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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정상화, G2 시대 '평화전략'의 첫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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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북관계 정상화, G2 시대 '평화전략'의 첫 단추" [한반도평화아카데미]<2강> 김준형 한동대 교수
한반도평화포럼, 인제대학교,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한 제2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두 번째 강의가 6일 서울 중구 저동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됐다.

이날 'G2 시대, 동북아 질서의 재편과 한반도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냉전 붕괴 이후 9.11 사건을 거치며 변화한 미국의 대외정책과 이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떠오른 중국의 위상에 대해 조망했다. 중국에 대한 '그랜드 전략'이 부재한 가운데 '전략적 협력관계'를 모색했던 미국의 의도와 반대로 최근 일련의 사건에 의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김준형 교수는 또 G2라는 개념이 세계적인 함의를 갖기에는 이르지만 적어도 동북아 안보 환경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한국이 어느 한 편에 의존하지 않고 현실적인 외교를 통해 동북아 다자체제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 다자체제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수강생 중 일부는 아시아의 오래된 역사적 갈등 때문에 다자체제로의 전환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6자회담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며 다자체제의 원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2013년 체제와 한반도 평화전략'이라는 큰 주제로 열리는 2기 아카데미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중구 저동에 위치한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총 8차례 진행된다. 추석 연휴를 건너뛰고 9월 20일 열리는 3강은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을 지냈던 고경빈 서울사이버대 교수가 'MB 통일담론 해체와 포용정책 업그레이드'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강의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한반도평화포럼 홈페이지(☞
)를 방문하거나 사무국으로 전화(02-707-0615)하면 된다. 한반도평화포럼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 종교·시민사회 관계자, 전직 공직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는 지난해 10~11월 5회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

"'테러와의 전쟁' 다음은 중국이었다"

'G2'를 이해하려면 탈냉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탈냉전의 시점은 1989년 몰타 정상회담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이 냉전 종식을 선언한 때로 잡기도 하고,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됐을 때로 보는 이들도 있다. 1991년으로 잡으면 올해로 딱 20년이 된 셈인데, 그 중간에 9.11(2001년)이란 사건이 있다.

9. 11은 테러리즘의 맥락으로도 분석할 수 있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적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탈냉전 이후 9.11이 터지기 전까지는 뉴밀레니엄, 민주화, 시장경제, 세계화와 같은 단어들이 21세기를 바라보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많았다. 미국에서도 그런 경향은 마찬가지였고, 반세기의 긴장관계가 붕괴되는 상황이 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했었다. 공화당의 전형적인 대외정책 노선과 달리 아버지 부시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맞아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발표를 할 정도로 탈냉전이 가져다 준 의미는 신비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메커니즘 자체에 큰 공백이 생겼다는 측면이 있다.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취해야할 미국의 대외정책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탈냉전이 바로 평화로 넘어왔다면 미국 대외정책의 부재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종족분쟁이나 동유럽 국가 체제전환에 맞물린 핵무기 확산 방지 등 온갖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부시가 집권한 4년과 클린턴 행정부 8년을 더해 12년 동안 미국은 대외정책의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2001년 9.11이 등장했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을 뿐더러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또 하나의 위협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아들 부시 정권은 9.11 이후 '부시 독트린'이라 불리는 군사주의, 일방주의, 선제공격 전략의 근거를 갖췄다.

주목할 부문은 선제공격론이다. 국제법상으로는 현존하고 분명한 위협이 있을 때에만 그것을 위협으로 본다. 현존하는 위협이었던 소련은 한 국가로서 예측 가능한 존재였다. 하지만 테러리즘은 비대칭전이라고 불리듯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형적인 '위협'의 상태가 아닌 '위험'의 상태다.

국제법상 '위험'은 보이지는 않지만 내버려두면 위협으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탈냉전 상황에서 소련과 전혀 다른 형태의 위험을 키우지 않기 위해 선제공격이 가능해졌다. 9.11로 탈냉전 시대의 유일무이한 패권국이라는 환상이 깨진 미국은 선제공격론을 바탕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미국은 소련 이후 10여 년간의 공백이 전쟁으로 충분히 메워지리라 기대했다.

