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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국가폭력, 그리고 SKY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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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국가폭력, 그리고 SKY Act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노동3권 보장은 국가의 책임"
1.

참여연대에 입사하기 전인, 90년대 초반 나는 잠시 서울 시내의 어느 노동정책대학원에 적을 두고 두 학기를 다닌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현실과는 상당히 다른, 생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읽어야 했던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은 노동경제학 교과서는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국가가 보장해야 할 민주적 기본권이라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계약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도 근로계약의 합리적 요건을 법률로 규정하는 것 외에 별도로 노동3권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본디 시장에서는 불가피하게 자본과 노동 간의 힘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항할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수단을 국가제도로 보장하고 국가기구가 나서서 그러한 집단적 권리가 현실에서 실현되도록 지원해야 마땅하다. 국제법이나 우리나라 헌법은 노동3권을 시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부를 정부기구의 하나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는 마땅히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구조적 취약성을 인식하고, 노동자의 편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제도와 기구로 지원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한 사회에서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측, 다시 말해 개별자본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책임인 셈이다.

하지만 내가 20년 전 노동경제학 교과서에서 발견한 '상식'은 오늘날에도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노동부에서 일하는 후배와 만났는데, 그 친구는 왜 노동부 동료들이 노동조합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끌끌 찼다.

이 모든 문제점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 쌍용차 사태다. 쌍용차 정리해고와 파업진압 과정에서 국가권력은 정리해고에 내몰린 쌍용차 노동자들을 노동3권을 지닌 민주국가의 주권자로 대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 갈등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쌍용차 노조 77일 파업의 전 과정은 국가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쌍용 측 사용자는 '먹튀 자본'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상하이 자동차였는데, 국가는 그들의 탐욕을 관철하기 위해 쌍용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억압하고 진압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노동부는 결코 쌍용자동차 노조의 편이 아니었다. 쌍용노동자들이 국가로부터 유일하게 받은 것은 단전과 단수, 헬기와 경찰특공대, 테이저건과 고무총탄이었다.

그리고 국가는 쌍용차 사태의 모든 책임을 노동3권을 실현해보려고 했던 파업노동자들에게 몽땅 전가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6월 25일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과정에서 다친 회사 쪽 직원 12명과 경비업체 용역 3명의 치료비 2억6500여만원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58명의 노동자가 물어내라는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세상을 등진 일로 충격을 받은 국회에서 쌍용차 정리해고와 파업진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니 마니 하는 논의를 하고 있을 바로 그 때였다. 이 보다 앞서 지난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쌍용차 파업 과정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노조측 부상자에게 치료비로 지급된 보험급여를 환수하겠다고 밝혀 물의를 빚었다. 실업에 부상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병원비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파업 당시, 그리고 진압과정에서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형사처벌 되었다거나 공공기관의 제재에 직면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이 모든 일들이 지난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 22명이 세상을 등진 이유를 설명해 준다. 단지 파업에 동참한 후 생업을 잃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 그리고 심지어 정리해고의 광풍 속에서도 요행히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도 자살 혹은 속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3년간 그들이 국가와 회사,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아온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상처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국가가 그들을 어떻게 취급해 왔고 그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와 삶의 의지를 파괴해 왔는지를 말이다.

2.

2011년 초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살을 에는 칼바람을 뚫고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갔을 때, 적지 않은 이들이 한진 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뿐만 아니라, 쌍용차, 그리고 용산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던 것 같다. 용산 남일당 망루를 휘감던 죽음의 화염, 쌍용에서 일어났던 5월 광주를 연상케 하는 살인적인 진압작전과 쌍용노동자들의 영정행렬이 85호 크레인의 이미지와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더 이상 죽어선 안 된다!', '김진숙을 살려야 한다!.', '살아서 내려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람들을 85호 크레인으로 불러 세웠다.

그 후 85호 크레인은 우리 시대에 쫓겨나고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질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에 올라탔고, 끝내 작은 희망의 결실을 이루어냈다.

같은 맥락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한진 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와는 무관해 보이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85호 크레인으로 모인 이들에게 한진과 쌍용, 그리고 용산과 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우리시대의 쫓겨나는 이들의 고통과 관련된 문제였고, 궁극적으로 주민과 노동자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아내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거꾸로 선 국가권력의 폭력에 맞서는 일이었다.

3.

지난 6월 28일 정동 프란시스코 회관에서는 SKY 공동행동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강정마을 주민, 용산 유가족, 그리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각계인사와 사회단체 대표자 150여명이 시국회의를 열고 SKY 공동행동을 선포했다. 쌍용, 강정, 용산의 앞 자음을 딴 SKY 공동행동은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강정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 용산참사 진상규명에 동의하는 이들의 공동행동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문정현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함께 낭독한 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SKY 공동행동 참가자들은 "쌍용, 강정, 용산은 우리 시대, 특히 이명박 정부 이래 수년간 이 나라 곳곳에서 한층 가혹해진 자본의 횡포와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현장"으로서 "고통의 현장으로부터 시민들의 자구적인 연대를 시작하려 한다"고 선언했다.

SKY 공동행동 출범선언문은 "경제성장과 개발이란 이름으로 혹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도리어 삶의 터전을 잃고 안전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다름 아닌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고통이며 그들의 평화가 곧 우리의 평화"라고 말한다. 그래서 쫓겨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꺼져가고 죽어가는 모든 생명의 이름으로 "노동자가 하늘이다! 구럼비가 하늘이다! 쫓겨나는 사람들이 하늘이다! 우리가 하늘이다! 모든 생명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하고 "이 땅에 함께 살기 위한 시민들의 소박한 염원들이 만들어가는 자발적 연대행동"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SKY 공동행동은 쌍용, 강정, 용산 문제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참가자들은 "쌍용, 강정, 용산에서 시작하여 전국을 돌며 현장의 고통에 기꺼이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실제로 SKY 공동행동은 공식 출범 보름 전인 6월 14일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시사회에서 사실상 시작되었고, 7월 7일부터 14일까지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전국 각 지에 흩어져 힘겹게 싸우고 있는 장기분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순례에는 강정마을에서 날아온 문정현 신부와 평화유랑단도 함께 했다. SKY 공동행동은 오는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제주 전역을 순례하는 강정평화대행진에도 쌍용노동자, 용산유가족들과 더불어 함께할 것이다. 오는 10월 13일에는 서울에서 SKY공동행동이 주관하는 대규모 집회를 기획하고 있다. 여기서 쌍용, 강정, 용산 문제에 대한 대책을 촉구함과 아울러 갈수록 심해지는 자본의 횡포와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대책을 촉구할 것이다.

SKY 출범 선언문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이 가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웃고 울고 즐기고 분노하며 공감할 수 있는 공동행동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연대할 것입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춤출 것입니다. 쌍용, 강정, 용산에서 시작하여 전국을 돌며 현장의 고통에 기꺼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즐겁고 따뜻한, 가난하고 용감한 연대에 각계각층 시민들이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호소합니다."

▲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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