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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자산 몰수, 남북관계 종착역 알리는 '기적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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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금강산 자산 몰수, 남북관계 종착역 알리는 '기적 소리' 경색에서 대결로…군사적 충돌마저 우려
지난 12년 간 남과 북을 잇는 회랑이었던 금강산 관광 사업이 파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전반적인 남북관계 역시 좀처럼 회복 불가능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금강산 지구 내 남측 정부의 부동산을 몰수하겠다'는 23일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에서는 그동안 북한의 대남 비난 성명에서 감지됐던 남측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조차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뢰와 의지의 부재

북한이 꺼내든 초강경 카드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날 담화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인데, 대화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신뢰나 의지가 이미 전부터 바닥났기 때문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이 지난 한 달 간 남측에 경고하고 실제로 집행했던 부동산 동결 조치는 결코 '상징적인 위협'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결이나 몰수는 기술적인 차이일 뿐 초점은 '금강산 문을 닫는다'는 데 있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지구 내 부동산을 조사하며 남측 당국자의 입회를 요구하는 등 남측의 행동을 유도하려고 했으나 실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 쪽에서는 중국과 새로운 관광 사업 계약을 진행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달 25일~31일 부동산 조사 뒤 "모든 대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고 나온 통일부의 회담 제의에 대해서도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8월의 기회' 놓친 이명박 정부

대북 전문가들은 이런 기조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포착돼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계기 북측 특사조문단의 방문으로 잠시 반등했던 남북관계는 11월 중순을 전후로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11월 18일 금강산 관광 1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현정은 회장을 통해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간 회담을 열자고 타전했으나 통일부가 딱지를 놨던 일이 분수령이었다.

또한 당시엔 서해상에서 교전이 일어난데 이어 북한 해군사령부가 북방한계선(NLL) 부근 수역을 해상사격구역으로 지정한다고 선포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은 남측의 입장 변화에 걸었던 기대를 허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겉으론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연내 개최 가능성을 언급한 단초로 여겨지는 남북 고위 당국자간 물밑 접촉이 이때쯤 이뤄졌다. 12월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북측에 인도적 지원물자(신종플루 치료제)가 전달됐다.

이때 북한은 한 번 더 대화 제스처를 취해보자고 결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고 말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 같은 적극성은 없었지만 '남쪽이 움직인다면 호응하겠다'는 '소극적 유화노선'이란 평가가 있었다. 1월 14일에는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 접촉을 갖자"며 당국자간 대화도 제의했다.

▲ 현인택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특사 조의방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만나는 장면. 지난해 8월의 모습이다. ⓒ통일부 제공

그러나 김연철 교수는 "작년 10월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접촉 등은 진정한 대화 의지를 갖고 이뤄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뜻 보였던 유화적 분위기는 거품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라는 외적 환경이 대화 국면을 조성했지만 남측 내부적으로는 남북대화에 대한 정리된 입장이나 앞으로의 청사진이 없었다"며 "그렇게 수동적으로 나가다 보니 북한 입장에선 일말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전환됐고, 이제는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보복성전' 등의 거친 언사가 북쪽에서 나왔고, 2월 8일에야 열린 금강산 실무회담은 아무런 진전도 없이 공회전했다. 남측은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등 '3대 조건' 요구를, 북한은 '그건 이미 다 해결됐다'는 입장을 밀고 당길 뿐이었다. 3월 열린 개성공단 3통 문제 관련 실무회담도 추후 이행 방향에만 동의했지 결과적으로 아무런 합의도 내지 못했다.

언론이나 국책연구소를 통해 불거져 나온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이나 일부 강성 대북단체들이 날려 보내는 삐라(전단)에 대해서도 정부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북한의 비난 성명만 자극할 뿐이었다.

또 대북지원 단체의 방북이나 인도적 지원 물자의 반출까지 번번이 금지하면서 정부가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안 하는' 정책을 편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8월의 기회'는 그렇게 유효기간을 다 했다.

남북관계, 대결 국면으로 접어드나

전문가들은 이번 부동산 몰수 조치로 남북관계가 악화에서 더 나아가 대결 국면으로 접어 들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연철 교수는 "지금까지는 경색 국면이었다면 앞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악재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악재에는 물론 우발적인 군사 충돌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임기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악화 국면은 지금부터 시작이다"라며 지금까지 남북관계 난맥상은 예고편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이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하루 앞둔 14일에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대대적인 군사 종합훈련을 한 것도 상징적이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14일 '태양절'을 맞아 인민군 제567대연합부대의 종합훈련에 참관했다. ⓒ연합뉴스

정창현 <민족21> 대표는 이 훈련이 "대외적인 무력시위 성격과 내부 결속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며 "지난해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제3차 북핵위기'가 하반기에 대화 국면으로 잠시 전환됐다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기다 갑작스럽게 터진 천안함 침몰 사고 역시 남북 대결 국면을 부추기는 커다란 악재가 되고 있다. 일부 보수 인사들로부터 '대북 전면전' 등 호전적인 언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에 햇볕이 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를 풀려면 정상회담과 같은 '탑다운' 방식만이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효적 안이라 보기 힘들다.

김연철 교수는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꼬인 매듭이 많을 경우 탑다운 방식이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경우엔 대화의 의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얘기란 것이다. 그는 "그런 차원에서 금강산 문제는 의지 표명과 관련한 중요한 증거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신의 계곡이 깊어질수록 신뢰의 언덕에 올라가기 위한 힘은 더 드는 법"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대결 국면까지 예상되는 지금의 남북관계가 금강산, 개성으로 가는 회랑을 닦아 놨던 시절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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