▲ 김준형 한동대 교수. ⓒ한반도평화포럼
하지만 오히려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 선제공격론은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아프간 전쟁까지만 해도 많은 국가의 공조가 있었지만 이라크에서 유엔을 무시하면서까지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는 등의 행동으로 부시 정부 8년 동안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테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미국의 대외정책 전략을 바꿀 만큼의 위협으로는 부족했다. 따라서 미국은 20년이 넘도록 탈냉전 전략을 정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당시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두 번째 타깃은 중국이 됐을 것이다. 네오콘들은 미국의 절대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反)테러리즘을 기반으로 중국을 봉쇄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실패가 부시 정부 대외정책의 실패로 규정되면서 중국에 대한 정책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이 전략을 정하지 못했던 20년간, 더 나아가 1972년 문을 열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후 약 40년 동안 너무 커져버렸다. 그동안 중국은 힘이 커지는 것을 표내지 않고 서서히 성장해왔다. 최근만 보면 지난 5년간 세계 1위 외화보유국이 됐고, 2009년에는 독일을 제치고 1위 수출국이 됐다. 작년에는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2위로 부상했다. 또 2000년 이후 11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군비 증강률을 보였다.

중국과 미국이 전세계 생산량의 3분의 1, 교역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면서 양국 관계를 쌍무관계로만 따질 수 없게 됐다. 미국은 테러리즘이 전략적 공백을 메울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을 그 공백에 포함시키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대외정책에서 성과가 없었던 클린턴 행정부 시절 중앙정보국장(CIA)이었던 제임스 울시는 "용을 한 마리 죽이고 나서 세상에 평화가 올 줄 알았더니 독사들만 우글거렸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용'인지 여부는 미국 내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안

미국 내 중국에 대한 논쟁을 보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또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에게 기회가 될 것인지 위협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예스'라고 답하는 이들은 중국의 인구와 영토, 40년간의 끊임없는 경제발전, 군사력 증강을 근거로 든다. '노'라고 답하는 이들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긴 하지만 생산물의 90%를 자국 인구를 먹여 살리는데 써야 하고, 미국 경제와 비교했을 때 GDP가 아직도 10%에 불과할 뿐더러 군비의 총량 역시 10%에 그친다는 점을 들면서 적어도 30년 안에는 추월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국이 환율과 신용을 통제하고 있음에도 물가 상승압력이 극심하다면서 이 문제가 터질 경우 미국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하는 이도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위협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봉쇄전략을 주장하는 네오콘들이다. 또 다른 이들로는 신현실주의자가 있다. 이들은 세계 정부 또는 국제기구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제 정치 상황에서는 한 국가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끊임없이 2인자와 대결구도를 만들어야하고, 어느 정도의 격차에 안심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권력을 차지해야한다고 분석한다. 그런 구조에서 도전자를 봉쇄하고 눌러야 하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신현실주의자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의 비극>이란 책에서 중국의 부상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것도 필연적인 구조적 성격을 갖는다고 봤다. 미국은 일개 국가에 불과하지 세계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중국을 끝까지 자극하게 되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의 부상이 미국에 기회라고 얘기하는 이들은 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 세계론자다. 이들은 상호의존 이론을 편다. 중국이 죽으면 미국도 죽는다는 것이다. 중국이 없었으면 세계 물가는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중국이 전 세계 상품을 생산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당 기간 연장해온 것은 사실이다.

또 미국 국채 대부분을 사들이고 있는 것도 중국이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나온 유명한 얘기가 있다. 미국이 중국에 환율에 개입하지 말고 위안화 가치를 올려서 수입량을 늘리라고 하니까 중국이 미국에게 돈을 그만 찍어내서 양적 완화를 중단하면 1조 달러에 이르는 미국 국채를 바다에 던진다고 했다. 정말로 국채를 바다에 던지지도 않겠지만 이는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현상유지 세력인가, 현상타파 세력인가

