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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안철수와 경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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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안철수와 경쟁하길 [데스크 칼럼] '역사의 상처' 못 보는 박근혜, '현실의 상처' 감싸주겠나?
기자치고는 특이하게 이공계 전공이다. 그래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대표적인 게 법률용어에 약하다는 점이다. 이런 내게 삼성 비리 사건 취재는 유익한 기회였다. 삼성에버랜드 CB헐값 발행 사건, 삼성SDS BW헐값 발행 사건 등을 취재하면서 '회사'의 법률적 개념을 곱씹을 수 있었다.

상법은 회사를 여러 형태로 구분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낯익은 게 주식회사다. 우리가 이름을 아는 기업들이 대부분 주식회사다. 여기엔 '유한책임'의 원리가 적용된다. 내가 투자한 회사가 망하면,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이 깡통이 될 뿐이다. 더 이상의 책임은 없다. 다른 재산을 팔아서 회사의 빚을 갚아주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유한책임' 개념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투자자의 위험이 줄어든 탓에 대규모 자본축적이 가능해진 것이다. 철도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 주로 혜택을 누렸다.

'유한책임'의 기업 세계, '무한책임'의 정치 세계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업에선 굳이 자본 조달만이 '유한책임' 원리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기업 활동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물론, 상법 상 '유한책임' 개념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예컨대 기업인은 직원을 고용할 때 그의 삶 전체에 대해 책임질 필요는 없다. 노동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직원과 교섭해서 정한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면 그만이다. 직원이 퇴근 후 치안이 엉망인 밤거리를 걷다가 강도를 만났다면, 그건 직원 책임이다. 또 그 회사 직원들이 유난히 결혼을 늦게 하거나 출산율이 낮아도 기업인을 탓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보호법, 공정거래법 등의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정한 가격에 제품을 팔면 그만이다. 야구 방망이를 팔았는데, 누군가 그걸로 강도질을 했다고 해서 기업에 책임을 묻는 일은 없다.

기업인이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 종종 혼란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이 '유한책임'의 세계라면, 정치는 '무한책임'의 세계다. 세금 한 푼 안 내던 극빈층이 어느 날 굶어죽는다면, 사람들은 정치인을 욕한다. '유한책임'의 세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업은 제값 내고 제품을 산 소비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한 주제에'라고 생각한다면, 전형적인 기업인 마인드다. 이런 생각에 평생 젖어 있던 이들이 '무한책임'의 정치세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남이 지은 밥을 먹었으면 남을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기업보다 오래된 게 정치다. 유한책임 회사가 처음 '발명'된 것은 16세기였다. 상용화 된 것은 19세기 후반 이후다. 하지만 정치는 인류가 동굴에서 집단생활을 할 때부터 있었다. 지금도 원시 공동체의 추장은 비가 안 와도, 사냥감이 없어도 '무한책임'을 진다. 이는 인류가 '유한책임' 원리보다 '무한책임' 원리에 더 익숙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걸핏하면 '대통령 탓', '국회의원 탓'을 하는 건 유전자에 새겨진 습속인지도 모르겠다.

봉건사회인 조선의 임금들도 흉년이 들어 굶는 백성들이 많아지면 수라상에 반찬 수를 줄였다. 반찬 한두 가지 줄인다고 식량난이 해소될 리 없다는 걸 설마 몰라서였겠는가. 그렇지 않다. 임금도 결국 정치인이고, 정치인이 '무한책임'을 감당하는 한 방식이었을 따름이다. 이는 건국 초기부터 철학적으로 뒷받침된 방식이다.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은 <경제문감>에서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선비의 역할을 설명한 대목인데, 정치인의 역할로 바꿔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정치인은 직접 땀 흘려 벼를 기르거나 옷을 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생산한 쌀과 옷을 취한다. 어찌 보면, 밥만 축내는 존재다. 농민은 그저 묵묵히 밭을 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자신의 쓸모를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정도전의 설명을 빌자면, 정치인이 쓸모를 입증하는 것은 '책임을 지고 근심을 품는 일'을 통해서다. 그리고 이런 책임에 경계가 있을 리 없다. '무한책임'이다. 이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

박정희 후광만 이용하고, 책임은 외면한다?

현대의 정치인 역시 '무한책임'이다. 임기 중에 저지른 잘못은 퇴임 후에도 욕을 먹는다. 아니 죽어서까지 비난을 산다.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그들이 잘못 만든 정책과 법률은 국민 하나하나의 평생을 망가뜨린다. 기업처럼 A/S를 통해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원히 비판받는 수밖에 없다. 그게 무한책임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최근 들어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동북아 정세, 날로 깊어가는 세계 경제 위기 등을 생각하면, 타당한 말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앞을 내다봐야 한다. 뒤를 돌아볼 틈이 없다.

하지만 박 후보의 이런 발언들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면, 그건 용납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지은 밥을 먹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박 후보의 오늘은 아버지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지금 받고 있는 박수갈채가 아버지의 후광 때문이라면, 아버지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게 옳다. 게다가 박 후보는 어머니가 사망한 뒤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 왔다. 당시 쌓은 국정 경험을 지금도 자랑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산으로부터 덕만 보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 안 될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후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수장학회 사무실에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써준 휘호라고 한다. 박 후보가 지금 마시는 물이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라면, 그 근원에 있는 피비린내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게 못마땅하면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미법도 어민들의 망가진 삶, 누가 책임지나?

