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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한미동맹관계 정상화 없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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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한미동맹관계 정상화 없이 가능할까? [기고] 한미동맹 정상화가 '운전자론'보다 우선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로 청와대가 바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두 나라 입장을 절충하는 운전자로서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성공적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스페인 공관 피습 사건에 미국 정보기관이 연루된 사실을 비판하지만, 북미 대화의 여지는 남기되 적극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향후 전망은 여전히 깜깜하다.

비핵화와 관련해 제갈량의 수와 같은 절묘한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런 해법이 존재하는가? 오늘날과 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한 상황에서 남들이 몰랐던 해법을 제시할 깜짝 쇼가 가능할까? 실은 비핵화 관련 당사국들이 서로의 속내를 다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인내력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까지 드러난 구도를 보면 미국은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압박한다는 전략 아래 시간은 자기편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추진 등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지난해부터 취해 온 대미협상 전략을 상당 부분 손질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선 북미협상이 톱다운 방식이 지속될지 여부가 중요하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식 협상 스타일의 전모가 드러난 이상, 북한이 톱다운 방식에 계속 응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미국은 대북 제재 등 여러 개의 카드를 흔들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트럼프 협상 스타일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 톱다운 방식을 계속 고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리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보는 북한이 실무선에서 완벽한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북미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과 중국은 트럼프가 국내 문제 등으로 인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궁색한 입장이라는 쪽으로 분석한 것 같은데,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법이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의 특검 수사에서 일단 큰 위기를 모면한 이상, 한반도 비핵화가 내년 미국 대선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계산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비핵화 협상 '톱다운 방식' 지속 가능성 불투명

북미협상은 트럼프가 프로 장사꾼 수완을 발휘하는 장으로 비춰진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해 놓고 비핵화 협상에서는 북한이 받을 수 없는 일괄타결안을 내밀었다. 그런가 하면 '대북 제재로 북한 주민이 고통 받고 있다'고 하면서 톱다운 협상 방식에 올 인한 입장인데, 이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 내 입장을 약화시키는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교착 상태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미국 입장은 '북한 선 비핵화 후 대북 제재 해제'이고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다. 이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으로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 정부도 이에 대해 부정은 하지 않는 상태이다. 북한은 스페인 북한 대사관 피습 사건 등과 맞물려 아직은 내부 입장이 정리가 덜 된 것 같은 모습이다.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협상을 진행시키지 않고 있는데, 지난 20여 년 간 지속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을 달러 위폐 제조국으로 몰아가면서 판을 깨는 등 몰지각한 행동을 다수 저질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한반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미국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 책임론만 앞세우는 것도 향후 비핵화 협상을 가로막는 중대한 걸림돌이다. 특히 리비아 카다피, 이란 후세인을 상대로 미국이 저지른 추악한 행위로 인해 일괄타결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를 실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는 등 중요 국제적 갈등, 분쟁 국면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듯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캠프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대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강행, 이스라엘에 대한 부적절한 지원 등을 행하면서 자신의 맹목적 국가이기주의나 인종차별주의 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대북 협상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를 포함해 미국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소지는 차고 넘친다.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에서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현상유지가 미 국익에 최상이라는 결론에 따른 선택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진정 동북아의 평화를 원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상대방의 진정성을 손가락질하는 형식이 아니라 과학적 검증을 필수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소련, 러시아 핵감축 협상에서 실증되었듯이 미국이 감시위성과 육상 점검 등으로 상대방의 진실성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 역시 적절한 방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북한 상공에는 수십 개의 정찰 위성이 가동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보전은 가공할만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과학기술을 비핵화 검증용으로 사용할 경우 진정성이라는 애매한 논리가 파고들 공간은 사라질 것이다.

미국은 향후 독자적 제재 및 유엔의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할 여지가 있고 대북 전면전 카드도 옵션의 하나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휘두를 카드는 핵무기나 우주선 발사, 탄도미사일 실험 정도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실험은 중국, 러시아가 강력 반대하고 있다. 우주선 발사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그래도 유연한 입장이다. 그러나 유엔 대북 제재에는 우주선 발사도 포함되어 있어 중국과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대북 동정론의 입지는 매우 좁다.

