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없는 몸짓이 더욱 사무치는 요즘이다. 초겨울의 길목에서 강정에서 서울까지 행진을 하고 있는 무리가 있다. "우리가 하늘이다"면서 '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무리가 지난 10월 5일 제주도 강정마을을 출발했다. 행진단의 목적지는 11월 3일 서울 시청광장이다. 행진단은 가는 곳마다 그간 짓밟히고 무시당해 온 숱한 삶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행진단이 "하늘"이라 부르는 이들의 삶은 참 고단하다. 송전탑과 골프장 막아서느라 주름골이 깊어진 시골 할매와 할배들, 여기저기서 쫓겨나고 밀려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리해고자들, 4대강 사업이다 핵발전이다 해서 전국적인 삽질에 할퀴고 파헤쳐진 뭍 생명들이 행진단이 말하는 "하늘"이다. 걸을수록 "하늘"의 증언과 요구가 늘어가기에 행진단의 마음의 짐도 무거워지고 있다.
이 행진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몸짓의 역사가 어디 하루 이틀일까? 행진 당사자들에게는 고단하고 죽을 것 같았을 경험이었을 것이나 강요된 침묵을 함성으로 토해낸 행진의 역사가 비뚤어진 세상의 틀을 고치고 판을 엎어왔기에 지금의 내 삶이나마 존재하는 것일 게다. 모든 이의 삶에 기여했으나 기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행진이 태반일 것이다. 그나마 손에 잡히는 자료들로 접할 수 있는 그런 몸짓의 기록들을 보며 힘을 얻어 보려 한다.
우선 행진은 아파서 하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개인적인 치유를 기대하지 않기에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일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일례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는 1932년 '보너스군대행진'이 나온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돌아온 참전군인들은 1924년에 정부채권 형태로 1945년부터 단계적으로 지급될 예정인 "보너스"를 발급받았다. 하지만 직업도 없는 그들에게 대공황의 한파가 닥쳤고 가족들은 굶주렸다. 먼 미래로 약속된 보너스는 의미가 없었다. 전국의 참전군인들은 살기 위해 채권을 당장 바로 상환해줄 것을 요구하는 조직을 만들고 워싱턴으로 집결하여 그 요구를 외치는 행진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너스 군대"라고 불렀다. 단신으로나 혹은 가족을 동반한 그들은 열차에 무임승차를 하거나 고물차를 몰거나 갖은 수단을 동원해 워싱턴으로 모여들었다. 2만여 명이 모였으나 국회는 그들을 외면했다. 이에 그들은 국회의사당이 마주 보이는 강변에 농성장을 차렸다. 쓰레기 하치장에서 긁어모은 재료들로 얼기설기 임시거처를 만들고 온 식구가 같이 버텼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그들에게 대통령은 군대를 보내 농성텐트를 불태우고 총질을 해댔다. 사망자가 생겼고 천 여 명이 최루탄에 다쳤다. 실업과 굶주림이라는 어려움에 대해 손놔버린 정부의 태도와 절실한 요구에 폭력으로 대응한 행위는 그해 11월 선거에서 효력을 발휘해 '뉴딜'이라는 개혁을 내세운 루즈벨트 정권의 탄생을 낳았다. '보너스 군대의 행진'에 대해 한 작사가는 <이보게, 10센트(약 100원)짜리 하나 줄 수 있나?>라는 가사를 써서 그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이 노래가사에 대해 그 작사가는 이런 설명을 했다.
"이 노래에서 남자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나라에 투자를 했다. 내 배당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 순간적인 비애 이상인 거지요. 이 노래에서 그 남자는 거지에 불과한 존재가 아닙니다. 질문을 던지는 존엄한 인간 -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얼마간의 분노를 느끼는 인간인 것입니다."(도서출판 시울, <미국민중사> 중에서)
이 글에서 나는 한 인간이 또 여러 사람이 '아프다'고 말할 땐, 거기에는 불만과 투정을 넘어선 질문과 분노가 담겨있다고 느꼈다. 생명평화대행진단에는 어린 아들을 동반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있다. 행진 중반 지리산에서 열린 민회에서 은행나무 아래 놀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봤다. 그의 동료는 서울 대한문에서 열흘이 넘는 단식농성 중이고 남들 가는 단풍 나들이 대신 온 식구가 행진에 나선 날, 부당하게 정리 해고된 노동자의 눈빛에 담긴 질문과 분노에 응답할 자들은 딴 일로 바빴다.
