제도와 같이 경제활동연령기의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제도는 수익비의 개념이 아닌 연대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 양육수당과 의무교육, 그리고 무상급식과 같은 교육 제도에 들어가는 비용에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형평을 거론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교육제도와 연금제도의 차이점은 부모세대가 자녀세대를 부양하는 것과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한, 모든 공적 소득보장제도의 기본 전제가 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득을 이전, 지원하는 제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연금제도가 경제활동연령기의 세대와 노령기의 세대의 세대 간 연대에 기반을 둔 제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민연금의 세대 간 형평을 따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물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의 개념이 약간 다르다. 기초연금이 기초적인,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못하고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수당제도라면,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연령기에 본인 소득의 일부를 당시 노인세대를 위해 기여한 이들에게 그에 합당한 수급권을 인정하고 법에서 규정한 급여를 지급하는 급여 제도이다. 즉, 기초연금이 필요에 따른 제도라면, 국민연금은 의무와 권리에 따른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도 최근, 국민연금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이 역진적이며, 세대 간 형평이 깨진 제도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를 통해 경제활동연령기에 노인 세대 부양이라는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권리로서 적정한 노후를 보장해주는 제도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출산 사회에서 자녀 용돈으로 노후생활은 불가능
또한, 앞으로 국민연금이 갖는 노인 세대 부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과거, 자녀를 3~4명씩 가졌던 다자녀 시대에는 노령으로 소득 활동이 불가능해지면 자녀들이 십시일반 용돈을 모아 부모를 부양함으로써 노후소득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저출산 기조가 유지되는 경우, 자녀의 용돈을 통한 노후 생활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경제활동연령대의 인구가 줄어드는 한편,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발생하는 노인부양비의 증가는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사회환경의 변화이다. 여기에서 국민연금의 가능한 선택지는 크게 2가지인데, 현재까지 한국 사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가지의 방향만을 추구해오고 있다. 지출 축소와 이로 인한 부담 감소이다. 그 결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70%에서 60%로, 그리고 60%에서 40%로 축소되었으며, 현재 소득대체율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과 용돈연금이라는 국민연금의 오명, 그리고 노후 빈곤에 대한 불안감을 얻게 되었다.

적정 수준의 연금은 미래 내수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

물론 노인부양비의 증가는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이나 의료비용 등에 있어서 당시 경제활동연령 인구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가지는 부수적인 경제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령, 2060년 한국의 노인 인구비중은 약 40% 수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최근 관찰되는 저출산 기조를 고려한다면 노인 인구 비중은 더 높아질 위험(?)도 있다.

이때 한국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 인구가 적정한 수준의 소비를 해주지 않는다면 내수 경제의 위축은 불 보듯 뻔할 것이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연금 소득을 통해 적정한 수준의 소비를 해준다면 내수 경제가 활성화되고, 경제 성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연금제도를 통해 노인 인구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내수 경제에 소비 지출로 사용될 것이고, 이는 당시 경제활동연령인구의 소득으로 환원되는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연금제도의 급여 지출은 미래 세대의 경제적 부담인 동시에 미래 한국 사회 경제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연금제도를 통한 세대 간 부양은 세대 간 형평의 논리로 평가하기보다는 세대 간 연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후세대 갈취론의 근거, 부과방식 비용률 제대로 이해해야

최근 국민연금을 비판하고자 후세대 갈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과방식 비용률을 무기로 내세운다. 그런데 부과방식 비용률이란 대체 무엇인가? 일례로, 2057년 기금이 고갈되면 부과방식 비용률이 30%에 다다르니, 후세대는 자기 월급의 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30%는 실제 후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자기 월급에서의 30%가 아니다. 국민연금에서의 부과방식 비용률은 해당 시점 특정 시점에서 발생한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 총액 대비 해당 시점에서 지급해야 하는 급여 총액의 비율인 것이다. 즉,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해당 시점에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이 100이라면 지급해야 하는 급여 총액은 30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과방식 비용률이 너무 과도한 부담이 되니 현시점에 미리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부과방식 비용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부과방식 비용률이 높아지는 원인은 국민연금의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이 지급해야 하는 급여의 증가 속도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즉, 보험료 납부자 수가 늘고 경제 성장이 잘 되어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이 더 많아진다면 부과방식 비용률은 낮아질 것이고, 보험료율 역시 더 낮아질 수 있다. 또는 경제성장의 결과 정부의 세수가 많아 일부를 국민연금에 투입할 수 있다면 보험료로 충당해야 하는 급여 지출분이 줄기 때문에 부과방식 비용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 즉, 부과방식 비용률의 과도한 부담 문제는 보험료율을 미리 올린다고만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회복하고,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미래 세대의 과도한 보험료 인상 압박을 완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협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연대의 장이지 누가 더 많은 희생을 할 것인지의 논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자식에 기대어 노후를 보낼 수 없다. 부동산이나 금융소득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낼 사람들도 극히 드물다. 다가오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증명된 방법은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 부양 체계를 확고히 뿌리 내리는 일이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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