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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상징 자오쯔양, '외로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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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상징 자오쯔양, '외로운 죽음' 中지도부 자오 사망에 긴장-보도 통제. 톈안먼 광장 아직 ‘조용’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가 17일 85세를 끝으로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무력진압으로 막을 내렸던 89년 톈안먼 사태에 대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다 실각됐던 자오쯔양이 사망함으로써, 그를 15년간 가택연금시켜온 중국정부를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자오쯔양 중국 전 총서기 85세 일기로 사망**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자오쯔양 동지가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자오 동지가 지병인 호흡기와 혈관질환으로 사망했다”면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오다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향년 85세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AP, AFP 통신 등 세계 주요 외신도 이날 자오 전 총서기의 사망 소식을 신속하게 전했으다.

자오의 아들인 량팡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이날 아침 7시1분에 사망했다”고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자오의 딸인 왕얀난도 지인들에 전화를 해 “아버지가 평화롭게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으며 마침내 자유를 찾게 됐다”며 자오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의 사망소식에 중국 지도부들은 조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량팡은 “그들이 누구인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톈안먼 사태 무력진압 반대로 권력에서 축출돼**

자오 전 총서기의 정치 역정을 보면 참으로 곡절 많은 세월을 보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권력 복귀와 함께 전면에 대두했었으나, 그를 이끌었던 덩샤오핑에 의해 권력 핵심부에서 축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자오쯔양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1989년 5월 19일의 모습이 남아있을 정도로, 당시 부패일소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가득찼던 톈안먼 광장을 방문해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했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이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시 덩샤오핑 등 중국 지도부는 톈안먼 사태에 대한 무력 진압을 지지했으나 자오 전 총서기는 끝까지 무력 진압에 반대했다. 그는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광장으로 시위 주도 학생들을 찾아가 “내가 너무 늦게 왔다. 여러분이 제기한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학생들을 설득했다. 당시 자오 옆에는 현 국무원 총리인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 주임이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 일로 결국 그해 6월 24일 권좌에서 축출당한 뒤 15년간 당국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가택연금된 상태에서 사회와 철저히 고립돼 지내다 쓸쓸히 생을 달리하게 됐다.

그는 톈안먼 사태 이전에는 1980년부터 87년까지 국무원 총리로 일하며 70년대 문화대혁명의 상처를 치유, 80년대 중국 경제 개혁개방에 크게 일조했고 90년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정부, 후폭풍 크게 우려**

자오 전 총서기가 사망하면서 중국 정치사회에 미칠 영향이 중국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오 전 총서기는 중국 현대사에서 톈안먼 사태 유혈 진압에 거의 유일하게 저항했던 정치인으로, 서방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에 중국 정부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톈안먼 사태는 지속적인 경제개혁에 필요한 정치 안정을 위해 불가피했다"며 "자오 역시 당을 분열시키는 과오를 저질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외견상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내심 자오 사망이 불러올지도 모를 정치적 후폭풍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외신들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을 인용, “중국 정부는 자오의 사망이 빈부 격차가 날로 커져가고 있는 중국 사회를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우자오셰(吳釗燮) 대륙위원회 주임도 이날 “대륙위원회는 자오 전 총서기 사망이 중국 대륙 내부에 동요를 유발할지 여부를 계속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그가 실각된 지 이미 15년이나 흘렀으나 그의 죽음이 저항의 목소리를 촉발할 수 있다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현대 정치에서는 주요 인물이 사망할 때마다 추모 인파로 커다란 정치적 격변이 유발된 바 있다. 특히 1976년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 사망이후 큰 시위가 촉발됐었다.

실제로 신화통신은 사망 소식 타전 이후 “자오 동지 사망 기사는 신문에 제공된 것으로, 국내 라디오와 TV는 사용하지 말라”는 신화사 국내부 명의의 ‘주의문’을 내보내 보도통제에 나섰다. 중국 지도부가 자오 사망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증거다.

***톈안먼 광장, 아직은 ‘조용’**

그러나 그의 사망 소식에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오 전 서기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미 톈안먼 광장에 대한 보안 조치를 강화한 상태이나 광장은 평상시와 별다른 변화 없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고요는 텐안먼 사태후 중국경제가 고공성장을 거듭하면서, 다수 인민들의 삶이 개선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자오의 사망으로 현재 중국의 고성장 그늘아래 날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의 희생자인 소외계층들의 정치적 불만이 터져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당시 톈안먼 사태 희생자의 한 가족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현재 중국 정치에서 그와 같은 인물은 없으며 어떤 사람도 그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추모하며 “이로써 한 시대의 막을 고하고 있다”고 애도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을 계기로 장기적으로는 톈안먼 사태와 그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어, 어떤 식으로든 중국 공산당이 털고 나가야할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경제개혁과 함께 정치개혁이 본격 이뤄지게 되면 비교적 톈안먼 사태에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현 4세대 지도부는 새로운 해석을 수용, 실업문제와 빈부격차, 중앙-지방 관계 등 다양한 불만을 잠재우려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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