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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자라게 하는 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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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이를 자라게 하는 힘: 믿음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44> 12.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경청해 주어야
아들에게 연락 없는 지 2주가 지났음을 확인한 순간
걱정이 되었고, 걱정을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아내는 아무 일 없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면서
전화하지 않는 아들을 두둔하고 나의 믿음 부족을 나무랐다.
부리나케 전화하였는데 받지 않아서 더욱 초조해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궁금하고 걱정되어서 전화했다는 말에
어린 아이 아니니까 걱정 말라며
오히려 나의 근심 걱정을 나무랐다.
자식을 향한 믿음은 아내가 나보다 훨씬 강하여서
아내는 아들딸의 말이나 행동에 의심을 가져본 적 없다.
"거짓말 하지 마라"는 말 해 본 적 없을 뿐 아니라
"정말이야?"라며 아들딸 이야기에 고개 갸우뚱해본 적도 없다.
그 믿음은 남편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나의 말과 행동에 조금치도 의문 품어보지 않았고
퇴근이 늦을지라도
누구랑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캐 물은 적 없다.
아들딸이 거짓말이나 거짓 행동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믿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런대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이 말을 사랑의 중요성을 일컫는 말로 해석하지만 나는
믿음 소망 사랑 모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해석해 보았다.
믿음 소망 사랑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매우 중요한데 굳이
우열을 가려야 한다면 사랑이 최고라고.
믿음과 소망도 사랑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가치라 해석하였다.
믿음이 배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어찌 없겠으며
믿었다가 뒤통수 맞고 발등을 찍히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후회할 때 후회하고 손해 볼 때 손해 보더라도
믿음은 너와 나 모두에게 행복 주는 일인 것 분명하지 아니한가?
스포츠 기사에서
"믿음이 만들어낸 부활"
"강한 믿음이 원동력이 되었다"
"믿음에 응답한 아무개"
라는 기사 자주 만나지 않았는가?

친구들끼리 놀았다.
학원도 학습지도 없었고 과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방학 내내 교과서나 문제집 한 페이지 쳐다보지 않았었다.
나뭇가지, 돌멩이, 흙, 모래, 병뚜껑 가지고
땅바닥에 금 그어가면서 놀았다.
누군가의 지도나 관리도 받지 않았고
친구 형 언니 동생들과 어울려 열심히 신나게 놀았다.
집안 청소와 부모님 심부름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논밭에 나가 농사를 거드는 일도 절반의 의무였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무럭무럭 성장하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 성장해주리라 믿어주었고
아이들은 그 믿음에 충실하게 보답해 주었다.

믿음이 행복이다. 믿어야 행복할 수 있다.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고속버스 탈 것이고
어떻게 음식점에서 음식 사 먹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은행에 돈 맡기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는가?
믿음이 있기에 평안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믿음이 없다면 불안과 공포 속에
불행한 삶 살아야 하는 것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믿음이 행복이다. 자녀를 믿어야 한다.
인간은 믿음에 보답하는 동물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도 중요한데
요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 부족하여
시도해 보지도 않고 할 수 없노라 중얼거리면서 물러나 버린다.
스스로 할 기회 가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대신해 주어
아이들 스스로 할 기회와 능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뭔가 시도해볼 기회를 빼앗아버린, 그래서
자신감을 상실하도록 만들어 버린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마마보이 비웃으면서 마마보이 만드는데 앞장서는 부모들의 공통점은
기다릴 줄 모른다는 점이다.
의견을 물으면 엄마한테 물어보고 답해주겠다는 아이들,
시키는 일만 겨우 할뿐 스스로 알아서 하지 못하는 아이들,
스스로 해 보지 않아서 자신감 잃어버린 아이들,
생각할 기회 주지 않아서 창의력 부족한 아이들,
자신이 결정하지 않아서 책임감 없는 아이들.
슬픔과 안타까움을 주는 이런 아이들은
기회 주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은 어른들의 작품이다.
아이를 잘 기르려는 부모님의 마음에 돌 던지고 싶지 않지만
기다릴 줄 모르고 빨리 키우겠노라는 욕심에는
작은 돌멩이라도 던져야 할 것 같다.

씨앗을 뿌려놓고 싹이 돋아나자
그 싹을 빨리 자라게 하려는 욕심으로
그 싹들을 하나하나 뽑아 올려놓았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벼가 잘 자라도록 뽑아 올려주었더니 매우 피곤하다"
라고 말하였단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밭에 가 보았더니
싹이 모두 말라 죽어 있었더란다.
싹을 빨리 자라게 하려 했던 농부의 욕심이 결과적으로는
식물을 말라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뽑을 알(揠)' '싹 묘(苗)' '도울 조(助)' '길 장(長)'을 써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 한다.

세상일에도 기다림이 정답인 경우 많지만
교육에서는 더더욱 기다림이 최고의 방법이다.
성선설이 옳은지 성악설이 옳은지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지만
믿고 기다리는 자세가 아이들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임이 분명하다.
퇴직하신 보건 선생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연치유력이 있다 말씀하시고
시간이 치료해주는 것이라 강조하시면서.
작은 상처에는 연고 바르지 말라 말씀하시곤 하셨다.

작은 일에, 별거 아닌 일에
걱정하고 호들갑 떠는 부모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 걱정과 호들갑이 독이 된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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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호
자기 주도 학습과 한자 공부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 <프레시안>에 '학원 절대로 가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공부가 뭐라고>, <자기 주도 학습이 1등급을 만든다>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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