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3월 4일자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칼럼(☞바로 가기 : "핵폐기물, 답이 없다")에 대해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윤종일 교수가 <주간조선> 4월 1일자 기고(☞바로 가기 : )를 통해 진지한 비판을 해주었다.
지상을 통한 논쟁 제안에 기꺼이 화답하고자, 그리고 윤종일 교수의 오해 또는 나와의 중요한 의견 차이를 확인할 필요성에서 <프레시안>의 지면을 다시 빌고자 한다.
우선 윤종일 교수는 내가 "과학적 근거가 매우 희박한 비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답이 없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이런 지적은 절반은 틀리고 절반은 맞을 것 같다. 과학을 모르는 비전문가란 다카기 진자부로 선생은 아닐 테고 아마도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핵물리학 전공자가 아닐 공산이 크므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있어도, 사용후핵연료를 다루는 작품을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을 만큼 핵발전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갖추었으므로 비전문가라고 매도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자신의 전공 영역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심지어 핵발전과 방사능 관련 주제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이나 현장 경험이 없는 핵공학자들이 많이 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핵물리학과 공학의 시각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은 일깨워주고 있고, 나는 인류사적 시간을 초월하는 문제에 대한 역사철학적 관점과 감성을 핵발전을 찬성하는 이들도 조금쯤은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답이 없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라는 나의 판단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를 희망한다는 것도 밝힌다.
하지만 윤 교수가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반론을 제기한 것을 나는 기쁘게 읽었고 얼마간 배움을 얻었다. 적어도 윤 교수의 설명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핵 사이클이 완성되면 폐기물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적잖은 찬핵 논자들이나, 사용후핵연료는 처음 300년간 대부분의 방사능이 소멸되어 손으로 만질 수준이 된다고 주장하는 정범진 교수의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윤 교수는 플루토늄을 포함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생명체가 접근할 수 없는 외진 곳을 찾아서 몇 번의 반감기가 지나는 충분한 시간 동안 격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중요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분이 공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두 가지 논거를 가지고 설명한다. 하나는 사용후핵연료의 위해도는 방사능 총량이 아니라 방사성 핵종의 지하수 용해도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싸는 구리로 된 2차 방벽과 완충재의 3차 방벽 그리고 4차 방벽의 역할을 하는 천연암반 덕분에 유출과 용해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에 따르면 설령 방사성핵종이 녹더라도 지하수를 통해 1미터 정도를 이동하는 데만 수십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방사능 유출률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아프리카 가봉 오클로의 천연암반 사례를 통해 자연 상태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발견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자연이 스스로 행하는 방사능 차단을 인간이 첨단과학으로 건설하는 더 깊고 견고한 시설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 교수는 "예기치 않은 변화조차도 고려하는 게 과학"이며 대중의 막연한 불안감을 이용하여 근거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전문가들의 과학적 의견보다 비전문가들의 확증편향적 주장을 더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윤 교수가 오해한 것 중 하나는 내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 미래의 예기치 않은 변화를 감당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한 것은 그저 심지층 처분시설의 물리적인 건전성과 안전성 유지의 문제를 말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처분시설 관리를 책임져야 할 국가와 정부가 앞으로 십만년이 아니라 수백년 사이에 전쟁이나 정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해도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적절한 예산과 기술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지 않아도 지진이나 기후격변뿐 아니라 도난이나 인위적 도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예기치 않은 변화조차도 과학기술은 대비해야 하고 10만년 동안 견딜 네 겹에 걸친 방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한 것은 윤 교수다.
윤 교수의 말대로 사용후핵연료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고, 이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공학적인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윤 교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돌려드린다. 나는 사용후핵연료가 공학 이론적으로 격리 처분될 수 있고 충분한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그의 설명에 상당히 동의할 수 있다.
과거 방폐장 갈등이 한창일 때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이 관악산 암반에 처분장을 둘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의 진정성까지도 어느 정도 신뢰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 결정에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가?
윤 교수의 설명과 같이 4차 방벽까지 갖춘 부지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한국에서 매년 750톤 이상 새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능히 담을 수 있는 크기인가? 또 관악산이 아니라 어느 벽촌 산간이나 외진 어촌이라 하더라도, 이제까지 누적된 것들 말고도 매년 그만큼의 양을 엄청난 부피와 무게의 금속제 보관용기에 담아 처분장으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 공학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반발과 갈등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질문, 설계와 시공 뿐 아니라 이송과 관리에 얼마나 돈이 들고 그 돈은 누가 어떻게 부담할까? 왜 그 계산은 아무도 내놓지 않는가? 공학의 영역이 아니어서 인가?
나는 찬핵 진영이 '블랙아웃'과 '전기료 폭탄'이라는 괴담에 의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만큼, 핵발전에 반대하는 이들도 비과학적인 괴담에 사로잡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가 괴담이 아니기 위해서라면 처분과 관련한 공학적, 사회적, 경제적인 여러 측면들을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너무 큰 걱정이지만 윤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답을 찾을 "의지가 없으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질타한다.
의지 박약의 문제일까? 로키마운틴 연구소의 에머리 로빈스는 지금부터 한참 전인 1976년에 <에너지 전략: 선택되지 않은 길(Energy Strategy: The Road Not Taken?)>이라는 저술에서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중심의 '경성 에너지'와는 다른 재생가능에너지와 효율 중심의 '연성 에너지'의 경로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말했다. 4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로빈스의 생각들은 많은 부분 상식이 되었고, 그의 글 제목대로 나는 다른 에너지의 길을 찾을 의지를 요청하고 싶다. 그러나 그 길은 더 이상 사용후핵연료 발생을 늘려서는 더욱 요원해진다는 판단을 공유하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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