행진은 우리가 함께 살고픈 세상을 기획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설계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의 가치를 내놓고 논쟁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이게 정치지, 뭐가 정치냐고 묻는 일이다.
일례로 인권에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한 두 구절 외워서 읊을 수 있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은 거의 다 행진 중에 나온 것이다. 그의 명연설은 멋진 수사로 가득찬 개인의 독백이 아니다.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육체에 앞서 영혼을 미리 죽이는 모욕과 굴욕을 비처럼 맞으면서 행진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함께 설계한 '다른' 세상에 대한 기획이 킹의 연설로 표현되었을 뿐이라고 본다.
"우리는 계속 행진할 것입니다 …… 사회적, 경제적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모든 흑인 거주지역이 해체되고, 흑인과 백인이 품위 있고 안전하며 위생적인 집에서 나란히 살게 될 때까지, 인종차별적인 주거문제에 대항해 행진합시다. 흑백이 분리된 열등한 교육의 자취가 과거의 일이 되고, 사회적 치유라는 차원에서 흑인과 백인이 교실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게 될 때까지, 흑백분리 학교문제에 대항해 행진합시다. 어떠한 미국인 부모도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의 식사를 거르지 않게 될 때까지, 빈곤 문제에 대항해 행진합시다. 어떠한 굶주린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를 찾아서 우리의 도시와 마을을 헤매지 않게 될 때까지, 빈곤 문제에 대항해 행진합시다. …… 인종을 이용하여 괴롭히는 이들이 정치의 장에서 사라질 때까지, 투표권 문제에 대항해 행진합시다. …… 우리를 빠른 해결책으로 쉽게 이끌어줄 넓은 고속도로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위드북스, <마틴 루터 킹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 중에서)
이 연설은 1965년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을 마무리한 연설이다.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린 미국 셀마에서는 흑인의 투표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살해와 구타와 투옥이 이어졌다.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사실을 온 나라에 알리고 싶었던 사람들은 폭력이 자행된 길을 따라 행진을 감행하여 주 의회 의사당 계단에 도착했다. 절대 못 갈거라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머뭇거림에도 행진을 해낸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려는 세상에 대한 기획을 킹의 연설로 선포한 것이다.
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돌덩어리가 아닌 혈이 뛰는 사람들이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대다수가 대선에 목매고 있고, '현실성'있고 '실효성'있는 '계산'이 나오는 시합에 끼려하고, 진보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밟히고 있는 그런 때에 '감행'한 행진이다. 그러다 보니 '걸어서 뭣하겠느냐'는 회의에 찬 볼멘소리도 나온다. 쌍용차며 현대차 비정규직이며 하나같이 맘 바쁘고 다급한 사안들 천지인데 '우리가 하늘'이고 '생명 평화'라는 소리가 가당찮게 들린다는 의견도 많다. 후보단일화 요구나 대선캠프 공약과 관련된 정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래서 부르트고 젖는 것은 고단한 발뿐만이 아니라 행진단의 마음이다. '나는, 우리는 왜 걷고 있는 것일까?'를 걸음걸음마다 묻고 있다. 눈앞의 공약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고 만들어야 하는 삶의 가치를 얘기하자는 과제에 대해 행진단에 참여할 만한 근성의 근본주의자들조차 고전하고 있다. 가치에 앞서 효율성과 타산성을 따지는 타성을 우리부터 깨보자며 걷고 있다.
