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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돈을 벌고 쓰는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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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돈을 벌고 쓰는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사회 책임 혁명] 주주자본주의의 황혼, 사회적 책임 자본주의 시대 도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부정하거나 축소하고자 하는 분들이 자주 소환하는 경제학자가 있다. 경쟁적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열혈 신봉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와 더불어 20세기 경제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는 경제학자다.

시카고 경제학파를 이끈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관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증대(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글이다.

프리드먼은, 이 기고문을 통해 기업이 사회적 양심(social conscience)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고용 창출, 차별 철폐, 오염 방지 그리고 현대 개혁가들의 캐치프레이즈와 관련된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업가들을 겨냥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유사회(free society)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지적인 힘에 자신도 모르게 꼭두각시가 되어 있다고 우선 비판한다.

이후 전개하는 그의 논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책임은 개인적 차원에서 행해져야 하며 기업에게는 그러한 의무가 없다. 주주에 의해 고용된 전문경영인이 사회적 책임을 위해 자원을 투입한다면 이는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주주-대리인(principal-agent problem) 문제가 발생시킨다. 도덕적 해이를 낳고 회사의 생존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전문경영인은 회사를 운영하는 전문가이지 다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의 글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에서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자원을 사용하고 계획된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속이거나 기망하지 않고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매거건 기고 글은 프리드먼이 1962년에 출간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에서 이미 주장했던 내용이다. 프리드먼은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 그리고 이를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담론을 이론적으로 공고히 함으로써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정착시킨 이데올로그(ideologue)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기업은 주주를 위해 존재하며, 오로지 주주들에게만 책임을 진다.

밀턴 프리드먼, BRT, 그리고 사회적 책임 이니셔티브들


그러나 프리드먼의 시대는 바야흐로 황혼(黃昏)의 시간대로 기울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19일 미국 경영자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 이하 BRT)'의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 발표는 그 시그널 중 하나라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1990년대 말부터 국제기구나 각종 글로벌 조직들이 주도한 기업과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다양한 이니셔티브들의 이슈들이 꾸준히, 최근 들어서는 눈에 띄게 제도화 혹은 법제화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RT는 미국 상공회의소와 전미제조업협회와 더불어 미국 기업의 이익을 강력하게 대변해 온 최대 경영자단체 중 하나다. 우리나라 전경련과 유사하다. BRT는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주요 기업의 CEO를 독점적으로 대표"하며 "이 CEO 멤버는 1500만 명 이상의 직원과 연간 매출 7조 달러나 넘는 기업을 이끌고 있다"고 홍보한다.

BRT는 성명서를 통해 고객에 가치 제공(고객의 기대 충족), 종업원에 대한 투자(공정한 보상, 훈련과 교육,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존엄과 존중), 공급업체와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좋은 파트너로서 봉사), 지역사회 지원(지역사회 사람 존중, 사업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한 관행을 채택해 환경 보호), 주주를 위한 장기적인 가치 창출(투명성과 주주의 효과적인 참여에 전념)을 약속했다. 성명서는 "이해관계자자들 각각이 필수적이다"라며 "회사와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의 미래 성공을 위해 이해관계자들 모두에게 가치 제공을 약속한다"고 천명했다.

주목할 점은 기업 활동에 '주주'만이 아닌 고객,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주주'를 모든 이해관계자들 중 가장 후순위로 언급했고, 주주 가치도 단기(short-term)가 아닌 '장기적인 가치'(long-term value)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는 점이다. 1972년 설립된 BRT는 1978년 이래 기업의 목적에 관한 언어(language)를 포함해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정기적으로 발표해 왔고, 1997년 이래로 발표한 문서의 버전마다 기업은 원칙적으로 주주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명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성명서는,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주주자본주의의 종언'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선언'이다. BRT를 이를 "기업의 역할에 관한 원칙의 '현대화'(modernizing)"라고 표현한다. 애플의 팀쿡,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제이피 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블래록의 래리 핑크, 제너럴 모터스의 메리 베라 등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 경영자 181명(2020.1.7 현재 184명이 서명. 총 회원은 188명)이 이 성명에 서명했다.

