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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 자식들의 낯 뜨거운 이전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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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 자식들의 낯 뜨거운 이전투구 [데스크 칼럼] "삼성생명,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묻고 듣고 적는 것. 그게 기자가 할 일이다. 꼭 필요한 질문이라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해야 한다. 꼭 필요한 대답이라면, 며칠을 기다려서라도 들어야 한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실이라면, 반드시 기록해서 널리 읽히게끔 해야 한다. 이런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기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걸 다 한다고 해서, 모두 좋은 기자인 것은 아니다. 좋은 기자와 나쁜 기자가 나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첫 단계다. 나쁜 기자는 쓸데없는 걸 캐묻고 공개한다. 예컨대 신정아 씨가 연인과 주고받는 연애편지 따위. 명백한 사생활 침해다. 이런 일만 전문으로 하는 매체를 흔히 '황색 언론'이라고 부른다. 사생활과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범죄자건 대통령이건 재벌 총수건 마찬가지다.

반면, 좋은 기자는 중요한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때론 좋은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즉 앞의 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를 건너뛰어도, 기자 노릇을 제대로 할 때가 있다. 다들 알면서도 외면하는 진실, 그걸 캐묻는다면 질문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혹은 권력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질문, 이런 것도 종종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처럼 좋은 질문을 하는 기자들이 한국에는 많이 있다.

이병철 자식들의 이전투구, 문제는 '세금'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떤 영역에선 다들 좋은 기자되기를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재벌 문제다. 누구나 궁금해 하는, 꼭 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신 엉뚱한 것만 묻는다. 삼성 문제를 취재하며 이런 풍경을 많이 봤다.

최근 화제가 된 이맹희 씨 관련 기사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맹희 씨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청구소송을 제기한 직후, 온갖 매체들이 이 사건을 다뤘다. 이후 삼성 직원의 이재현 CJ 회장 미행 사건, 이숙희 씨의 소송 가세 등이 이어지면서 언론이 관심도 한껏 고조됐다. 실체가 불분명한 '재계 소식통', '재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들 '재계 소식통'에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우선 이맹희·이숙희 씨 등이 상속권을 주장한 삼성생명 차명주식의 실체부터 그렇다. 이맹희·이숙희 씨와 이건희 삼성 회장은 향후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드러난 삼성생명 차명주식 전체가 '고(故)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라는 것이다. 삼성 특검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러나 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논리적 모순에 부딪힌다. 그래서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생명 차명주식 전체가 상속재산'이라는 판단은 오류이며, 그 중 절반가량만 상속재산으로 보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맹희·이숙희-이건희 남매는 사실상 '남의 돈'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셈이다. 삼성가(家)의 상속분쟁을 다루는 언론이라면, 삼성생명 차명주식의 실체부터 따져 묻는 게 옳다. 아울러 세금 문제도 짚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너도나도 복지를 이야기하는 때라면 더욱 그렇다. 세금이 빠진 복지 담론은 그저 선동일 뿐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발 빠르게 문제제기를 한 것은 경제개혁연대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이었다. 꼭 필요한 질문을 제때 던지는 '좋은 기자' 노릇을 했다는 평가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게 옳다.

언론으로서는 부끄러운 대목이다. 2008년 특검 수사 결과에 대한 논란을 벌써 잊었거나, 기억하면서도 외면했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건 '좋은 기자'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삼성家의 '대박',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

다음은 조금 오래된 질문이다. 삼성생명이 상장한 게 2년 전이다. 삼성생명 주주들은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이득을 이 회장의 다른 남매도 나눠 갖자는 게 이번 소송의 취지다.

그런데 생명보험사 상장 차익을 주주가 독차지 하는 게 과연 옳은가. 좁혀 말하면,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생명 주주들의 '대박'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나와 있다. 지난 2007년,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한국거래소가 마련한 '유가증권 시장 상장 규정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생명보험사가 상장 차익을 보험 계약자에게 배분하지 않고 상장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의 대박은 법적으로 정당하다.

