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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美 의회 연설, 윤창중처럼 모순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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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美 의회 연설, 윤창중처럼 모순투성이 [정전 60주년, 평화를 선택하자] <11> 대통령 연설 속 상충하는 인식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도망치듯 워싱턴DC를 빠져나올 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했다. 성폭력과 같은 사회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원칙을 그의 '1호 인사'가 동맹국 수도에서 짓밟은 것이 모순이라면, 박 대통령의 연설도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원칙과 정책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보여준 한반도 안보 인식은 탁월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핵무기의 직접적인 위협 속에 놓여 있는 한반도"라고 본질을 짚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북은 전쟁 억제라는 명분으로 남을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고, 미국도 전쟁 억제라는 명분으로 북을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다. 전 한반도가 분단이라는 이유로 핵무기의 직접적인 위협 속에 있다. 북은 '억제력'이라는 표현을 선호하고 한·미 군사 당국은 '확장 억지'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본질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짧은 표현에 한반도 불안의 본질을 담아낸 것이다.

이 위협을 거두어내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것은 한반도 최고의 가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가치를 오바마 대통령이 내세운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에 접목한다. 외교의 정수다. 한반도 비핵화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오바마 대통령의 비전이라는 것이다.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시범 지역이 될 수 있고, 여기서 성공한다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시나브로 한반도 비핵화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전을 실현하는 첫걸음이자 모델이 되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의회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 도중 박수를 받고 있다. 왼쪽은 조 바이든 부통령 겸 상원 의장, 오른쪽은 존 베이너 하원 의장. ⓒ연합뉴스

그러면 한·미가 공유한 비전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바로 국민 삶의 증진과 국민의 행복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공히 남과 북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다. 국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 체계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다. 무기 체계를 더 생산하고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국민이 더 만족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 안보다.

"북한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도록 국제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로, 분명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은 그래서 합리적이다. 흡수 통일이나 정권 붕괴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조건을 만든다는 방식은 강요하거나 압박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고차원적 방식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 박근혜 정부 자신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인지 불확실하다.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 선언문에서 "포괄적이고 상호 운용(interoperable)이 가능하며 연합된 방어 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군사력 강화를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및 재래식 위험에 대한 대북 억지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전작권 전환 역시 한·미 방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준비되고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살을 붙였다. 정상회담에서 이런 얘기가 공론화됐으니 앞으로 무기 도입은 기정사실이다. 무기 도입보다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국가 안보라는 스스로 제시한 가이드라인과 반대 방향이다. 이 방향으로 가면 북도 억지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결과 한반도 핵위협은 더 높아질 것이다.

북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 조건에 대한 구체성도 부족하다. "남북한 간의 점진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해 감으로써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옛날 얘기를 되풀이한다. 1970년대와는 달리 북은 이미 핵무기를 손에 쥐었고, 정전협정은 사문화되었으며, 남북 간 교류와 대화의 창구는 모두 닫혔다. 어떻게 점진적인 교류와 협력을 할 것인가? 휴전선 인근에서 자그마한 실수가 있어도 한반도가 불구덩이에 빠질 지경이 되었는데 DMZ 안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한가롭다 못해 위태로워 보인다.

한·미 양국은 공동 선언문에서 "북한 주민들의 복지에 대한 깊은 우려를 함께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북한이 그들 주민들의 생활 여건 향상을 위한 투자와 개선 노력을 기울이며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하는 것에 그쳤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관련 없이 하겠다면서도 공동 선언에는 인도적 지원이나 영양 지원에 대한 언급조차 빠져 있다. 북한 주민의 복지는 북 정권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교류와 협력 방안도 없는 상태에서 인도적 지원조차 없으면 신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땅에서 솟아나는가.

이러한 모순은 동북아 지역에 대한 구상에서도 나타난다. 공동 선언문은 "우리는 한·미 동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linchpin)으로 기능하고, 21세기 새로운 안보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동맹을 계속 강화시키고 조정해 나갈 것"이라며 양자 동맹을 강조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점차 다른 분야까지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는 동북아 다자 간 대화 프로세스"를 얘기한다. 양자 동맹과 다자 협력은 상이한 개념이며, 본질적으로 상충한다.

박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 다자 대화 프로세스를 시사한다. 북이, 중국이, 그리고 러시아가 한·미 동맹에 굴복하면 가능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그것인가? 아니면 이 깊은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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