행진은 안 듣고 무시했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몰랐던 '연대'라는 단어를 깨닫게 해 준 사건 중 하나가 청소노동자들의 행진이다. 2010년 6월의 '제1회 청소노동자 행진'은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는 선언으로 많은 이들의 눈을 뜨게 해줬다. 제가 몸담고 살고 일하는 건물과 오가는 숱한 곳에서 꼭 필요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유령" 취급했던 사회의 때 묻고 찌든 창에 걸레와 빗자루를 문지르고 휘둘러준 행진이었다.
"우리는 청소 노동자입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하루 종일 건물 곳곳을 쓸고 닦지만 석면가루 날리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곳에서 찬밥을 먹는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꼭 필요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하루라도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쓰레기로 넘쳐납니다.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가족들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업을 말하기 힘들었던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우리를 유령으로 만든 사회라는 것을. 이제 우리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당당히 말합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닙니다.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 우리의 행진은 오늘 이곳 마로니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또 다른 건물에서도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밥과 장미의 권리'를 요구하는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진은 약속입니다. 멈추지 않고 행진하는 우리는 함께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우리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우리에게 밥을, 그리고 장미도' 우리의 행진은 단지 오늘 시작될 뿐입니다."(2010년 6월 5일, <청소노동자 행진을 시작하는 우리> 선언문 중에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밥과 장미의 권리를 요구하는 우리들의 행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 100년 전 미국에서도, 1978년 동일방직에서도, 2007년 이랜드에서도 우리는 함께 행진했습니다. 그 수많은 행진이 오늘 우리의 행진을 만들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2011년 6월 4일, <제2회 청소노동자 행진, 밥과 장미의 행진 선언문> 중에서)
내가 서울의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언론에 오르내릴만큼 '큰' 사안이 되거나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열띠게 퍼뜨리는 사안 정도에만 눈길이 가는 법이다. 그런데 비슷한 고통이지만 알려지지도 들려지지도 않는 사건과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임대주택 건설업자가 부도를 내면서 보증금도 못 돌려받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 사람들부터 댐이다 골프장이다 해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뺏기게 된 사람, 이름을 듣도 보도 못한 회사와 공장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쫓겨나거나 용역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행진으로 모인다. 전국 구석구석에서 그런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자체가 행진의 역할이다. 경청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약속보다 훨씬 큰 힘이다. 말하는 사람은 천지인데 듣는 사람은 너무 적다. 행진은 '다들 먼저 듣자'고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행진은 우리의 당면 과제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의 당면 과제는 서로의 고통을 따로 외치지 않고 그 고통의 공통성을 발견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야 같이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너무 당연하다.
1997년 봄, 유럽에서는 '실업과 불안전 고용과 사회적 배제에 저항하는 유럽대행진'이 있었다. 이 행진의 주축은 실업자 조직이었다. 유럽의 각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유럽정상회담이 열리는 암스테르담을 향해 유럽을 횡단했다. 그들은 걷고 노래하고 토론하고 기습점거를 하며 행진했다. 이 행진을 전후해 숱한 선언문이 쏟아졌는데, 그중 이탈리아 청년조직이 제출한 선언문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조직들, 노동조합, 정치정당, 청년 그룹, 생태주의자, 민주주의자, 문화적‧정치적으로 좌파인 그룹을 대표하고 있다. …… 우리의 견해로는 다음과 같은 우선순위를 설정한 새로운 경제사회적 모델을 시도하고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
* 노동의 존엄성. 보호와 재분배를 하며 제대로 된 임금을 가진 노동. 임금 상실 없이 노동시간의 보편적인 축소를 하는 노동.
* 사회적 서비스, 교육권, 공공건강서비스에 대한 접근, 존엄한 주거에 대한 권리의 방어와 증진.
* 청년의 자율성과 독립.
* 환경을 파괴하는 생산 체제에 의해 남용된 환경의 보호.
* 금융자산가들이 아니라 인민이 의사 결정 권력을 갖는 진정한 유럽 민주주의의 발전.