그러나 결론이 나기까지의 과정에선, 많이 달랐다. "생명보험사는 '상호회사(고객에게 소유권과 이익이 분배되는 회사)'라는 속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상장 이익에서 보험 계약자 몫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반론이 더 우세했다. 금감위 안에서는 계약자 대 주주 몫이 7 대 1 또는 8 대 1까지 거론됐었다. 그런데 왜 결론은 반대로 났을까.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던 이동걸 한림대 교수는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사실을 밝혀낸 게 거꾸로 발목을 잡았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가 삼성생명을 겨냥하는 순간, 주변 관료들 대부분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이 교수는 지난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내 적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금감위를 떠났다. 이와 함께 생명보험사 상장 차익에서 보험 계약자의 몫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7 대 1 또는 8 대 1'이 아니라 '0대 10'이 된 것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평가한다. 1990년대 말까지 생명보험사 상품은 모두 배당보험이었는데, 배당보험은 생명보험사가 손해를 보면 보험 계약자가 배당을 덜 받게끔 돼 있다. 보험 계약자가 회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구조다. 일종의 '상호회사' 방식이다. 그런데 상장이익이 생길 것 같으니 '회사는 주주의 것'이라는 논리가 등장했다. 형식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어도, '경제정의'와는 한참 동떨어진 논리다.

삼성생명, 보험금 지급 막으려 고객 정보 불법 확보

상장 논란 당시 삼성생명 등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역시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바가 없다. 신주 발행도 없었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들이 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삼성가(家) 대주주들만을 위한 상장이었다. 이맹희·이숙희·이건희 등 삼성가(家) 피붙이들이 삼성생명 주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이런 과거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아무런 답이 없다.

당시 이동걸 교수가 지적했던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거액의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 몫으로 계상했다'는 점이었다.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이건희 삼성 회장, 이재현 CJ회장 등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후손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삼성가(家) 피붙이들이 지금은 서로 다투고 있지만, 이 대목에선 한통속이었다. 역시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삼성생명이 거둔 막대한 이익, 그 자체다. 이익을 누가 가져가야 할지를 따지기 전에, 따져봐야 할 문제다. 삼성생명 상장 직후인 2010년 5월, <프레시안>은 과거 삼성생명이 고객정보 불법 확보 및 로비를 통해 보험금 지급률을 인위적으로 낮춘 사실을 보도했다. 요컨대 삼성생명이 거둔 이익 가운데 상당 부분은 마땅히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내주지 않은 결과라는 게다. 그리고 이렇게 거둔 이익을 삼성가(家) 피붙이들이 서로 챙기겠다고 싸우고 있다.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기대 성장한 보험산업, 이제 빚을 받아낼 때

재벌가 형제들의 추악한 탐욕, 그것뿐이라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선 조금 다른 접근도 필요하다. 최근엔 보수 진영조차도 복지를 이야기한다. 사회안전망 없는 채 이뤄져 왔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탓이다.

한국에서 삼성생명을 포함한 보험업계의 성장은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빚진 것이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재난에 대한 공적인 안전망이 없으니, 다들 미래가 불안했다. 이런 불안감을 먹고 자란 게 보험산업이다. 주로 연고주의 영업에 기댄 탓에 보험 상품의 실질적인 효용에 대한 분석은 부실했다. 보험금 지급률이 형편없이 낮았다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민영의료보험의 지급률은 40%미만이다. 로또 복권의 지급률이 50%이상, 카지노 슬롯머신 게임의 배당률이 75%이상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보험사들은 그동안 너무 쉽게 돈을 벌었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급률은 무려 168%에 이른다(2009년 기준). 가입자가 낸 것보다 더 받는 구조다. 현행법상 기업이 직장 가입자 건강보험료의 50%를 부담하고, 정부는 이렇게 확보된 전체 보험료 수입에서 총 20%를 다시 국고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더 이상 재벌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버는 수단이 되서는 안 된다. 아울러 공공부문이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서 보험 수요 자체를 줄일 필요도 있다. 국민 입장에선 재벌가 호주머니로 줄줄 새나가는 민간보험료보다는 세금 조금 더 내는 게 차라리 싼 편이다. 정치권에선 최근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도 나오는데, 민간보험을 규제하고 공공보험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민주화'라는 목표에 잘 부합한다.

그리고 우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보험산업의 성장이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빚진 것이라면, 우린 보험재벌들로부터 그 빚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라고. 결국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갔다. 삼성생명 지분 더 갖겠다고 싸우는 삼성가(家) 피붙이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물려야 한다. 이걸 제대로 감시하고, 문제가 있다면 차근차근 따져 묻는 일.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다.

▲ 2008년 특검 수사 이후 경영퇴진 선언을 할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 이 회장이 당시 약속했던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이행되지 않았거나 번복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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