미국의 한반도 전면전 카드가 비핵화 협상 정교화 망쳐

앞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합리적 방향으로 진행시킬만한 변수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제재 강화로 더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핵 또는 로켓실험을 한 두 번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국의 대북 견제가 강해지면서 미국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이 경우 미국의 대북 군사작전 카드도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동맹이 이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권리로 보장해 주고 있고,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을 미군이 장악하게끔 규정했다.

향후 수년 내에 전시작전지휘권이 한국군 장성에게 넘겨질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작권 전환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연계되어 있어서 그 시기가 언제일지 불투명하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부사령관을 맡는 주한미군사령관의 권한이 더 강력하리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이미 나온 바 있다. 참고로 미군은 해외 파병 역사에서 외국군의 지휘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최고의 전통으로 자랑해왔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면전 카드를 휘두를 수 있는 이유는 불평등한 한미동맹, 즉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이 조약이 미국으로 하여금 자국 국익만을 우선하고 한반도 당사국이나 주변 국가들의 이익을 외면하는 정책 수립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만약 한반도 전면전쟁이라는 카드를 대북 전략에서 배제한다면 훨씬 정교하고 현실적인 대북 정책이 추진될 개연성이 크다.

한미동맹으로 인해 미국은 한반도 전쟁을 수행할 경우 그에 필요한 미군사력의 남한 배치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만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다면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옵션 비중은 매우 작아질 것이다. 미국이 국제 깡패 소리를 듣는 패권주의를 지양하고 세계 최강 군사대국의 위상을 정당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는 절대 필요하다.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전제된다 해도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처럼 평등국가의 원칙을 지키면서 한국은 미국과 대등한 군사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최선책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전략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선 군사적으로 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응해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등 군사대응조치를 취했다고 밝혀 향후 강대국의 군사적 충돌 발생 시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은 이미 사드와 관련해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에 경제 보복을 취한 바 있으며, 아직도 관광통제 등을 풀지 않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 없이는 경제 강국이 된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게 되어 이런 구조적 취약성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 냉전 시대의 불평등한 내용으로 점철된 한미 군사동맹은 평화 시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국대통령이 한미동맹 정상화에 앞장서야

한미동맹 정상화 방법의 하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7조에 따라 한국 대통령이 폐기를 선언하고 개정 여부를 협상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력으로 세계 10위권 국가이고 해외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의 하나다. 한국전쟁 직후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맺은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21세기에도 금과옥조처럼 모시는 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는 점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언론 등은 한반도 명운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직결된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한국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미국도 제국주의적 입장을 버린 정상적인 국가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공동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는 사람들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념대결은 이미 냉전 종식과 함께 끝났다. 남북 전면전쟁은 상호파멸을 부른다는 점에서 피해야 한다면 유일한 답은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공존공영과 평화통일을 향한 노력이다. 여전히 이념대결이라는 과거의 유물에 매달려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종북몰이로 몰아 논의를 중단시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냉전시대에 수구세력에게 부당하고 비윤리적인 정치적 이익을 챙겨주면서 상상의 자유조차 억압하고 한반도 대치 구도에 대한 상식적인 문제제기를 저지해 온 국가보안법은 개폐되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가 없고 정보 통제가 심각한 북한이 독재국가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남북 대치 상태에서 그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어렵다. 지금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권 문제 등은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수구 보수도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대북 정책 수립을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집권 과정과 그 이후 드러낸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정치스타일로 보아 그가 언제 북미협상을 전면 백지화하고 한반도 상황을 최악으로 악화시킬지 알 수 없다. 한국 최대의 경제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가 한미동맹으로 인해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국가이기주의 경향이 심화되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느 상황에서든 크게 위태롭지 않게 평화통일이라는 대장정을 향해 순항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운전자론은 세치 혀만으로는 안 돼

한국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와 안전의 정착이라는 목표에 기여하기 위해 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지금은 한미동맹관계 정상화가 급선무다. 두 나라 동맹 관계를 국제적 상식으로 보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동시에 정상적인 남북교류협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의 족쇄를 풀어 없애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이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국보법 때문이다. 국보법은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를 친북행위로 단죄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시급히 해결했을 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운전자론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것’인데, 이는 세치 혀만으로 되지 않는다. 상당한 역량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에서 확실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 몸인지 여부가 구별되지 않는 현재의 한미동맹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 미래를 동시에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게끔 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드러나는 전횡에 대한 책임 일부는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제공하는 한국에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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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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