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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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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게 아니라고?" [복지국가SOCIETY] 일부 친노 세력의 우려스러운 총선 평가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밤이 깊어질수록 SNS 공간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떤 분들은 울기 시작했고, 그리고 어떤 분들은 너무 속상해서 술을 먹고, 그리고 새벽 늦도록 잠이 안 온다는 분들이 많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선거 결과였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의 에너지가 강력했었다.

국민이 '왕'인 정치체제, 무능+오만+탐욕스러운 야당을 심판하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역설적으로 이번 총선은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한" 선거였다. 진보-보수의 기준은 단지 이념적-정치적 입장에 의한 구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더 중요한 다른 구분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무능과 유능, 오만과 겸손, 탐욕과 성실의 구분법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법들을 추가하면 '경우의 수'로 볼 때, <무능+오만+탐욕+진보의 조합>도 성립 가능하고 <유능+겸손+성실+보수의 조합>도 가능하다. 물론 경우의 수는 좀 더 다채로울 것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무능+오만+탐욕+보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노했고,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내내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투표를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의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복합 비교'하기 시작하자,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우리 국민의 눈에 박근혜 대표에 비해서 민주당이 훨씬 더 <무능+오만+탐욕+진보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심판'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본디 국민을 왕(王)으로 받드는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국민의 눈'으로 생각해 본다면, 단지 진보라는 이유만으로, 반MB를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무능+오만+탐욕스러운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오히려 '주권자인 왕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무능+오만+탐욕'은 사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집권 기간 내내, '민주화 운동권'들을 심판했던 서민들의 울분이기도 했다.

총선은 '패배'가 아니라는 친노 일부의 '매우 우려스러운' 움직임들

우리가 총선 평가를 하는 이유는 어떤 정파와 개인의 잘잘못을 사적으로 비난하기 위함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야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엇을 성찰할 것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대안적' 방향성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1 총선 결과 평가에서 많이 등장한 것은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과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 부재 등에 대한 비판이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지만, 다른 곳에서 많이 언급되었기에 본 글에서는 생략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번 총선이 '패배'가 아니며, 총선 결과로 볼 때 대선은 충분히 해 볼만하다는 견해를 밝히는 분들도 있다.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친노 인사 중의 한명인 조기숙 교수 같은 분이 대표적이다. 조기숙 교수를 비롯하여 총선이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논거를 들고 있다.

△첫째, 범보수 VS. 범진보개혁 세력의 정당투표 합계를 계산하면 12월 대선에서도 '해 볼만' 하다 △둘째, 야권연대는 성공했으며 특히 야권연대로 비수도권 지역도 '그나마' 선전했다. △셋째, 수도권은 압승하고 다른 비수도권 지역은 패배했으니 대선에서는 비수도권 후보를 통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러한 논거들은 타당할까?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 정당의 '기본 지형'과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의 '결정적인' 차이

위와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한국 정당의 '기본 지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범보수 세력의 최소 고정표와 범진보개혁 세력의 최소 고정표는 얼마나 될까? 이것은 그 세력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의 선거 득표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탄핵과 차떼기로 위기에 몰렸던 2004년 총선이다. 이때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득표 합계가 40%였다. 진보개혁 세력이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2007년 대선인데, 이때 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의 합계가 35%였다. 즉, 한국의 범보수 VS. 중위 집단 Vs. 범진보개혁 세력의 기본 지형은 40 : 25 : 35라고 할 수 있다. 대선에서 1:1 대결을 가정하면 범보수는 10% 이상을, 범진보개혁 세력은 15% 이상을 추가하면 이기는 게임인 셈이다. 이를 기본 자료로 총선 결과를 평가해보자.

첫째, 정당득표의 합계를 먼저 살펴보자. 2012년 4.11 총선에서 범보수 정당의 합계는 46%이고, 범진보개혁 정당의 합계는 46.8%이다. 조기숙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총선은 '패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2010년 지방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잘못된 주장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래 [표] 참조.)


2010년 지방선거에서 범보수 세력의 정당득표 합계는 44.8%였다. 반면 범진보개혁 세력의 정당득표 합계는 51.1%였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의 '변동치'만을 감안하면, 범보수의 경우 0.9% 증가했고, 범진보개혁의 경우 4.3% 감소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이번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 총선은 "반MB 심판의 바람"을 전제로 치러진 선거인 반면, 12월 대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 총선의 경우 박근혜 대표는 "반MB라는 강력한 부담 덩어리"를 등에 짊어지고 치룬 선거였던 반면, 12월 대선은 MB 심판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선거라는 점이다.

즉, 야권과 박근혜 대표의 새누리당의 총선 대결은 야구로 비유한다면 1회 초 0:0에서 시작한 게임이 아니라, 출발선상 자체가 6회 초 5:0에서 시작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이번 총선 결과에서 얻은 야권의 표는 자신들의 실력 이외에도 반MB 심판 덕택에 '덤으로' 얻은 표가 보태져있다. 그렇게 볼 때, 12월 대선은 '매우 우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둘째, 야권연대가 성공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그런데 이 주장은 세 번째 문제인 수도권의 압승과 비수도권 지역, 예컨대 강원-충청-영남의 '전멸'에 가까운 비대칭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는 이번 총선 평가에서 많이 간과되고 있는 부분인데, 특히 12월 대선을 '어떤 구도'로 설계해야 하는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한다.

야권연대의 득과 실 - '반MB 정치동맹' 혹은 '안보 불안 정치동맹'

결론부터 말하면, 야권연대는 수도권의 압승 요인이자 동시에 비수도권 지역의 패배 요인이었다. 말 그대로 '동전의 양면'이었다. 이에 대한 하나의 판단근거로 우리는 총선 직후인 4월 13일 발표된 "총선의 최대 이슈"에 대한 리얼미터의 조사 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다.

