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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일주일, 지구행성이 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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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일주일, 지구행성이 연대했다 [초록發光] 국제기후파업을 돌아보며
역사상 가장 큰 기후운동이 벌어졌다. 기후의 시대가 온 듯하다. 9월 20일부터 27일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한 국제기후파업 주간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고, 향후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기후 레짐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는 작업이 분주하다. 나 역시 미국 뉴욕과 캐나다 토론토의 기후파업에 참여해 관찰했던 단상을 기록해본다.

기후정의를 위한 공동행동의 잠재력에 관심이 쏠리면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의 외교 실패가 더욱 도드라진다. 9월 23일 열린 정상회의의 주제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경주,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경주"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 설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온실가스 농도와 평균 온도가 오르는 위로의 경주(race to the top)를 펼쳤다. 녹색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은, 화려한 말잔치 속에서 아래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로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유엔과 각국 정상은 기후 비상 사태를 선언할 의지도, 아직까지 이를 극복할 능력도 없었다.

2019년 정상회의가 엔드게임이라 생각한 이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청소년 기후운동이 큰 지지를 받고 정치 의제로 부상하고 있었지만, 2030년과 2050년의 목표와 계획에 대한 유엔의 취합과 평가는 2020년이니 설사 다른 패를 들고 있더라도 미리 깔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 9월 20일 뉴욕 기후파업 행진 모습.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파리기후협정(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채택)에 내재한 양면적 속성 때문이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감축목표를 수립해 감축계획을 제출하는 상향식 방식은 지금 국면에서는 퇴행적이다. 파국적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기후 안정화 수준을 명확히 합의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을 각국에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신 기후 체제의 탈 집중화된 방식은 공유지의 비극과 무임승차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

다행인 것은 아래로부터의 기후운동이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기후정치의 양면 게임에 일정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국을 압박하고 국가 경쟁을 촉진하고 유엔의 조정을 강조한다. 다중심적 기후운동으로의 변화는 글로컬과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 2000년 중반부터 기후정의 담론과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발리-코펜하겐-코차밤바-리우(2007~2012년)와 뉴욕-파리(2014~2015년)를 거친 다음, 우리는 지구 행성적 링크(2019~)의 구체적 양상을 확인하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 반전 운동과 환경정의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던 기후정의는 이제 단일 이슈에서 복합 이슈로, 부문 운동에서 전체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제공동행동의 날과 같은 조직화는 새로운 작품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주로 한 점에 집중하고 동시적 구성은 약해서 선을 만들기 어려웠다. 최근에는 마치 물리적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의 연결망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사회적 에너지의 선이 뚜렷하게 형성된다. 많은 언론 매체가 보도한 것처럼,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국제 기후파업은 일단 성공적이다.

▲ 9월 27일 토론토 기후파업 행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지난달 20일과 27일의 기후파업 모두, 부모와 노동자의 참여도 많았지만 청소년과 학생이 주도했다.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제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와 세계가 인정하지 않는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주체들이 타자에서 자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래가 없는 세상에 투표권이 없는 이들이 거리에 나온 것이다. 다양하게 표현된 구호와 주장에는 미래와 희망, 그리고 분노와 비판이 섞여 있었다. 최근 세대 간 정의가 강조되는 기후운동의 대중화와 세력화라는 측면에서 분명 과거와 질적, 양적 차이를 보이지만, 기후정의 요구사항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업과 멸종의 서사에 담긴 정치적, 정책적 메시지는 간명하다. 기후과학을 바탕으로 화석연료와 핵에너지 복합체에 맞서 사회-생태 시스템을 개조하자는 것이다. 하나뿐인 지구를 구해야 한다, 죽은 행성에 일자리는 없다, 우리 미래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등의 진술은 기후정의의 이상주의와 교차한다. 그리고 기후투쟁의 용광로에서 현실주의와 만난다. 아무래도 규제란 표현으로는 부족할 텐데, 화석연료 자체를 (단계적) 금지 및 폐지하는 모든 해체적 구상으로 수렴된다.

이런 불안정화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재구축 논리와 공명한다. 급진과 개혁, 그리고 성장과 탈성장 사이의 대안으로 재부상한 그린뉴딜도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정책 테이블에서도 화두다. 뉴딜 모델에 대한 평가가 경제 부흥과 사회 복지 중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그린뉴딜 또한 그린과 뉴딜을 어떻게 조합하느냐, 그리고 체제 전환적 계기를 얼마나 고려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경로를 두고 다툰다. 그럼에도 당분간 그린뉴딜과 이와 유사한 모델들이 각축하면서 주류적 흐름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뒤흔든 지난 7일을 돌아보고 그 전후 맥락을 따지다 보니, 결국 대항 헤게모니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온건한 기후파업이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면, 블로카디아(blockadia, 채광 및 가스 채취 저항운동)와 멸종저항의 전술은 한 사람의 열 걸음에 가깝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형태의 직접행동, 즉 고탄소사회에 저항하는 사보타주가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축과 적응, 그리고 전환을 지향하는 정책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특히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주장과 방법이 급진적이라고? 맞다. 2013년부터 낭비한 세월과 2030년까지 남은 10여년이라는 절박한 심정이 급진적인 변화의 불가피성을 낳았다. 12월이면 칠레 산티아고에서 유엔 기후총회가 열린다. 일보 전진이라도 하려면 신기후체제 협상에 진척이 있어야겠지만, 절차적, 분배적, 전환적 차원에서 기후 레짐의 한계와 모순이 완화되는 것은 현 상태에서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경제와 무역에 관한 새로운 규범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한편으로는 온도상승 제한 노력의 효과가 낮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부정의가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기후파업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기후정의를 지구행성적으로 묶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후운동의 역사적 전개와 현재적 조건을 함께 검토하면, 기후 레짐의 의의를 보다 풍부하게 해석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기후정의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정치한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기후정의 촛불을 바란다면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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