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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우리가 빼앗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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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우리가 빼앗긴 이름 [기고] 언제까지 우린 '근로자'일까
허상의 이미지가 실체를 대체하는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을 적용하자면, 본질을 땅에 파묻고 엉터리 현실을 만들어내는 대표적 도구가 '가짜 이름 붙이기'다. 공자가 논어편을 통해 강조한 정명(正名)도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즉 세상을 둘러싼 사물, 사람, 사건, 실체에 대하여 올바른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참된 인식과 행동이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타락한 권력이 가짜 이름 붙이기를 즐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어느나라 거대 정보기관은, 작전 수행 시 사람 죽이는 것을 “장애물 제거”라는 가치판단이 말끔히 소독된 단어로 부른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반 정명(反 正名)'이 일상화되고 구조화된 사회다. 이곳에서 기득권 영속을 목표로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한 '이름'들이 한 두가지일까. 하지만 그 같은 악행이 가장 성행하는 곳은 역시 '노동 현실' 영역이다.

Labour란 단어의 번역은 당연히 '노동'이다. 마찬가지로 육체와 정신을 팔아 자신과 가족의 삶을 건사하는 직업에 대한 가장 타당하고 객관적인 명칭은 '노동자'다.

일제시대 때부터 쓰여지던 이 단어가 듣도 보도 못한 '근로자'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어 공문서나 언론에 등장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1973년 3월 30일부터라고 이해된다. 이 날 유신정권에 의해 최초로 '근로자의 날'이 선포된 것이다.

조지 오웰이 갈파한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고, 언어가 생각을 타락시킨다”라고 말한 바로 그 지점이다.

박정희가 유신 사법 쿠테타를 감행한 것이 그 5개월 전인 1972년 10월이다. 그러니 이러한 '이름 바꾸기'가 어떤 의도로 실행된 것인가 익히 짐작이 된다. 1970년 가을 전태일의 분신을 시발점으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노동운동을 억누르고 왜곡시키지 않고는 유신체제의 유지 자체가 쉽지 않다 판단했던 것이다.

28년의 집권기간 동안 박정희가 저지른 행악이 하나둘이겠는가. 하지만 나는 관료, 언론,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감행한 노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공격이 선두에 있다 믿는다. 그 대표적 사례가 '근로자의 날' 제정과 '근로자' 명칭 공고화라고 생각한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전생에 걸친 자부심과 주체성을 압살하기 위해 저지른 교활하고 광범위한 '반 정명'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말을 무기로 하는”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대한 지난 수십년간의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부정적 인식 구축과 사회적 의제 설정. 나는 이 행태야말로 1인당 GDP 3만불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한민국을 OECD 최하의 노동 후진국에 위치시키는 주범이라 확신한다. 노동의 의미와 그 구현체로서 노동운동에 대한 그 같은 광범위한 공격적 해게모니가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건강성을 크게 해치고 있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근로자(勤勞者)'라는 명칭 자체가 주체를 타자화시키고 수동화시키는 뚜렷한 악의를 지니고 있다. '노동하는 인간'을 종속적으로 대상화하는 극단적 자본중심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노동자는 "고용주에 대하여 근면성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임금을 하사받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압도적 다수는 오히려 정 반대의 지점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고 형성해가는 근원적 동력으로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5월 1일 노동절(May Day)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하루를 쉰다. 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오늘은 여전히 '근로자의 날'이다.

선거법이 중요하고 공수처 설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 땅의 일그러진 경제사회문화적 관행을 개선시키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야 할 또다른 우선적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박정희에게 빼앗긴 '노동절' 명칭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정명이 정부여당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추진될 시점이 왔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이름붙이기'에서부터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올바른 행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내년 5월 1일을 국가 제정 '노동절'로 기념하기를 빌며, 다시 한번 제 129회 노동절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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