BRT의 성명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수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을 더욱 강하게 규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회적·정치적 예봉을 꺾기 위한 선제적 조치일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미국 사회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적 불평등과 불공정 거래 등이 주요 이슈로 부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상원 의원이 발의한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Accountable Capitalism Act)'은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법안이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공부하거나 종사하거나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BRT의 성명 내용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대기업들이 주로 발간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보고서 혹은 사회책임 보고서만 펼쳐 봐도 이는 당장 확인이 된다. 이 보고서는 모두 주주만이 아닌 자사의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정성의 문제는 별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특히 주주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유력한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의 집단 서명으로 나왔다는 점은 의미 있는 시그널이다.

필자는 이를 패러다임 전환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해관계자 논리에 입각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주장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가령, 에드워드 프리먼(R. Edward Freeman)은 경영자의 의무를 솔로몬 왕에 비유하며 "상호 충돌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주주 또한 여러 이해관계자의 하나일 뿐 우선권을 가지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주 자본주의 목소리가 높은 시대에 이 주장은 그저 미약했을 뿐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는 '배제적 성장(exclusive growth)'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며 실업과 소득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의 골과 간극은 더욱 깊어지고 벌어져 비상한 조치 없이는 이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버렸다. 전 지구적 생태계를 위협하는 기후위기(climate crisis)는 더욱 심각해 졌으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위기도 심화되었다. 이는 주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세계화가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초래한 어둠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은 가야 할 길이었고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그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확산되었다. 국제사회는 1990년대 말부터 기업(혹은 조직)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다양한 글로벌 이니셔티브(initiative)들이 내놓았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인 ISO26000, 책임투자원칙(PRI), CDP(구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NGFS(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 녹색금융네트워크),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은 가장 먼저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반응하고 또 이를 적극 주도해 왔다. 이니셔티브들의 대부분은 기업과 금융기관에 맞추어져 있다. 세계화와 더불어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 200대 경제단위 중 4분의 3인 153개가 기업(2015년 말 기준)이라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사회적 책임의 제도화·의무화 경향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다양한 이니셔티브의 출현과 고도화(高度化)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이윤 추구 방식이 기존과는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기업이 돈을 벌고 쓰는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기존 주주자본주의에 기초한 기업 경영방식으로는 이제 돈을 벌기 힘든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국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제도화‧법제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금은 그 패러다임의 전환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전통적으로 '자발성'에 의지해 왔다. 하지만 자발성에 대한 기대가 줄고 대략 6년 전부터는 법과 제도로 촉진하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형성되면서 일부는 이미 현실화되었다. PRI와 MSCI가 발표한 '책임투자 규제에 대한 글로벌 가이드(Global Guide to Responsible Investment Regulation)'에 따르면, 책임투자와 관련한 정책을 연기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고려, 자산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의 ESG 정보공개라는 3가지로 분류했을 때, 이러한 규제의 절반 이상이 2013년~2016년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또 GDP Top 50 국가 중 이란만 ESG 요소와 투자와 관련한 정책이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KPMG, GRI, UNEP, 아프리카 기업지배구조센터가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 'Carrots & Sticks(당근과 채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ESG 정보공개 의무 제도는 2013년 44개 나라 130개였으나 2016년에는 64개 나라 248개로 증가했다. 기업의 의사결정과 비즈니스 활동이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즉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그만큼 공공성을 더 요구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업의 비재무적인 정보(non-financial Information)를 의미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 공시 의무화는 이제 기본이 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종업원 500인 이상 기업의 ESG 공시 의무를 2014년 법제화해 2018년부터 적용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관련한 상세한 정보공개 의무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즉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가 대표적이다. TCFD는 기후위기(climate crisis)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높아지면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금융안정위원회(FSB)에 의뢰해 현재 권고안으로 만들어졌다. 이 권고안은 하지만 머지않아 의무화될 전망이다. 주요 국가의 금융감독기관(우리나라로 치자면 금융위원회, 금감원, 한국은행)들이 중심이 된 녹색금융네트워크, 즉 NGFS(Network of Greening Financial System)는 TCFD의 의무화를 더욱 빠르게 진척시킬 중요한 이니셔티브다. 지난해 4월 NGFS가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관이 환경‧기후 이슈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발표한 6개 행동 권고안의 첫 번째는, 기후위기 리스크를 금융안정성 모니터링에 반영하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과 기업은 기후위기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지배 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 및 목표 등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프랑스는 TCFD 격인 에너지전환법을 제정해 연기금, 금융기관, 기업에 이를 의무화했다.

