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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없었던 최상의 것이 아니면 모두 쓰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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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없었던 최상의 것이 아니면 모두 쓰레기야!" 스티브 잡스 전기 집필자 아이작슨 "그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순간…"
스티브 잡스 열풍이 그치지 않고 있다. 잡스가 사망하기 하루 전인 4일 발표된 '아이폰4S'는 사전 예약 주문만 100만 건을 돌파했다. 발표 당시 '아이폰5'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던 분위기는 잡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취를 감췄다.

잡스의 유일한 공식 전기가 될 월터 아이작슨의 신간 <스티브 잡스>는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사전예약만으로도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이 자서전은 국내에서도 25일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타임> 편집장과 <CNN>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던 월터 아이작슨 애스펀 연구소 CEO는 오랜 친구인 잡스의 부탁으로 2004년부터 전기 집필을 시작했다. 아이작슨은 6일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집필을 시작하게된 과정과 잡스의 창조성, 마지막으로 잡스와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강력한 집중력과 통제 본능을 발휘해 애츨의 제품이 단순성과 통일성을 지향하도록 했으며, 마이크로소프프(MS)에 한동안 가려져 있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오류없는 사용자 경험'이라는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잡스의 창조성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은 저서와 매체를 통해 조명됐지만, 아이작슨의 공인 전기에는 잡스와의 40번이 넘는 인터뷰를 통해 들은 내용이 담겨 있어 평생을 비밀주의로 일관했던 그의 생애를 제대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모이고 있다.

다음은 <타임>에 실린 아이작슨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7일 미국 캘리포니아 팰러 앨토(Palo Alto) 스티브 잡스의 자택 밖에서 애플의 팬들이 잡스의 사망을 애도한 흔적들. ⓒAP=연합뉴스

스티브 잡스를 기리며

2004년 초여름, 필자는 잡스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러 해 동안 필자와 친근하게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물론 때때로 격정적인 말들이 오갈 때도 있었다. 특히 그가 애플의 새 제품이 필자가 일하던 <타임>의 표지에 실리거나 <CNN>에 보도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더 그러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즈음 그가 소식을 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애스펀 연구소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막 연구소에 합류한 필자는 잡스에게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여름 계절 학기에 와서 연설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가겠지만 연단에 서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신에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다소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오랫동안 함께 산책하는 것이 그가 진지한 대화를 하고자 할 때 선호하는 방식임을 알지 못했다. 함께 산책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전기를 막 출판했던 참이었고,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쓰던 참이었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그 말을 듣자마자 필자는 잡스가 스스로를 그들의 뒤를 이을 만한 후계자로 여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잡스는 아직 변화무쌍한 인생 경력의 한가운데 있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부침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발심이 일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10년이나 20년 후에 당신이 은퇴할 때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스티브 잡스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기 전 첫 번째 암 수술을 앞두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의 암 투병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점차 그에게 깊게 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가 만들어 낸 제품들에 그의 개성이 깊게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정열, 완벽주의, 귀재, 욕망, 예술적 감각, 악마성, 그리고 통제에 대한 집착 등이 사업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이야기를 창조성의 전범으로 다루기로 결심했다.

스티브 잡스의 개성과 그가 만들어 낸 물건들을 서로 묶어 이해하려는 통일장 이론은 그의 가장 뚜렷한 특징, 즉 그의 강렬한 집중력(intensity)과 함께 시작한다. 심지어 그것은 잡스의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미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때부터 그는 거의 채소와 과일만 먹는 극단적인 식단으로 평생의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그는 경주용 개 '휘핏(Whippet)'처럼 날씬하고 단단해 보이는 몸매를 갖게 되었다. 또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법을 배웠으며, 긴 침묵 사이사이로 빠른 속도로 내뱉는 말을 스타카토처럼 폭발시키는 독특한 화법을 완성했다.

이 강렬한 집중력은 그의 마음속에 이원론적 세계관이 형성되는데 영향을 끼쳤다. 똑같은 원칙이 제품들, 아이디어들, 심지어 음식들에도 적용되었다.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었던 최상의 것"이 아니면 전적으로 몹쓸 것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구분할 수 없는 두 종류의 아보카도를 맛보고는 그중 하나는 잘 숙성된 최상의 것으로, 다른 하나는 전혀 못 먹을 것으로 선포해 버렸다.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으며, 이로 인해 내면에 디자인에 대한 한없는 열정을 품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최초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는 "더욱 친숙한" 디자인을 고집했는데, 그러한 생각은 당시 컴퓨터 하드웨어 기술자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개념이었다. 그의 해법은 사용자들이 매킨토시에서 사람 얼굴을 떠올리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스크린 위에 달린 띠를 더 얇게 만들어서 네안데르탈인 얼굴처럼 보이지 않게 하자고 주장했다.

