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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막걸리 보안법' 재심 사건, 38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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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막걸리 보안법' 재심 사건, 38년 만에 무죄 [언론 네트워크] 故 홍제화 씨, 고문 휴유증으로 정신분열 앓다 생 마감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에 걸려 경찰에 모진 고문을 당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주 홍제화씨 사건에 대해 법원이 38년 만에 국가 공권력의 잘못을 인정했다.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노현미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등의 혐의로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은 故 홍제화(1953.5-2018.7)씨 재심사건에 대해 12일 무죄를 선고했다.

▲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에 걸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고 홍제화씨의 1981년 7월9일 항소심 선고 판결문. 당시 법원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홍씨에 대해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 했다. ⓒ제주의소리(김정호)

홍씨의 억울한 사연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절을 거쳐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이 시작되던 198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시 조천읍 출신인 홍씨는 1981년 7월27일 밤 11시30분쯤 동네 청암식당에서 지인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평소처럼 정치 이야기를 했다. 그게 악몽의 시작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넉 달이나 지난 그해 11월24일 아침 8시, 동 트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제주경찰서 형사들이 집에 들이닥쳐 느닷없이 경찰서로 끌고갔다. 이틀 넘게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석방됐지만 다시 이틀만에 경찰은 홍씨를 또 연행했다.

경찰조서에는 홍씨가 "김일성 원수가 정치를 잘한다. 역시 영웅은 영웅이다. 전두환은 어려서 정치하기는 틀렸다. 박정희가 뭐를 잘했다고 영웅이라고 하느냐"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순박했던 마을 청년이 순식간에 북한을 찬양하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선동자로 조작됐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 결혼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신혼 시절이었다.

경찰은 소위 막걸리 보안법으로 불렸던 국가보안법 제7조제1항을 적용해 홍씨를 검찰에 넘겼다. 막걸리 보안법은 술에 취해 한 말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처벌했던 당시 행위를 비꼬는 말이다.

홍씨는 1982년 7월9일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7월27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돼 그해 8월13일 만기출소 했지만 갖은 고문으로 후유증을 앓았다.

집으로 돌아온 홍씨는 이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수재 소리를 들었던 홍씨가 경찰의 고문을 받은 후 결국 정신지체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통원과 입원치료를 반복해야 했다. 화목했던 가정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홍씨의 가족들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2000년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위원회에 재소를 했지만 민주화 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떻게든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었다.

2006년 10월에는 진실·화해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4년에 걸친 조사 끝에 위원회는 2010년 7월6일 홍제화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 의혹사건의 불법 구금을 인정했다.

가족들은 이를 근거로 2017년 9월22일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정작 홍씨는 이듬해인 2018년 7월5일 정신분열 증세로 사경을 헤매다 끝내 생을 마감했다. 향년 76세였다.

당사자가 고인이 되면서 재심청구 절차는 자동 종료됐다. 이에 아내 오모(68)씨는 2018년 12월7일 재심 청구서를 다시 신청했다. 끈질긴 정성이 통했을까. 법원은 두 달 만인 올해 2월21일에 드디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38년 만인 2019년 12월12일 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이날 재판에서 당시 경찰의 불법적인 구금을 모두 인정했다. 1981년 11월 두 차례에 걸친 강제 연행도 당시 형사소송법상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막걸리를 마시면서 지인들과 주고받은 김일성과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이야기도 추상적인 발언일 뿐, 국가보안법상 국가존립을 위협하거나 북한을 찬양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당시 연행과 구금은 영장주의에 위배되고 피고인에 대한 방어권 보장도 없었다"며 "이를 통해 작성된 경찰조서는 적법하지 않고 증거능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이 끝난 후 故 홍제화씨의 아내 오씨는 "무죄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안타깝다"며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국가가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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