자본시장에서도 사회적 책임은 두드러지는 흐름이다. 투자대상의 ESG를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연기금의 ESG 고려를 제도화하는 추세와 상관있다. 영국은 연금법을 개정해 2000년 7월 3일 시행했다. 연금펀드를 운용하는 모든 주체들이 투자자산의 선택·보유·매각과 관련해 사회적‧환경적‧윤리적 요소를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는지와, 의결권을 포함해 주주로서의 권리행사와 관련해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라고 의무화한 법이다. 그 무렵, 독일·스웨덴·오스트리아·노르웨이·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 등도 영국과 유사한 법을 도입했다. 이는 2018년 기준으로 유럽이 전 세계 사회책임투자 규모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전 세계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2016년 22조 8900억 달러에서 2018년 30조 683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14년 17조 6820억 달러와 비교하면 4년 사이에 73.5%나 늘었다. 일본은 2014년 7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8년 2조 180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세계 1위 규모의 연기금으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격인 GPIF의 사회책임투자 장려정책과 정부의 지지 덕분이다. 이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사회책임투자는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도 확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로서의 책임'을 강조한다. 보험, 은행, 증권, 자산운용사, 연기금들이 운용하고 있는 돈은 금융기관이 아닌 고객 혹은 가입자가 주인이다. 금융기관은 이 돈을 선량하게 관리해야 할 '수탁자의 책무(fiduciary duty)'를 가지는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바로 이러한 책무를 다하기 위한 행동지침이다. 2010년 영국이 최초로 도입한 이래 현재 20여 개의 나라로 확산되었다. 특히 지배구조가 취약한 아시아 지역 나라에서의 도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투자한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무책임성이 지적되면서 등장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스튜어드십 코드 전의 기관투자자들은 통상 좋지 않은 이슈가 발생한 기업들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주주권을 행사하기보다는 해당 주식을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기업에 대한 평가를 대신해 왔다. 이른바 '월스트리트 룰(Wall Street Rule)'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러한 방식보다는 주주로서 오너십(ownership)을 가지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관여 전략(engagement strategy)'을 실행한다. 주목할 점은 이 관여전략을 위해 투자대상의 ESG를 고려한다는 점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에 대해 주주로서의 오너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주주자본주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과 'ESG 고려'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방식 혹은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전통적인 주주자본주의와는 차별화된다. 포용적 성장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촉진을 위한 규제 방식도 점차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는 코드 이행 방식을 'Comply or Explain' 즉 '원칙 준수, 미준수 시 그 사유 설명'이라는 연성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의 종주국인 영국은 지난해 이 방식을 'Apply and Explain', 즉 '모든 원칙 적용, 그리고 설명'으로 규제 수위를 높였다. 또 상장기업 외의 기업(비상장기업)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기후변화를 포함한 ESG 통합을 강화했다. 'Apply and Explain' 방식은 향후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방식의 대세가 될 전망이다.