지난주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금태섭 변호사가 폭로한 안철수 교수 협박 논란이다. 언론의 관심도 여기에만 쏠렸다. 그러나 그 사이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두 건 있었다. 모두 박정희 정권과 관계가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일 '미법도 간첩 사건' 피해자 정 모 씨와 그 가족에게 25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강화도 근처의 작은 섬인 미법도 주민들이 박정희, 전두환 두 군사정권에 걸쳐 뒤집어 쓴 간첩 누명은, 이로써 완전히 씻겨졌다.

발단은 1965년 10월 북한 경비선이 서해 해상경계선 근처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정 씨를 비롯한 미법도 주민 100여 명을 끌고 간 사건이다. 끌려간 주민들은 그 다음 달에 판문점을 통해 무사히 돌아왔다. 경찰은 이들의 행적을 조사한 후 모두 풀어줬다. 그리고 별 일 없이 11년이 지났다. 1976년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납북됐던 사람 중 한 명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이듬해에는 두 사람이 간첩으로 지목됐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공안몰이는 계속됐다. 1981년 또 다른 사람이 간첩으로 몰렸다. 당시 안기부는 마치 주머니 속에서 곶감 빼먹듯 미법도 주민 가운데 매년 한두 명씩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희생양이 이번에 배상 판결을 받은 정 씨였다. 정 씨는 1982년 안기부 남산 대공분실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정 씨는 13일 만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안기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1년 뒤 정 씨를 다시 끌고갔다. 38일 동안의 불법 구금. 물고문을 포함한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미리 혐의를 짜맞춰놓고 진행하는 수사에 견딜 재간이 없었다. 정 씨는 결국 허위자백을 했고, 198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 씨의 누명이 완전히 벗겨진 것은 그로부터 27년 뒤였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정 씨에게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번 재판은 그에 뒤따른 민사재판이다. 그리고 정 씨는 여기서 이겼다. 그러나 고문으로 망가진 몸, 감옥에서 보낸 세월을 보상받을 길은 없다.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세상을 뜬 故 김봉철 씨

지난 7일에는 5.16 쿠데타 당시 체포돼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고(故) 김봉철 씨 유족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다. 고인은 1960년 6월 6·25 전쟁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유골 수습에 참여했고 1960년 7월 밀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경남지역 피학살자 합동위령제에 상주 대표로 참석했다.

고인은 5·16 쿠데타가 발생한 지 이틀 만인 이듬해 5월18일 영장 없이 체포됐으며 1961년 11월 기소되기까지 177일간 구속됐다. 이어 그는 1961년 제정된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에 따라 설립된 혁명재판소로 넘겨져 1심에서 무기징역을, 2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65년 12월 형 집행이 면제돼 석방됐다.

하지만 그는 살아생전에 누명을 벗지는 못했다. 그는 5.16쿠데타 이후 25년 뒤인 1986년 사망했다. 그가 누명을 벗고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지난 2010년 7월 부산고법에서다.

박근혜, 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안철수와 경쟁하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대목을 다시 쟁점화하는 데 대해서는 진보 인사들 중에서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꽤 있다. 지금 이 순간 눈 앞에 펼쳐진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게다. 여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

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역사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는 정치인이 현실의 상처인들 진지하게 보듬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이미 진실이 밝혀지고 법원 판결까지 난 억울한 사안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 그조차 못하는 데, 현실의 억울한 사연들을 챙긴다? 전자는 결단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후자는 돈과 시간이 든다. 후자가 훨씬 어렵다. 쉬운 일도 못하는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박근혜 후보 측 공보위원이 안철수 교수의 과거 기업활동을 캐고 다녔다고 해서 요즘 말이 많다. 박 후보 측은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안철수 교수가 지닌 모범생 이미지가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자극적인 네거티브 폭로 한방이면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복지를 말하고 경제 민주화를 말하던 박 후보 측이 치졸한 네거티브 공세에 목을 매는 모습은 사실 볼썽 사납다. 박 후보 측이 진정 승리를 원한다면, 안 교수와 비교되는 박 후보 측의 강점을 다른 데서 찾는 게 낫지 않을까.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안 교수는 누가 뭐래도 기업인이다. 사회 생활의 대부분을 '유한책임'의 기업 세계에서 해 왔다. '무한책임'의 정치 세계에선 이방인에 가깝다. 반면, 박 후보는 '무한책임'의 세계에서 나고 자랐다. 안 교수와 비교할 때 강점이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네거티브 공세는 이쯤에서 접으면 어떨까. 대신 역사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안 교수를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첫 걸음은 아버지 시대에 대한 냉철한 평가다. '박정희 시대'를 떼놓고는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자연인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이기도 하다.

흔히 안철수 교수더러 대권을 거저 먹으려 든다고 비아냥 댄다. 그러나 박 후보 역시 아버지 시대의 후광을 거저 이용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후광에 가리워진 불편한 진실까지 공정하게 평가하는 게 책임있는 정치인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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