* 민주세력을 강화하고 민주세력의 힘을 확장하기 위한 시민운동의 강조.
* 평등의 이름으로 모든 차별과 사회적 배제에 대한 거부.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존중과 자유로운 교류, 정의에 기초한 평화 건설."
마찬가지로 '생명평화대행진'은 우리의 우선순위를 같이 찾아보려 한다. 그렇다고 한 목소리로 통일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행진은 이리저리 부딪칠 것이 많고 우선순위를 다툴법한 노동, 평화, 생태, 생존권 등의 문제가 함께 만나는 장이다.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 어색하고 머쓱한 만남이기도 하다. 쌍용 해고노동자와 강정마을 주민이 중소상인의 생존권 문제를 토론과제로 받자 난감해한다. 용산 참사 유가족이 밀양의 할머니들을 만난다. '강제퇴거금지'나 '반핵'얘기를 꺼낼 틈도 없이 '정말 힘들었어요. 우린 다 알아요. 정말 징글징글하게 고생 많았어요.'로 이어진 고생담이 대부분이다. 오는 10월 27일 열릴 전국 비정규노동자 대회를 코앞에 두고 맘 바쁘기 그지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행진단 속에서 초조해한다. "함께 살자"는 바람으로 모였지만 우린 서로에게 서투르고 서로의 사안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강정, 쌍차, 용산처럼 잘 알려진 문제들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보고 들은 숱한 사안들을 어떻게 조율해 우리의 우선순위를 만들 수 있을까? 주말(10월 28일)에 평택에서 열릴 민회는 그런 우선순위와 행동계획을 토론할 계획이다.
이 글의 제목을 <'바보'들의 행진의 기록들>이라 했다. 역사적인 행진자들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았든 간에 당대에는 '바보' 취급을 받았다. 톨스토이의 작품 <바보 이반>이 떠오른다. 군인과 상인인 형들은 농사만 짓는 이반을 바보 취급했다. 악마의 유혹에 그 형들은 과욕과 탕진으로 무너졌지만, 군대와 금화로 유혹하는 악마의 농간이 이반에게는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이반이 원한 것은 노동과 노래뿐이었고, 음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또 '이반'은 성소수자들이 정상성을 강요하는 일반에 빗대어 자신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더 많은 개발과 성장만이 살 길이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를 죽여야한다고 우기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선 더 많은 바보와 정상성에 도전하는 이반들이 필요하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집하면 현명해진다"는 싯구처럼 행진단 같은 바보들이 많아지고 일반이 아닌 이반의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치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다. 이것이 생명평화 행진단의 걷는 마음이다.
<바보들의 행진>이란 옛 한국영화가 있다. 거리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하고 정부 비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당해 죽거나 간첩이 돼야 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청춘영화다. 어릴 때 TV에서 그 영화의 재방을 보다가 참 어설프다고 생각했다. 뭔가 진도가 나갈 법하면 난데없이 연고전 응원 장면이 자주 등장해서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그 연고전 응원 장면이 당국의 검열에 가위질 당한 부분들을 메꾼 자국이란 걸 알았다. 오늘 우리 시대의 '바보'들의 행진은 신나고 재밌는 말춤과 정치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바보들의 행진'이 당국의 검열 때문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무관심에 가위질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간절히 부탁한다. 전인권 씨, 행진에 와서 불후의 명곡 '행진' 한번 부르세요. 김인권 씨,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구국의 철가방'에 우리 요구를 담아 귀 막은 정치권에 배달 좀 하세요. '생명평화대행진'은 수도권에 가까이 오고 있어요. 여러분들 동네에 행진단에 올 때는 한번 마중 나가보세요. 11월 3일에는 그야말로 '대행진'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들 '바람버스'가 있어요. 꼭 한번 타보세요.
* 생명평화대행진의 자세한 일정은 //cafe.daum.net/walk4peace에서 볼 수 있다.
* 이 글은 <주간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 홍대 앞 도로에서 행진하는 청소노동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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