기지개 펴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책임

이러한 글로벌적인 바람에, 우리나라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 2016년 12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Principles on Institutional Investors' Fiduciary Duties)'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었다. 도입 당시 'Comply or Explain' 방식에 금융기관 자율가입이라 제도적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국민연금이 지난 2018년 7월 말 코드를 채택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 감시의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현재(2019.1.6) 116개 금융기관이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했다. 연기금 2개(국민연금·사학연금), 자산운용사도 42개다. 또 참여 예정 서류를 제출한 기관도 26개다. 물론 참여 기관과 참여 예정 기관 중에는 공적자금 위탁운용 시 가점용으로 등록한, 이른바 체리피킹(cherry picking)적인 기관도 다수 있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이러한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다수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현재 가입현황만으로 판단한다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국내 안착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선정·정기 평가 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및 이행 여부에 가점을 부여하기로 결정한 터라 내실도 다져질 전망이다. 특히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상태다. 국민연금은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말 확정했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적용이 더욱 본격화되고 확장될 전망이다.

사회책임투자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국내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2018년 말 기준 약 27조 7490억 원 정도다. 국내 자본시장 규모 대비 1.8%밖에 되지 않는다. 글로벌이 30조 683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존재감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마저도 국민연금이 96.4%를 차지한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나라의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는 전적으로 국민연금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수년 동안 국내 사회책임투자 발전은 사실상 답보상태였다.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에 보수적이었고 시장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역할에도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 사회책임투자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되었기 때문이다. 13년 만에 만들어진 정책이다.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국내 주식 일부에만 적용하던 사회책임투자를 올해부터 국내외 주식과 채권으로 확대한다. 또 국민연금 가치사슬의 일부인 위탁운용사의 선정과 평가도 ESG 관점에서 실행한다.

국민연금의 이러한 변화는, 국민연금의 ESG 자율 고려와 관련 사항 의무공시를 골자로 한 2015년 초 국민연금법' 개정, 그 이후 발생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시 부당한 의결권 행사, 가습기 살균제 가해기업 투자 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투자의 사회적 책임성이 부각된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모든 공적 연기금의 ESG 고려와 공시를 명시한 '국가재정법 개정안'만 3건이나 발의되기도 했다. 물론 투자의 패러다임이 'ESG 고려'를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글로벌적인 흐름은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에 나서게 한 기본 배경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보인 ESG 정보의 공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하고 포용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즉 ESG 정보공개 관련 법과 제도는 글로벌적인 흐름과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매우 미비하다.

현 '자본시장법'은 환경 정보 중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만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마저도 배출권거래제 또는 온실가스 목표관리제에 포함된 기업에 한해서다. ESG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수년 전부터 발의되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자율규정으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사위를 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지배 구조와 관련한 공시는 진척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거래소 규정 개정을 통해 2017년부터 시행해 오던 지배구조 관련 자율공시를 2019년부터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상장기업에 의무공시하도록 했으며, 2021년에는 코스피의 모든 상장기업에 이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거래소는 환경(E)와 사회(S)에 대해서도 공시 규정을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관련한 최종 용역보고서를 지난해 말 받은 바 있다. 이 제도에 대한 시행 여부부터 적용 범위와 수준과 방법 등 그 어떤 사항도 아직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ESG 정보공개의 의무화라는 글로벌적인 큰 흐름은 피해 가지 못할 전망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국민연금도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투자대상 기업에 ESG 정보공개를 본격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에서도 ESG 정보공개는 더욱 확대되면서 필수가 될 전망이다.

사회적 책임경영 지도(地圖), 지속가능성의 길

토마스 쿤은 그의 역작인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유명한 '패러다임 이론'(1단계-정상과학, 2단계-위기, 3단계-혁명, 4단계-새로운 정상과학)을 제시한다.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적 흐름을 이 패러다임 이론에 적용하면, 복수의 패러다임이 서로 경쟁하는 3단계이거나, 지역적으로는 4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있다. 필자의 판단은 그렇다.

세계는 지금 전환의 시대, 그 문 앞을 향해 가고 있다. 고탄소 사회에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배타적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의 전환,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 등이다. 지속가능성 위기는 이러한 전환을 해야만 하는 근본 이유이며, 이 시대적 전환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사회적 책임'이다. 기업은 이제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낡고 오래된 경영지도(經營地圖)를 수정하거나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 경영'이라는 지도로 지속가능한 길을 구해야 한다. 이윤을 창출하는 '게임의 규칙'이 변하고 있고, 또 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스마트한 경영자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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