또 한편으로는 중국이 정말 현상유지 세력인가 현상타파 세력인가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대외정책을 말함)'라는 말도 있듯 중국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G2'를 언급하자 '우린 제3세계국이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긴장관계가 생겼을 때 중국은 강하게 나가면서도 미국에 도전할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면에서 중국이 현상유지 세력이라고 보는 이들은 국제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질서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점을 든다. 미중관계에 있어 한반도보다 더 폭발적인 뇌관이라 불리는 대만에 대해서도 중국은 강제로 통일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패권에는 주기가 있다는 장주기 이론에 따라 중국은 미국이 확실하게 쇠퇴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성급하게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중국이 현상타파, 또는 수정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중화사상, 민족주의 이념을 강조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정치체제는 사회주의를 붙잡고 있다. 그런데 통치이념으로 강력하게 작용했던 사회주의의 힘이 약해지면서 중국 정부가 공자의 부활이나 동북공정 같은 공격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취했다. 이 민족주의는 위기 상황에서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또 중국은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도 굉장히 강경하다. 중국이 지난해 남중국해, 조어도 문제 등으로 그 동안 공들여 왔던 동남아 국가들과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 군사적 배치만 봐도 중국은 해안선 부근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있고 한반도와 일본을 향해 있다. 미국도 노무현 정부 때부터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면서 서해안 쪽으로 군사력이 이동했다.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보면 중국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아프리카나 남미, 동남아 지역에 원조를 퍼부으면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면을 볼 때 현상유지 세력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평화포럼

중미관계, 전략적 협력에서 대결로 간 이유는?

경제 위기 해법을 찾기 위해 G7이 G8으로, 다시 G20까지 갔는데 막상 지난해 우리가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을 때 깨달은 건 세계 경제의 향방이 미국의 양적 완화와 중국의 환율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이었다.

G2는 본래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던진 일종의 화해 제스쳐였다. 학계에서는 2006년부터 사용했던 말인데 카터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오바마에게 이 말을 권했다. 부시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로 봤지만 오바마는 전략적 협력관계(strategic partnership)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참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 용어를 부정한 것은 미국이 이를 언급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국도 미국이 원하는 세계질서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담당하라는 압박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고 난 후 일이 더 꼬이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부시의 외교 실패를 공략해 당선됐고, 외교적으로 화해정책, 비핵화를 주장해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3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그가 한 일은 거의 국내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의보개혁이나 특히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아시아 투어 때 자신의 집권 기간 동안 아시아 중시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거기에 중국과의 관계나 대북정책 등이 들어있었지만 실제로 화해나 협력은 없었다. 오히려 금융위기 대책을 놓고 중국과 알력다툼을 했다. 특히 2010년 미중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었고, 그것을 표출하는 시험대가 한반도와 남중국해다.

한반도에서 나타난 미·중 대외전략의 변화

한반도 문제의 출발은 북핵 문제였고 이어서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미중 대립구도가 형성됐다.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부시 행정부 말기 1.5~2년 동안 굉장한 진전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층은 심지어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6자회담 수석대표)를 김정'힐'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심지어 오바마도 자신의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 마지막 1년 반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고 했다. 북한도 잔뜩 기대를 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도 지적했지만 보수세력이 그 국면에 제동을 걸었고 북핵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북한은 잘 나가던 협상 국면이 바뀌자 부시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며 오바마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바마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미국의 정책 결정 순위에서도 북한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가 자리를 잡는데 1년 이상 걸린 측면도 있었는데 북한은 그 시기를 못 참고 2차 핵실험을 했다.

이 핵실험이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을 바꿨다. 협상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었던 미국은 핵실험을 계기로 한국 정부의 강경책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은 굉장히 고민했다. 북핵 협상의 1라운드였던 제네바 합의(1994년)가 북미간 양자협상이었다면 2002년 이후 우라늄 문제를 놓고 6자회담 국면을 조성한 건 중국이다. 중국은 직접적인 행동보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유엔의 1·2차 북한 제재에도 비토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 시스템을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2차 핵실험 이후 중국 내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격렬한 논란이 일었다. 결론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놓을 수 없다는 실용적 선택이었다. 북한을 압박하면 중국만이 가질 수 있는 지렛대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유엔의 강력한 제재에는 참여하면서 바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북에 가서 해방 후 가장 큰 규모의 대북 경협에 합의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포기한 게 아니라 지렛대가 먼저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이 엇갈리면서 미국-한국 대 중국-북한 사이의 긴장구조가 형성됐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게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다. 이 분위기가 러시아, 일본까지 미치면서 과거 북중러 대 한미일 같은 신냉전적 상황이 나타났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

또 다른 미중 갈등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주변 국가들과의 영토분쟁에 전례 없는 강경자세를 보였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의 강경책은 주변국들이 미국과 손을 잡게 만들었다. 베트남이 중국의 어로 탐사 케이블을 끊어버린 게 대표적인 예다.