그런데 이중에서 '야권에 유리한 이슈'는 경제민주화 공약과 민간인 불법사찰이었는데, 합계는 41.0%이다. 나머지 이슈들은 모두 '야권에 불리'하였는데, 합계는 51.5%이다. 한미FTA 폐기와 제주해군기지 논란이 '안보 불안'을 증폭시킨 이슈였다면,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과 이정희 의원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 및 그에 대한 야권의 대응은 '오만한 이미지'를 증폭시킨 이슈였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누적되어 유권자에게 "안보 불안을 조장하는 오만한 정치세력"이라는 총체적 이미지를 준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야권연대는 수도권에서는 '반MB 정치동맹'으로 작동했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안보 불안 정치동맹'으로 작용한 것이다. 수도권과 호남의 경우, 상대적으로 반독재 민주화의 원초적 경험이 강력하기에 야권연대의 '안보 불안 정치동맹'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감각하게 반응했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안보 불안 정치동맹'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야권연대에 대한 심판 여론이 더욱 강하게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정책 차별화'가 이뤄지지 못한 근본 이유

이번 총선이 있기 얼마 전까지 한국사회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담론이 활발했다. 위와 같은 담론들은 모두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이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총선 국면이 본격화되자 사회경제적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이명박근혜'이라는 신조어가 전면에 부상했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들은 마치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 개혁입법 논란처럼, 모두 '민주 VS. 반민주' 구도의 복고주의적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왜 막상 선거 국면이 본격화되었을 때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담론은 사라졌을까? 왜 정책적 차별화는 부재하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실제로 '차별화되는'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그간 민주통합당의 대응이 '레토릭'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표 역시도 '레토릭' 수준에서 대응하면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통합당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정책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천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은 거의 대부분 탈락시키거나 사지(死地)로 내보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심지어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종종 착각하는데, 하나의 정책은 단지 '제도의 도입'을 본질로 하지 않는다. 정책은 본질적으로 어떤 계급-계층을 '대표'하는 문제이며, 이러한 대표성을 통해서 사회적 갈등을 동원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정치적 인격체(=정치인)의 형태를 통해 구현되며, 정치철학이 반영되는 총체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정책을 단지 '발표'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는 사회적 갈등도, 계급-계층적 대표성도, 정치적 인격체도 사상(捨象)되어 있었다. 안철수 식으로 표현하면 "영혼이 없는" 정책이었던 셈이다. 왜? 민주통합당의 수준이 결국 '레토릭' 복지국가와 '레토릭' 경제민주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진영론과 상대방의 악마화 - 비전 없는 친노와 486 세력의 자기정당화

그럼 왜 야권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이러한 질문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많이 나왔던 '진영론'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진영론은 내편은 정당하고, 상대편은 문제가 있다는 발상을 전제한다. 그래서 진영론적 사고방식은 상대방을 '악마화'하려고 노력한다. 왜 야권과 야권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진영론적 사고방식과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사고를 작동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생각해보면, 유난히 강력했던 한국사회의 반독재 민주화 체험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2000년 '젊은 피 수혈'의 일환으로 정치권에 유입되었던 '전대협 동우회' 출신들, 그리고 2002년 노무현의 집권과 2004년 탄핵파동 속에서 열린우리당의 집권은 모두 '민주화 운동권 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함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현재 민주통합당의 주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친노+486세력'이다.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친노 집단과 486 집단에게 '자기 정당화'의 원초적 근거였던 셈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군부독재의 후예라는 발상, 자신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라는 발상은 정치적 시야를 항상 '과거'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도 고작 '전술적' 수준에 제한될 뿐이다.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혁신'에 투자하게 될 동기를 근본적으로 반감시킨다. 왜냐하면 모든 혁신이란 본질적으로 "상대방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승인될 때만 비로소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강력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원초적 체험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개혁 실패의 본질적인 이유였으며, 그리고 여전히 친노와 486이 '낡은 과거'에 얽매이게 만드는 본질적인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이명박-박근혜는 군부독재의 후예라는 비난을 통해 자기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자신과 한때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공천하는 '나눠먹기 공천'을 마치 '민주화 세력에 대한 공천'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면, 심지어 소위 진보개혁 언론 매체들, 학계의 진보개혁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조차도 이러한 진영론적 사고방식과 상대방의 악마화에서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요인들이 맞물려 '좋은 정당'을 위해 필수적인 '좋은 정치비평'이 잘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안보는 보수, 사회경제는 진보"가 진짜 진보다

한국 현대사는 냉전과 한국전쟁, 군부독재에 의한 발전국가, 그리고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거쳤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러한 현대사의 아픔이 '원초적 체험'으로 각인되어 있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크게 보면 △한국전쟁의 체험(=안보) △박정희식 경제성장(먹고 사는 것) △영남(=지역갈등) △부유층(=계급)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이중에서 한국전쟁의 체험과 박정희식 경제성장은 진보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찰과 재평가가 필요한 지점이다.

보수언론의 냉전적 시각과는 선을 그어야 하겠지만, '중위 투표자'의 관점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안정감과 신뢰감'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진보개혁세력은 안보 문제를 '포용'하는 것을 통해 안보 이슈를 '털어버리는'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회경제적' 이슈를 전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고,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더 진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전에 안철수 교수가 간명하게 정리했던 "안보는 보수, 사회경제는 진보"라는 테제야말로 오히려 가장 '진보적인' 우리시대의 방향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대선 승리를 위해서, 반제-반미 민족해방론을 아직도 자신의 노선으로 간직하고 있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의 여부까지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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