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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사건, 주범은 무죄 종범은 유죄? 억지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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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사건, 주범은 무죄 종범은 유죄? 억지 논리 [기고] 곽노현을 벌한 사법부의 비극
주범은 무죄인데, 종범은 유죄로 처벌받은 사건.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법원의 판결 결과다. 곽노현 전 교육감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 헌재의 결정은 비상식적인 일로 가득했다. 제정된 지 53년 만에 처음으로 공직선거법상 사후매수죄를 적용한 점도 그렇고, 헌법소원이 걸린 사건에 대해서 헌재가 결정하기도 전에 대법원이 먼저 판결을 내린 것도 그렇다. 헌법재판소는 사건 종결 시한 6개월을 넘겨서 대선이 끝난 뒤인 지난해 12월 27일에야 합법(합헌) 결정을 내렸다. 2명의 교육감이 권한 다툼을 벌일 수도 있는 상황을 차단하고자 하는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을까? 헌재의 결정문은 억지로 논리를 만들어내서 곽노현을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에 꿰맞추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헌재 결정까지 난 지 한참 뒤에서야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한심하게도 법원과 헌재가 공모하여 곽노현 죽이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 우리 사회 법치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는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 사건의 전 과정을 개략적으로 정리해보면 필자의 이런 느낌에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찰은 느닷없이 현직 서울시 교육감이 박명기 후보를 매수하여 후보직을 사퇴하게 만들었다는 피의사실을 공표하였고, 보수 언론들은 이런 검찰의 발표를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런데 검찰은 곽 전 교육감을 사전매수죄가 아닌 사후매수죄로 기소했다. 제정된 지 53년 동안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는 한 번도 적용되지 않았는데, 잠자던 법 조항을 찾아내서 검찰이 기소했다. 마치 미네르바 사건에서 박대성 씨에게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제47조 제1항)을 법 제정 30년 만에 처음 적용한 것과 유사했다.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4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1년 징역형을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검찰과 법원의 공모 : 곽노현을 죽여라!"

그런데 1, 2심 재판부는 가장 핵심적인 혐의인 사후매수죄의 대가성·목적성 여부에 대해서는 심리를 하지 않은 채 '돈을 주었으니 유죄'라고 판결했다. 그처럼 요란하게 떠들었던 보수 언론들은 막상 재판 과정에서 곽노현 전 교육감이 사전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을 때는 침묵했다. 대법원은 1, 2심이 법리해석을 잘못해서 대가성·목적성을 심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주범이었던 강경선은 무죄로 파기환송하면서 곽노현은 그 제안을 수용한 종범이었음에도 파기환송하지 않고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이 정상적인 판결을 했다면 두 사람 모두 파기환송하는 것이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았을까? 곽노현을 처벌하기로 이미 결정을 해놓고 짜 맞추기 판결을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자 대법원의 비겁한 꼼수였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힐 일은 강경선 교수의 파기환송심에서 벌어졌다. 검찰은 강 교수가 후보 사퇴 대가로 금전을 제공한 것을 입증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결국 강경선 교수는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뇌물을 주자고 교사한 강경선은 무죄인데, 그 제안을 수용한 종범은 유죄라니. 검찰의 정치적 의도는 강경선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곽노현이라는 진보 교육감을 처벌하는 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달성한 이상 강경선을 처벌하기 위해서 힘을 쓸 필요도 없다고 실토한 꼴이다.

헌재는 사후매수죄의 불명확성을 인정하면서도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수 의견을 쓴 5명의 헌재 재판관은 합헌 결정 이유 중에 "당해 선거 비용 보전이 선거 문화의 타락을 유발하여 선거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의 대가성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그러므로 잘못된 법원의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헌재는 이 점을 들어서 위헌을 선언했어야 옳았다. 헌재의 결정을 보면서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의 존립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1, 2심은 정치 검찰의 '묻지 마' 기소를 묵인, 방조, 면책해줬고, 3심은 1, 2심이 부실한 법 해석을 피해 갈 길을 열어줬고, 헌법재판소는 검찰과 법원의 실책이 표나지 않도록 적절하게 헌법해석을 해주었다." 이로써 검찰, 법원, 헌재와 보수 언론이 곽노현 죽이기에 성공했다.

"법치주의를 경멸케 하다"

결국 법원과 헌재는 공교육을 활성화하고, 학교 현장에서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실천에 옮기며 보수 진영의 공적이 되어 버린 곽노현을 죽이겠다는 정치 검찰의 기소를 승인해주었고, 이에 법적 권위를 부여해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법이 걸레가 되고, 법치주의는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검찰의 타락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의 타락을 법원이 승인해주었으며, 법원이 타락한 검찰에 편승해서 같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고는 한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법원은 검찰의 사후매수죄 기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검찰의 정치적 의도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안 된다는 태도를 보였어야 마땅했다.

법의 타락을 막을 마지막 기회는 헌재가 갖고 있었다. 그러나 헌재는 대법원이 그어 놓은 정치적 선 안에서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헌재가 헌법재판을 포기한 채 대법원 따라가기를 함으로써 지배 세력의 염원에 동참했다. 헌재는 다른 무엇보다도 헌법의 기본권 조항에 충실할 때 빛을 발하고, 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로 헌재가 기능하지 못할 때 법원에 의한 법의 타락을 방지할 장치가 한국 사회에는 없다.

곽노현 전 교육감에 대한 법원의 재판과 헌재의 결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법에 정의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의보다는 정치적 실리를 택하겠다는 선언이다. 차기 헌재소장으로 내정된 이동흡 씨가 부임하면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법에 정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이들을 뺀 나머지 인간들은 결국은 세계인권선언이 가리키는 길을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계인권선언은 전문에서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에 따른 통치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법에 따른 통치를 마지막 보루인 법원과 헌재에서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결국 법원은 정의를 갈구하는 많은 이들을 반란에 내모는 짓을 하고 있다. 그런 짓을 하는 게 자신들이라는 점을 법관들이 알기나 할까?

곽노현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 헌재의 결정은 법치주의는 죽었으므로 법에 더는 정의를 구하지 말라는 선언이다. 곽노현 사건이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다시는 어리석게 법 앞에서 정의를 찾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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