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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사회, 그리고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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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사회, 그리고 인권 [휴먼 라이츠 브리핑] '시한폭탄'이 된 제주도의 쓰레기 문제

2018년 중국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중단 조치를 시행하면서, 쓰레기 처리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향이 컸다. 제주에서 발생한 쓰레기의 필리핀 불법 수출 문제가 불거지고, 2019년 3월 'CNN'이 한국의 쓰레기 문제를 보도하면서 국내의 쓰레기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의제로 떠올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6년 제주도의 100년 미래 비전이라고 하면서 핵심가치로서 '청정과 공존'을 발표했다. 그에 발맞춰 제주도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를 2016년 12월 1일부터 제주시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였다. 사실 제주도는 이미 1994년부터 쓰레기 종량제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였고, 2005년부터 쓰레기 '클린하우스'를 설치하여 쓰레기 문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클린하우스로 모인 쓰레기가 넘치기 시작하였고, 클린하우스 주변의 주민들의 불편과 민원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제주지역 사회에 잠복해있던 제주지역 쓰레기 매립장 포화문제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시행된 쓰레기 분리배출 정책은 제주도민들에게 큰 불편함을 안겼다. '쓰레기정책에 분노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까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실생활에서 쓰레기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터라 주민들 중 정책 시행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무튼 이 제도를 제주특별자치도가 강행하였고 점차 안정화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2018년 필리핀에 수출된 쓰레기들이 제주에서 발생된 것임이 밝혀졌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나름 쓰레기 정책을 수용했던 도민들의 선의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쓰레기 분리수거의 처리공정이 엉망임이 드러났다. 분리된 쓰레기들 중 다량이 그대로 매립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고, 분리된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공정과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이 드러났다. 불법 수출되었던 제주도의 쓰레기는 올해 2월 즈음에 평택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고, 제주도민의 세금으로 물류비와 소각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쓰레기 문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깨닫고 있는 제주사람들은 이러한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책적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분리배출 제도에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분리배출을 해서 조금이라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주 사람들의 집단지성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제주도의 쓰레기 정책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존중과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고, 제도적인 접근만 진행되고 있어서 근원적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우선, 제주도의 쓰레기 정책은 문제의 책임과 해결의 부담을 거의 모두 제주 도민들에게 지워 버렸다. 정책 시행의 초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정책 시행에 있어서 이행 주체가 거의 전부 제주 도민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것도 도민들이었고, 쓰레기를 기준에 맞게 분리하는 일도 도민이 해야 했으며 배출시간도 도민들이 정확히 맞춰야 했다. 도민들 사이에서는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관광객들은 놔두고, 왜 제주도민들만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행정과 일부 언론은 제주도민들이 대의는 무시하고 작은 불편을 참지 않는다며 비판의 화살을 도민들에게 돌렸다. 그리하여 '분리배출 도우미'라고 불리는 단기 일자리지원 노인들을 제주도 내에 설치된 모든 클린하우스에 배치하였다. 분리배출할 때 도민들에게 분리기준을 계도하고 강제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쓰레기 배출 감시자라며 반발이 컸다. 아직도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이렇게 행정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쓰레기 분리배출 정책을 강행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둘째, 쓰레기 문제에 대한 특성에 대해 종합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이뤄지지 않았다. 쓰레기가 발생하는 원인을 따져보면 사실 대단히 복잡하다. 그런데 쓰레기 발생원인을 그냥 놔두고, 최종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상품소비자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처사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재활용품 요일 배출제 정책이 꼭 그랬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고 한다면 플라스틱 용기의 특성과 용도를 파악하여 쓰레기 발생원인 물질을 줄이는 방식의 정책과 더불어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처리공정과 시설을 마련하고, 재활용을 높이는 방식을 도민들에게 제안해야 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쓰레기 정책은 앞 뒤 다 자르고 제주도민의 분리 배출 방식만을 강요함으로써 그저 열심히 발생되는 쓰레기를 규칙에 맞게 분리/정리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쓰레기양이 결코 줄지 않았음이 여러 언론매체와 조사보고서의 실제 통계치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다만 재활용률이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또한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 단순히 '쓰레기 처리'라는 행정적 목표만을 설정하였기에 그 정책의 맥락과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이 생략되어 버렸다.