게다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이른바 '스탄국'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몽골과도 손을 잡았다. 또 미국은 인도가 중국을 대신할 가장 적절한 대체제라고 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핵 협정을 맺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를 채택한 인도는 중국이 잘못되었을 때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오바마는 'G2'를 내세워 연성 전략을 펴면서도 중국의 인권과 티베트 문제, 인터넷 검열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중국을 자극했다. 그래서 중국 내부에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불만과 반발이 깔려있다.

미중 갈등 속 한국의 딜레마

우리에게 미중관계는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년에 동북아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한국, 일본)의 정권이 동시에 바뀐다. 북한도 실질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준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 때 힘을 얻는 건 민족주의적 성향이라는 점이다. 외부 충돌은 내부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어서 각국이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G2라고 불릴 정도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한반도와 아시아 문제에 관해서는 G2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는 게 중미관계다. 미국이 한국에 동맹 관계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중국은 역내 국가라는 장점이 있기에 둘의 관계는 대등해질 수 있다.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 있지는 않지만 동북아 국가라고 하는 것은 위기 상황 때문이다. 미국이 아시아 각국과 맺은 동맹관계는 위기 상황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만약 동북아에 평화가 찾아오면 미국의 입지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입장에서는 영향력 확보를 위해 위기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고 영향력이 줄어드느냐는 딜레마가가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딜레마다. 미국과 한국 관계가 지금처럼 좋을 때가 없다고들 한다. 평화의 시대, 탈냉전 시대에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니다. 동맹은 가장 위험할 때, 적이 있을 때 좋아지기 때문이다. 분단 상황에서 미국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한미동맹이 이를 지탱했다는 게 우리에겐 일종의 불행이다. 진보 정권 10년 동안 그런 관계가 약화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그 시절을 지워버렸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중미 대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불안정성이 심화됐다.

경제적으로 봐도 한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30%에 이른다. 그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가는 겪이다. 중미관계가 악화되면 우리 몸은 찢어져 버린다. 앞으로도 우리는 한미동맹의 프레임에 갇혀 중국과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G2가 세계적함의를 갖는다면 남북 관계는…

미 국무부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지역별로 담당하는 부서고 다른 한 쪽은 군축이나 반핵을 다루는 기능주의적 관료들이다. 이 기능주의적 관료들은 북핵 문제에 강경한 성격을 지니는데 이는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핵화 원칙에만 입각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G2를 남북 문제라는 지역적 함의가 아닌 세계적 함의로 인식한다는 건 기능주의자들이 미국 외부에서 발언권이 커짐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나올 수 있는 결과 중 하나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 입장에서도 시급한 사안이 아니게 된다. 연평도 사건 직후 중미 양국이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남한과 북한 정부가 충돌하지 않게 막은 것이었다. 긴장은 필요하지만 실제로 충돌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양국이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좋은 현상일 것 같지만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단계로 상당 부분 갔다고 본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급성이 작아질 수 있다. 또 어떤 면에서 미국은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취급하는 정황도 보인다. 다른 국가에 핵무기를 주는 일만 없게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부에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피해를 입게 된다.

"한국의 선택은 '헤징'과 '모호성', 그리고 '다자체제'"

우리가 취할 선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헤징(hedging) 전략은 일종의 회피전략이다. 중국과 미국이 긴장 관계는 있지만 충돌할 정도는 아니라면 우리가 움직일 운신의 폭은 있다. 바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비겁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소수 민족 문제, 영토 문제, 사회주의 체제에 관한 공격 등 중국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계속 자극했고 한중관계는 역대 최악이다.

또 하나의 선택은 전략적 모호성 유지다. 능구렁이처럼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약소국이 취할 수 있는 큰 장점 중 하나다. 그런데 정부는 'Anything But Roh(노무현이 했던 게 아니라면 뭐든지)'라면서 미국에 대한 애정을 다 베풀었다. FTA도 찬반을 떠나 우리가 먼저 비준할 이유가 없었다. 전략적 모호성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해주면 미국이 우리에게 해줄 필요가 없어진다. 저자세를 취하는 것과 실제로 무엇을 해주는 것은 다르다.

세 번째는 장기적 전략으로 동북아 다자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는 유럽의 나토(NATO)와 달리 미국과 쌍무적 동맹관계에 의해 일대일로 미국과 묶여 있다. 이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화해에 기반한 다자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 우리로서는 운신의 폭이 없어져 세 가지 방법 중 어떤 것도 모색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반대로 남북관계 개선이야 말로 우리가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세 가지 방안이 가능한지 여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남북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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