1998년 잡스와 그의 디자인 파트너인 조니 이브가 처음 아이맥(iMac)을 만들었을 때, 이브는 아이맥 상단에 손잡이 하나를 달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것은 기능적이라기보다는 재미있고 기호학적인 장치였다. 실제로 가지고 다닐 때 손잡이를 쓰려 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신호, 즉 사람들이 기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였다. 당신이 그것을 쥐면, 그것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기술자들은 그러려면 비용이 더 든다고 반대했지만, 잡스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다.

해커들과 애호가들은 대부분 많은 것들을 바꾸어 컴퓨터를 자기에 맞게 고치고, 변형하고, 향상하고 싶어 한다. 잡스는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무결한 사용자 경험을 주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그래서 잡스는 그의 본래 파트너, 즉 해커 마인드로 충만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에 끝까지 동의할 수 없었다.

애플II 컴퓨터를 만들 때 워즈니악은 소비자들이 작은 회로기판과 주변 장치들을 집어넣을 때 이용할 수 있도록 슬롯 여덟 개를 집어넣고 싶어 했다. 잡스는 마지못해서 그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는 자기 방식대로 그것을 처리했다. 거기에는 여분의 슬롯이나 포트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애호가들이 그것을 열고 변형할 수 없도록 특수한 나사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통제 본능 탓에 잡스는 심사숙고해서 만들어 낸 애플의 위대한 소프트웨어가 다른 회사의 엉망진창인 하드웨어에서 구동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었으며, 때때로 그것이 악화되곤 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승인받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콘텐트가 애플 디바이스의 완벽성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콘텐트를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 안에 통합하기 위해 잡스는 단순성에 집착했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자연은 단순성과 통일성(unity)을 사랑한다"라고 선언했다. 스티브 잡스 역시 그러했다.

이 때문에 잡스는 매킨토시 운영 체제를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에서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반대 전략을 추구했는데, 따라서 윈도 운영 체제는 난잡하게 허가권을 팔아치웠다. 그것은 가장 우아한 컴퓨터들을 생산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전 세계 운영 체제를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애플의 시장 점유율이 5% 이하로 축소되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 방식이 개인용 컴퓨터 영역의 승자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결국 잡스 모델의 몇몇 이점이 증명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려 했던 그의 고집은 2000년대 초 애플이 디지털 허브 전략을 개발하는데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애플은 데스크톱 컴퓨터에 다양한 휴대 장치들을 오작동 없이 연결하고 디지털 콘텐트를 편리하게 관리하는데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 없는 사용자 경험을 결코 제공하지 못하는 다른 너저분한 경쟁 제품들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스티브 잡스에게 통합적 접근에 대한 신념은 올바름의 문제였다. 그는 설명했다. "우리는 온갖 변종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이렇게 일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한 제품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이용자들을 우선 배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서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사용자 경험 전체를 기꺼이 책임지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일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는 중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최선의 일을 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삶은 늘 이런저런 일들로 붐빕니다. 그들이 컴퓨터와 디바이스를 어떻게 통합할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쓰레기 같은 디바이스들, 형편없는 소프트웨어들, 이해할 수 없는 오류 메시지들, 그리고 짜증나는 인터페이스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스티브 잡스의 통합적 접근 방식은 기쁨에 넘치는 사용자 경험을 특징으로 하는 놀라운 제품들을 만들어 냈다.

▲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곧 출간할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
몇 주 전 필자는 마지막으로 미 캘리포니아 팰러 앨토(Palo Alto)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할 만큼 약해져 있었던 탓에 그는 아래층에 있는 침실로 옮겨져 있었다. 고통 때문에 몸을 움츠리기는 했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 날카로웠고 그의 유머는 여전히 빛났다.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고, 그는 필자에게 아버지와 가족들 사진을 몇 장 주면서 전기에 사용하라고 했다.

작가로서 애써 초연하려고 했지만, 안녕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슬픔의 물결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을 숨기려고 필자는 그때까지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지난 두 해에 걸쳐 거의 쉰 번에 이르는 인터뷰와 대화를 하는 동안 내내 궁금했던 것이었다.

평소 잡스는 사생활을 거의 노출하지 않았는데, 이 책 한 권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화들을 기꺼이 공개하고 싶어 했을까?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늘 그들과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아이들이 알기를 원했고, 내가 했던 일들을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 번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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