제주는 미래비전으로 '청정과 공존'을 공표할 정도로 환경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지역이다. 경제적으로 환경은 제주도민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또한 제주의 환경은 이곳 사람들이 생존을 구성해온 삶의 기반이기도 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제주도의 청정 물 자원은 그자체로 많은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이 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보존되어야 한 자연 환경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곧 제주 사람들에게 환경권은 곧바로 생존권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를 보장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 제25조이다. 더불어 최근 국제인권의 흐름에서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3세대 인권으로서 환경권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의 쓰레기 정책은 이러한 사람들의 권리 증진이 아니라 개발과 경제성장 과정의 부산물을 처리하고 지속적인 개발성장정책을 구사하기 위한 보완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누려야 할 환경권과는 무관하게 추진되었다.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과도한 인구에 대한 고민이 없다. 특히 관광산업의 영역에서 대규모 관광객 유입 정책과 대규모 관광 투자 자본 유치, 대규모 관광지 개발 등 절제 없는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개발이익이 확대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제주도 자체의 쓰레기 처리 능력을 벗어났고, 오폐수가 걸러지지도 않고 청정바다에 그대로 뿌려지고 있는 등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되고 있으며, 쓰레기 처리 시설에 관한 주민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쓰레기를 계속 발생시키는 자본주의적 성장구조를 유지 또는 확대시키면서도 쓰레기 해결의 책임을 오히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이 제주의 자연을 즐길 권리를 누리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고 하지만 제주의 자연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더구나 제주의 환경은 제주사람들의 누려야 할 생존권이 아닌가.

제주특별자치도의 행정권력은 쓰레기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제주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무시하였다.
우선, 위에서 말한 소위 '쓰레기 배출 도우미'라는 보완책만 해도 문제가 많다. 도우미들은 정책 시행 초기에 사람들이 클린하우스로 자신의 쓰레기를 가지고 왔을 때, 그 쓰레기를 다 뒤져서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들은 다시 집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필자도 여러 번 그러한 경험을 했다. 이에 제주 사람들은 감시자를 파견했다면서 꽤 많은 민원을 쏟아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도우미라는 분들이 단기 일자리 지원을 받은 동네 어르신들이었다는 것이다. 쓰레기 배출을 두고 주민들 간에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서로 좁은 지역사회 특성상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고 하고, 행정도 과도하게 쓰레기를 들춰보지 않고 있어서 표면적 갈등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클린하우스를 갈 때마다 만나야 하는 도우미들의 존재는 여간 거북한 게 아니다. 제주사람들에게 쓰레기 배출 기준을 계몽하고 정책을 강제하는 이러한 식의 강압적인 행정 권력이 있는 한 사람들의 인격을 보장하는 일은 요원하다.


둘째, 강압적인 쓰레기 배출 과정에서 도우미들의 쓰레기 배출 검사는 여전히 어렸을 적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아가며 지켜야 했던 개인위생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쓰레기는 내 개인적 생활의 여러 가지 부산물이다. 여기에는 나의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내 사생활이 잘 정리 되었는지 행정에서 파견한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한다는 점은 쓰레기 정책이 개인의 사생활까지 얼마나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셋째, 분리 배출기준과 배출시간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소위 사회적 약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배출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제주지역에는 고령의 노인들이 혼자 사는 경우가 흔하다. 그 분들에게 급격한 사회 규칙 변화는 그 규정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적응도 쉽지 않다. 달걀 껍질이나 조개 껍질, 뼈와 같은 것은 매립용 쓰레기에, 잔반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 하고, 플라스틱과 비닐의 종류도 구분해야 하는 것은 그나마 덜 까다롭다. 작은 카세트 테이프의 자기테이프와 플라스틱을 분리해서 오라는 도우미의 요구는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쓰레기 배출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계층은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였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를 자기 집 냉장고의 냉동칸에 보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의 고충을 보면서 도우미로 나섰던 한 어르신이 필자에게 말했다. "분리하기 힘들면 전부다 매립용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리면 편하다."


행정의 계몽과 감시에 걸리지 않고 내 기본적 인권도 침해 받지 않으려면, 분리배출하지 않고 그냥 돈 내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면 되는 것이다.

제주도 행정이 쓰레기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소위 『자원순환도시 제주 로드맵』이라는 제안을 반영하여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쓰레기 발생의 근원에 대한 대응책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그 안에서 생략된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고민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겨우 관광업체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최첨단 환경시설을 짓겠다고 하지만 주민들 반발에 대한 대응책은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을 개선하겠다는 것뿐이다. 결국 다시 계몽인가?


쓰레기 문제는 단순한 쓰레기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사회 아니 조금만 더 나아가면 우리나라의 쓰레기 문제는 전사회적 측면이 진지하게 고려되고 고민해야 하는 인간적 삶의 문제이다.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권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처리 방식이 제안되어야 하며,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져야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통제되고 억압되어 집 안에 쌓여있는 제주 사람들의 쓰레기는 언제든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시한폭탄과 같은 인권 문제다.

(참고 : 제주도의 쓰레기정책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은 '제주 요일별 배출제의 공과'에 관한 김일방 박사의 한국환경철학회의 <환경철학> 제28집(2019. 12. 31) 논문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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